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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27. 2023

It(그것)

단편

하늘에서 콘크리트 비라도 내렸는지 생명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 사방이 차가운 돌과 바위들로만 가득한 암석지대.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나무 씨앗 하나가 바위틈에 난 작은 균열을 뚫고 들어가 뿌리를 내린다. 다른 기름진 토양에 날아가 편안하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내밀며 푸른 잎사귀와 꽃을 만개할 수도 있었지만 이 불운한 씨앗은 이곳에 와닿았다. 하지만 이 씨앗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떨어진 이곳이 자신에게는 최선이며 유일한 토양이라는 것을. 그렇게 씨앗이 내린 뿌리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을 찾아 단단하고 척박한 땅을 처절히 뚫고 들어간다. 간절한 그의 의지가 가 닿은, 어둠 속 잠들어 있던 지하의 물. 그렇게 생명의 근원을 쟁취한 뿌리는 척박하고 차가운 바위들에 균열을 내며 자신의 토양을 넓혀나간다.


대지의 모든 생명을 불태우겠다는 듯 쏟아져내리는 태양아래 암석지대의 유일한 그늘을 찾아오는 네발 달린 자연의 생물들. 그들이 가져온 씨앗은 먼저 뿌리를 내린 씨앗이 만들어 놓은 바위의 균열을 찾아 또 다른 뿌리를 내린다. 그들은 또 다른 그늘을 만들고, 또 다른 균열을 만들어, 또 다른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자연의 생물들이 찾아오고, 그렇게 척박했던 암석지대는 새로운 생명들의 삶의 터전으로 거듭난다.


한 작은 씨앗의 의지로 일구어낸 이 경이로운 숲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다시 바위로 뒤덮으려는 두발 달린 짐승들로 인해 순식간에 다시 차가운 암석지대로 되돌아간다.


“으악.”


잭이 고라니 울음소리에 가까운 비명 소리를 내며 의자와 함께 뒤로 고꾸라졌다. 여덟 개의 발이 달린 성인 남자 손바닥 크기만 한 절지동물. 바로 잭이 가장 혐오하는 자연 생태계의 생물이 벽에 붙어 그를 노려보며(사실은 잭의 존재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잭의 상상 속에서는 그것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몸집에 50분의 1도 안 되는 크기의 그것을 볼 때마다 잭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공포심과 혐오감을 느끼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딱히 그것과 관련해 트라우마를 가질만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몸속 모든 세포들이 그것의 사진이 붙은 수배전단을 돌려보며 공포심을 키워온 것 마냥 온몸의 살갗에 소름을 돋아가며 격렬하게 반응했다. 잭은 차라리 네발 달린, 자신의 몸집의 몇 배 만한, 잔뜩 굶주린 육식동물과 마주치는 것이 덜 공포스러우리라 장담했다.


“루시! 루시! 루시!”


잭은 이 절망적인 상황 속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인 루시를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그의 애절한 구원 요청에 돌아오는 대답은 고요한 침묵과 벽에 붙은 거미의 비웃음뿐이었다. 루시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마치 최전방에서 적들에게 고립된 채 유일한 희망인 지원군이 자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무전을 들은 병사가 된 것 마냥 좌절하며 넋을 잃었다. 고립된 병사의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를 감지한 듯이 거미가 더욱 자신감 넘치는 워킹으로 잭이 글을 쓰고 있던 노트북이 올려진 테이블 위로 입성했다. 잭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잔뜩 얼어있었다. 거미는 힘찬 발걸음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더니 결국 그의 노트북 위로 올라갔다. 극심한 공포심에 더 이상 이 악마 같은 거미와 한 방안에 있다가는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생각한 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용기를 긁어 한데 모아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잭이 언제가 기억나지 않는 제목의 책에서 읽은 방법이다. 자신이 정말 두렵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생각을 멈추고 숫자 셋을 거꾸로 센 후 곧바로 행동에 옮기면 훨씬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는 심리학적 트릭이었다. 셋, 거미의 여덟 개의 다리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키보드의 버튼이 눌리며 무작위 한 글자들이 스크린에 옮겨졌다. 둘, 그러한 모습에 더욱 소름이 돋은 잭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나, 잭이 두 다리에 모든 힘을 모아 벌떡 일어나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 밖의 공기를 마시자 그가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벽을 지탱해 간신히 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비록 루시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다시는 집 안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그 악마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힘으로 벗어났다는 사실에 자신이 대견해진 잭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벽에 기대어 선 그의 손 위로 갑자기 가벼운 면봉 같은 감촉의 무엇이 올라섰다.


