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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영 Aug 18. 2022

'말하는 몸'이라는 거대한 어깨동무

- 2021년 6월호 잡지 '코스모폴리탄'에 기고했던 글을 대신 브런치에 옮깁니다. 2021년 5월에 쓴 글이고 어떠한 수정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코스모폴리탄 링크 : https://www.cosmopolitan.co.kr/article/55745




책 <말하는 몸> 초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난 후 집 근처에 있는 필라테스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딱 붙는 레깅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선 내 몸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 학원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었다. 당장 이 화려한 잡지 속에서 내 몸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본다. 


나는 성폭력 생존자를 비롯해 화상 경험자, 운동 애호가 등 90여 명의 여성과 몸을 주제로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그간의 인터뷰를 묶어 책으로 출간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살찐 내 몸도 사랑하게 됐노라! 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그것이 진실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프리하지 않은 ‘프리사이즈’의 옷을 입거나 입으려고 애쓰는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슬퍼 보인다. 나는 지금도 타인들이 곁을 지나면서 내 몸을 쳐다볼 때 몸의 존재를 강하게 느낀다. '어 그래, 너 거기 있었구나!'라며 화들짝 놀라는 동시에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하지만 그 느낌은 어쩐지 전과 다르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작은 몸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했던 여성들이 열어주었다. 다양한 삶을 사는 여성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이 건넨 말에 나도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이 해준 말을 듣고 내 몸에 대해 말했다. 책을 쓴 이후에는 종종 인터넷으로 책 제목을 검색해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들여다본다. 누가 보든 말든 책을 읽고 나서 자기 몸에 대해 고요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몸에 대한 책을 낸 줄 아는 지인들은 나를 만나면 나보다 먼저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의 고백을 듣는다. 더 많은 말을 영원히 듣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면 기분이 좋아 마치 취한 듯 몸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내가, 그리고 나의 몸이 정확하게 이해받았다고 느낀다. 나는 <말하는 몸>이 거대한 어깨동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의 진행자 양희은은 몇 년 전 나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시대’와 청취자를 두고 ‘거대한 어깨동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분명 태초에 침묵을 깨고 말을 했던 여성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여성이 그 여성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말을 한다. 그 말은 이어지고 이어져 나에게 닿는다. 나의 말도 누군가에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 어깨동무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유지영(기자, <말하는 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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