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tta Apr 06. 2017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봄 밤, 맥주 두 잔 사이로

  지난가을 새로운 명함이 생긴 뒤로 나의 인간관계는 모두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누구나 새로운 터를 잡으면 새롭게 시작하듯, 다시 타향살이를 시작한 어린 청춘은 곳곳에서 예기치 못하게 생기는 만남에 여전히 들떠있는 상태였다. 어떠한 목적으로 만났는지도 기억 안나는 흐릿한 모임에서 인사를 나누고 SNS를 교환하면서 시작된 관계는 상대에 따라 깊고도 진득하게 변하기도 혹은 그저 친구 목록 +1로 남기도 했다. 누군가를 만나도 걱정 없이 다가서는 특유의 겁 없는 (혹은 심하게 까불거리는) 성격에 금세 낡은 아파트 내 작은 보금자리와 주변에 잘 적응했으나,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에 녹아들었는지 한동안 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할 만남이 없었다.



골목 끝자락의 빈티지 카페에서 만난 아주 작은 벗, 안냐옹


  평소와 다름없이 동네 주민과 퇴근 후 연신 건배! 를 외치는 밤, 나를 참 좋아해 주는 벗이 멀리서 소개하여주고 싶은 이가 있다고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나의 삶을 공유하고 싶은데, 상대가 굳리쓰너이자 멋진 기록자이니 한번 만나도 나쁘지 않은 만남이 될 거라며 타닥타닥 날아온 메시지. 지극히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얼마나 궁금하길래 하며 쉽사리 답장을 하지 못하고 결국 하루가 넘어갔다. 

그래요. 담소를 나눌 자리를 마련해줘라고 게으른 답장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노트북 행



  상대와 3월 2X 일, 저녁 8시 익숙지 않은 길 위의 생전 처음 듣는 수제 맥주 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서로에 대해 약 20% 정도만 아니 2%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덜렁 그때 만나! 하고 오가는 문자에 순간 온몸에 흐르는 짜릿함. 그간 없던 새로운 사람 만나기가 갑작스레 진행돼서 그런지 퇴근 전부터 마치 대학교 1학년 저 멀리 공대 오빠하고 잡힌 미팅을 준비했던 것처럼 떨렸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광고판, 복잡한 도로 위로 달리는 스쿠터들 사이로 집까지 걸어가면서, 새로운 사람이라니! 하는 두근거림이 두 귀로 흐르는 노래와 같이 퇴근길 동무가 되어주었다.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 점차 커지면서 안 그런 척  SNS를 먼저 흘깃하고 그에 대한 상상을 했다. 꽤 재밌게 사는 사람이네 하고 첫 만남 전 나온 첫인상.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 도착한 약속 장소. 3개 남짓의 테이블을 둘러싼 다양한 종류의 맥주. 일행 있니?라고 묻는 인상 좋은 사장 J 뒤로 함께 담소를 나눌 새로운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장의 추천으로 나온 차갑디 차가운 White IPA 두 잔. J와 꽤 친해 보이는 이날 저녁의 말동무는 맥주에 대해 묻다가 나에게 다시 설명해주는 수고를 했다. 그리고 시작된 각자 소개 그리고 멈추지 않던 나의 고군분투 생활기. 이전까지의 떨림은 꽃향을 내는 씁쓸한 맥주 두 모금과 함께 넘어갔고, 마치 그저 들어주세요. 나는 떠들고 싶으니까 라는 태도로 십 년 넘게 이 도시에 살았던 맞은편 남자에게 오랜 열등감 그리고 여전히 들끓는 불안감을 고했다. 새로 만나는 이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도 다 쏟아내지는 않는데, 그의 입 밖으로 툭툭 나오는 질문과 각자의 재잘거림으로 자욱한 바안의 분위기에 넘어가 마음 깊숙이 아무도 물을 떠마시러 온 적 없는 옹달샘의 이야기를 낯선 사람에게 풀어나갔다. 설득과 최면 사이, 어떻게 부르는 것이 더 좋을까 혼자만의 고민을 하면서 - 

 

  두 시간 가까이 멈춤 없는 어설픈 직장인 이야기를 듣던 새로운 사람은 이런 평가를 내렸다.  Julitta 너는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하하 누구에게나 듣는 평을 그에게도 들었다. 바를 나오기 전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의 알딸딸해진 나는 성악설을 믿으세요 아니면 성선설을 믿어요?라고 물었고 나와 다른 답변에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요.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산지 갓 한 달 된 타지살이의 동반자, 새카만 자전거에 올라타며 늘 그랬듯이  Don't you worry 'bout a thing 반복 재생을 눌렀다. 



  무릎이 시리던 도시에 봄이 온전히도 내렸는가, 집에서 한참 떨어진 동네부터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도 상쾌할 수가! 낯선 상대와 나눈 이야기를 곱씹으며 신나게 달리다가 잠깐 확인한 휴대폰에 새로운 메시지 알림이 떠있었다. 어디니? 줄 날씨도 좋고 네가 보고 싶은데 맥주 한잔 할래? 하고 날아온 다른 벗 메시지에 답장을 할 수 없었다. 다음 장소로 달려간다면 그리고 멈추지 않는 흥분 속에서 익숙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다 보면 분명 만남 이전의 떨림과 이후의 안도감으로 감싼 흥분을 잊어버릴 테니까, 2%보다 조금 더 알게 된 새로운 사람의 이야기가 넘치는 건배 사이로 날아갈 것만 같아 무서워 밤 타고 넘어온 메시지를 애써 무시한 채 열심히 바퀴를 굴렸다. 



  열 번 가까이 반복해서 듣는 노래따라 그래 걱정할 것 없어! 라 흥얼흥얼, 깜빡거리는 가로수길을 새차게 지나가는 밤공기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멋지게 마무리해주었다. 이날 밤 상대의 새로운 사람이었던 나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오롯이 속내를 다 내비친 어린 청춘의 봄이 그에게도 흥미로웠을까 -  

재밌는 밤이었어, 달도 비추고 쉽게 잊고 싶은 않은 재밌는 밤.


작가의 이전글 좋은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