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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20. 2023

나는 지금 여기에

단편

나는 지금 여기 런던의 차이나타운 뒷골목길에서 배에 칼이 꽂힌 채 쓰러져 있다. 분명히 다른 곳에, 다른 상태로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나는 서울, 홍콩, 파리, 로마, 베를린, 프라하, 부다페스트, 카디프, 글라스고, 에든버러, 나폴리, 맨체스터, 리버풀, 옥스퍼드, 오사카, 페낭, 싱가포르, 쿠알라룸프르에 있었었고 일일이 기억해내지 못하는 더 많은 곳에도 있었었다. 나는 지금 방금 나열한 도시들 중 한 곳, 또는 전 세계의 그 어느 곳에서 나와 전혀 다른 문화에서 태어나 자란 그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당연하게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과거의 내가 내린 일련의 선택들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현재 여기에 있는, 그 당시에는 미래의 내가, 나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5년 전의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리라는 상상? 분명히 5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입에 오르내릴 이상한 영화를 만들고 칸에서 종려나무 잎사귀 모양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시건방진 미소를 지으며 난 내가 이 상을 받을 줄 알았다며 건들건들 수상소감을 읊으리라는 소망 같은 상상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게 뭐람. 나는 지금 여기 칸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천리타향에서 뜨거운 피를 잔뜩 쏟아내며 바닥에 누워 있다. 아. 이렇게 끝이구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오늘따라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차이나타운의 거리는 내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홀로 맞이할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는 듯이 조용하다. 젠장. 칸? 갑자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죽으려니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보다. 


그녀가 보고 싶다. 너무도 보고 싶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녀의 얼굴을 봤으면. 마지막으로 봤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그녀에게서 돌아섰고 그녀는 가만히 서서 떠나는 내 뒷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문을 지났을 때에도 그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점점 작아지는 나의 뒷모습을 지켰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서로의 모습을 잊지 않고자 머릿속에 그대의 모습을 각인하듯이. 그때 그녀의 슬픈 표정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그녀의 공백이 조금씩 익숙해져 가던 평범한 일상 속 수시로 예상치 못한 트리거들에 의해 불빛 아래로 나와 나의 심장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 트리거들은 너무도 다양하고 불규칙 적이라 내 심장 건강을 위해 나의 생활 동선으로 부터 미리 차단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길거리의 고양이들이 그러했다. 그녀에 의해 고양이들을 좋아하게 된 나로서는 길거리의 고양이들과 마주칠 때면 자동 반사적으로 그녀가 떠오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고양이들을 볼 때면 행복해하는 그녀의 표정이 떠오른다. 고양이들은 나와 달리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쓰다듬는 그녀의 행복해하는 표정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녀와 작은 말다툼을 벌이고 어색하게 길거리를 거닐다 고양이라도 발견하면 나는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그럼 그녀는 새침한 척 머리를 내주는 고양이들을 쓰다듬으며 언제 우리가 다투었었냐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행복해했고, 나는 그러한 그녀를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그러면 그녀는 고양이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주변을 살핀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듯이 다시 나의 손을 꼭 잡고 길을 나섰다. 우리는 굳이 논리적인 대화를 통해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불화를 풀어낼 필요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는 사실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우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멀리 떨어져 있게 된 순간들 조차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물론 내가 그 믿음을, 우리가 간절하게 붙잡고 있던 서로의 손을, 놔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의 행복했던 과거 회상 장면들이 인서트 되듯이 그녀와의 추억을 미소를 띠며 바라보다 항상 뒤따르는 회한 가득한 부정적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고 나면 그렇게 먹먹해진 가슴으로 또 하루를 마무리했다. 눈을 감으면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던 그녀의 모습들은 꿈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눈물 젖은 베개와 함께 동이 트기 전 새벽을 눈뜨고 지새우게 끔 만들었다. 그럴 때면 글을 썼다. 그녀와 함께 존재했던 과거에 대해서 쓰고, 함께 할 수 있었던 현재에 대해서 쓰고, 희망으로 점철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썼다. 그렇게 써오던 글들이 쌓여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그 책이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했고, 다양한 언어로 여러 국가의 서점과 드럭스토어의 가판대에 진열되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실존 여부와 나를 과거에 알고 지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루머에 루머가 끊임없이 차곡차곡 쌓였고, 어느새 나와 그녀 사이에 나도 모르는 아이가 셋이나 생기기에 이르렀다. 무명작가 시절 그렇게도 목말랐던 대중들의 관심이 닿기만 해도 살갗이 타오르며 벗겨질 만큼 강한 독극물이 되어 나의 목구멍과 내장을 녹여 내렸다. 하지만 나보다도 그녀가 걱정이었다. 그녀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비겁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글들의 잉크가 녹아내려 치명적인 독극물이 되었다. 여린 성격에 이미 수많은 생채기로 가득한 그녀의 가슴에 이 독극물이 가 닿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결국 그녀를 찾아 나서기로 결정하고 옛 친구들의 먼지 쌓인 연락처를 꺼내 수소문을 하고 다녔지만 그녀의 행방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알아낸 사실 하나는 그녀가 더 이상 홍콩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친구는 그녀가 파리로 미술을 배우러 간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그녀가 현재 새로운 남자친구와 호주에 살고 있다고 했으며, 또 다른 친구는 그녀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나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녀의 오랜 연락처는 더 이상 기능을 잃은 일련 한 번호의 무의미한 조합에 불과했다. 그녀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 보아도 메시지 위에 원망스럽게 떠있는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변호사와 접촉해 모든 악성댓글들에 일일이 법적 대응을 해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와중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녀에게 오는 메시지는 스마트폰의 알림음만 들어도 그녀가 보낸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마치 메시지의 알림음이 내 심장을 쪼여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들여다보자 메일이 하나가 와있었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였다.