“으아아아아ㅏ아아아ㅏㅏㅏㅏ악!”


연두, 빨강, 검정 등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들로 잔뜩 칠해진 등딱지, 마치 톱니바퀴에 맞물린 기계가 돌아가듯이 움직이는 여덟 개의 가느다란 다리들, 그를 노려보는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들, 딱딱 소리를 내며 언제든 물 준비를 마친 더듬이 같은 입. 잭은 창피함도 잊은 채 손을 허공에 마구 휘저으며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달리가 시작했다. 하지만 잭의 손에 딱 달라붙은 거미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소름이 잔뜩 돋은 잭의 살갗 위로 새끼를 까기 시작했다. 이미 어미의 몸 안에서 부화를 마친 사람 새끼손톱만 한 살아 움직이는 새끼들이 어미의 뱃속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잭의 팔을 타고 올라 그의 온몸에 난 모든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마치 제 집을 찾아 들어가듯이 잭의 입과 코와 귀와 심지어 눈까지…


미친 듯이 달리던 잭의 두 발에 힘이 풀리며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정신을 잃었다.


“으아아아아ㅏ아아아ㅏㅏㅏㅏ악!”


잭이 의자와 함께 뒤로 발랑 넘어졌다. 잭의 두 손은 쉼 없이 자신의 얼굴과 온몸을 마구 때리고 쓸어내렸다. 눈과 코와 입은 각자 구멍의 용도에 맞는 액체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잭은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고개를 들어 책상과 마주한 벽을 올려다봤다. 새하얗게 도배된 벽은 여름철 모기와의 전쟁을 치른 흔적인 옅은 핏자국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잭은 마치 지옥에 떨어졌다 현생으로 되돌아온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닦으며 자리에 앉아 잠에 들기 전 쓰고 있던 글을 들여다봤다.


“하늘에서 콘크리트 비라도 내렸는지 생명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 사방이 차가운 돌과 바위들로만 가득한 암석지대.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나무 씨앗 하나가 바위틈에 난 작은 균열을 뚫고 들어가 뿌리를 내린다….. 그렇게 척박했던 암석지대는 새로운 생명들의 삶의 터전으로 거듭난다….. 한 작은 씨앗의 의지로 일구어낸 이 경이로운 숲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다시 바위로 뒤덮으려는 두발 달린 짐승들로 인해 순식간에 다시 차가운 암석지대로 되돌아간다.”


잭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쓴 글을 전부 지우고는 다시 써 내려갔다.


“하늘에서 콘크리트 비라도 내렸는지 생명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 사방이 차가운 돌과 바위들로만 가득한 암석지대. 어디선가 매연 연기를 잔뜩 내뿜는 네발 달린 커다란 물건에 탄 사람들이 몰려와 아스팔트 도로를 깔고, 공장을 짓고, 오염된 폐수를 쏟아낸다. 그 척박했던 땅은 더욱이 그 어떠한 생명도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다…..”


잭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노트북을 닫았다. 그 순간, 노트북 뒤쪽의 뚜껑에 매달려 있던 다리 여덟 개의 절지동물이 작은 블루베리 알맹이들 같은 여덟 개의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과 다리를 모두 합쳐 총 열여섯 개인 이 절지동물은, 마치 메두사의 눈을 본 것 마냥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잭의 손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잭은 아랫도리를 자신이 만들어낸 오염된 폐수로 흠뻑 적셨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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