‘나야. 책 잘 읽었어. 나 지금 런던에 있어. 날 보러 와줄 수 있어?’


 짧은 메시지와 함께 주소가 적혀있었다.


나는 당장 이틀 후의 비행기표를 끊어 런던으로 날아갔다. 


10년 만에 돌아온 런던의 모습은 오랫동안 머릿속 한 군데에 영화 속 짧은 회상 장면처럼 존재하고 있던 기억과는 괴리감이 있었다. 10년 전 초여름의 열기가 회색 아스팔트 도로를 뜨겁게 달구었던 기억 속의 도시가 겨울의 쌀쌀맞게 내리치는 빗물로 흠뻑 젖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강렬한 햇살의 뜨거운 조명이 꺼진, 관객들의 온기마저 모두 떠난 어두운 무대에 홀로 쓸쓸히 서서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저 어둠이 내려앉은 수많은 객석들 중 하나에 그녀가 앉아있다는 생각에 내 심장은 한 여름의 열기보다 더욱 뜨거운 피를 마구 펌프질 해댔다. 호전적으로 내리치는 강한 바람에 섞인 빗방울 사이, 현지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치켜뜨고 이 차가운 도시에서 홀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아니, 혼자였으면 하는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녀가 메일을 통해 보내준 주소는 나를 지금 내가 누워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붉은빛 지도를 그리고 있는 골목길의 차이나타운으로 이끌었다. 아무리 메일을 보내도 답장을 하지 않는 그녀를 찾는 방법은 그녀가 보내준 주소로 찾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 차이나타운은 10년 전, 내 덩치만 한 배낭을 메고 유럽을 떠돌던 내가, 이 같은 도시를 여행하던 때에 테스코에서 파는 3파운드짜리 점심용 샌드위치가 물릴 때면 찾던 곳이었다. 샌드위치보다는 조금 가격이 나갔지만, 5파운드만 내면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통에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중국식 음식을 마음껏 골라 담을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뚜껑을 닫을 수 있을 만큼의 양만 담아야 한다는 귀여운 룰을 지켜야만 했다. 나는 가장 먼저 일회용 플라스틱 통의 맨 밑바닥에 볶음밥으로 기반을 다지고, 구역을 나누어 왼쪽부터 닭튀김, 볶음면, 돼지고기 볶음요리, 새우볶음 등을 정성스레 꾹꾹 눌러 담았다. 장기 여행을 떠날 때 산더미 같이 쌓인 옷더미로 가득 찬 트렁크를 간신히 눌러 닫듯이 육해공 진미들의 개성을 무시한 채 뚜껑으로 간신히 밀봉해 점원한테 검사를 맡았다. ‘이런 징한 놈’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점원에게 당당히 5파운드를 건네며 허기진 배를 채울 기대감과 함께 차이나타운의 거리로 나섰다. 바로 지금 내가 서있는 거리 말이다. 바로 저 런던의 중심가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동양식 정자에 앉아 호시탐탐 내 중국음식을 노리는 무례한 런더너 비둘기를 내쫓으며 허기진 배를 달랬었다. 비둘기들과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여럿의 홈리스들이 겹겹이 두꺼운 넝마를 몸을 걸친 채 비를 피하며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정자의 지붕으로 인해 어둡게 그늘진 그들의 실루엣 사이 한 홈리스가 성냥으로 담뱃불을 피우자 깊은 주름의 협곡에 둘러싸인 허여멀건 흰자위가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순간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쳐 성냥불을 꺼뜨리고는 성냥 탄내와 풀이 타는 듯한 대마초 냄새를 품은 채 나에게 호전적으로 들이닥쳤다. 다시 정자 안에는 붉은 대마초 머리들과 검은 실루엣들만이 남아 움직였다. 나는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현재 매서운 겨울 추위의 비바람과 대마초 냄새가 옛 기억들이 남긴 빈자리를 채운 차이나타운의 거리는 나를 반기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남긴 주소를 향해 더 좁은 골목들로 들어갈수록 그녀는 나에게서 더욱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4번지… 6번지? 내가 찾던 5번지가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조차 존재하지 않는 돌바닥으로 된 좁은 차이나타운의 뒷골목, 4번지 주택의 다음 건물이 무심하게 6번지라는 표지판을 현관문에 내걸고 있었다. 모두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중 6번지의 건물의 6층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흐릿하게 어두운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6번지의 현관에 붙은 벨을 눌렀다. 벨을 누름과 동시에 익숙한 풀이 타는 냄새가 찬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고개를 돌리자 두터운 주름에 둘러싸인 허여멀건한 두 개의 흰자위가 흐릿한 창가의 불빛아래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퍽. 소리가 난 쪽을 내려다보자 내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돌바닥에 흥건한 빗물과 함께 희석되고 있었다. 엉거주춤 뒤로 넘어지자 허여멀건한 흰자위가 내 위로 올라타 나를 마구잡이로 쑤셔댔다. 이상하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희미한 불빛이 흘러내려오는 6번지의 창가를 올려다봤다.


이 대범한 홈리스는 자신의 범행도구를 그대로 내 몸에 꽂아놓은 채 내 지갑과 스마트폰을 챙겨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그녀와의 이야기를 팔아 번 돈은 머지않아 저 남자의 마약값으로 탕진될 듯했다. 


나는 지금 여기 런던의 차이나타운 뒷골목길에서 배에 칼이 꽂힌 채 쓰러져 있다. 분명히 다른 곳에, 다른 상태로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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