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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12. 2019

홧김에 서울대 - 오빠는 연세대

'82년생 김지영' 71-75쪽

PD가 꿈이었던 김은영씨는 당연히 언론 관련 학과로 진로를 정했고, 자신의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추려 지난해 논술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교대 얘기를 꺼내자 김은영씨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싫다고 했다.

"난 선생님 되고 싶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왜 집 떠나 그 먼 대학에 가야 해?"

"멀리 생각해. 여자 직업으로 선생님만한 게 있는 줄 알아?"

"선생님만한 게 어떤 건데?"

"일찍 끝나지, 방학 있지, 휴직하기 쉽지,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그만한 직장 없다."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좋은 직장 맞네. 그럼 누구한테나 좋은 직장이지 왜 여자한테 좋아? 애는 여자 혼자 낳아? 엄마, 아들한테도 그렇게 말할 거야? 막내도 교대 보낼 거야?"

(82년생 김지영, 71쪽)

......................

"혹시 등록금이 싸서 그러는 거야? 진로가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이야? 졸업하면 곧바로 돈 벌어 올 수 있어서? 아버지도 요즘 불안한데, 돈 들어갈 동생들이 둘이나 있어서?"

"맞아. 그런 이유도 컸어. 그게 절반 정도고, 여러모로 교사가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게 절반 정도야. 근데 지금은 네 말이 맞다고 생각해."

엄마는 솔직히 대답했고, 김은영씨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73쪽)

.....................

김은영씨는 초등교육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진학지도 선생님과 여러 차례 상담하고, 직접 지방의 한 교대를 둘러보고는 원서를 사 왔다. 이번에는 되레 어머니가 만류했다.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경험이 있는 어머니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김은영씨는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엄마 말대로 좋은 직업이더라고. 일찍 퇴근하지, 방학 있지. 안정적이지. 무엇보다 마늘쫑처럼 싱그러운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뭔가를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멋져. 물론 소리 지를 때가 더 많겠지만."

김은영씨는 다녀왔던 교대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기숙사에도 합격했다. 스무 살,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딸 앞에 간단한 살림살이들과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당부들을 늘어놓고 돌아온 어머니는 김은영씨의 빈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그래도 아직 어린애인데 집에서 내보내는 게 아니었다고, 정말 가고 싶은 학교에 가도록 두었어야 했다고, 나처럼 만들지 말아야 했다고. 딸이 안쓰러운 건지 어린 시절의 자신이 안쓰러운 건지 알 수 없었다. (74-75쪽)


집안 사정으로 인한 어머니의 은근한 압력 때문인지, 정말로 교사가 되고 싶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김은영씨는 그런 사정 속에서 지방에 있는 교대에 진학했다. 우리 모두의 진로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고민이다.


김동진씨는 어릴 때부터 2살 위인 오빠 김욱진씨보다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다. 김동진씨는 김욱진씨보다 공부를 잘 했고, 그래서 오빠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김동진씨의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집안에서는 엄마에게 김욱진씨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았고 커가면서 점점 더 김욱진씨의 수발을 들어야 했지만, 유일하게 공부를 잘 해서 얻을 수 있는 조금의 칭찬이 김동진씨의 자존감이었다. 그런데 김욱진씨는 고등학교 2학년때인가부터 성적이 엄청나게 많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김욱진씨의 성적 향상을 늘 칭찬했고, 김욱진씨는 드디어 성적이 오르고 올라 고려대에 갈만한 성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고3이었던 김욱진씨가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갔지만, 원인도 병명도 없었다. 대신 그 시기에 바짝 공부해서 치러야 했던 배치고사를 망쳐서 김욱진씨는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하면서는 성적이 더 많이 올랐다. 드디어 김욱진씨가 연세대에 지원할 수 있는 모의고사 점수를 받아온 날, 엄마의 분위기 띄움으로 인해 온 집안 분위기가 띄워져 있던 그 날, 김동진씨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방문을 닫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중얼거렸다. "난 절대 연대 안 갈거야."


어릴 때부터 좋은 학용품은 모두 오빠가 가져가고, 로얄젤리는 오빠에게 주어지고, 남향 방도 오빠의 것이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김동진씨의 어머니는 김동진씨에게 저녁 상차림을 돕는 것과 다 먹은 상을 정리하는 것을 시켰다. 가끔 설거지도 했던 것 같다. 또 그러고 나서 엄마는 녹차를 끓여내고, 과일을 깎아서 한 쟁반 차려 들고, 저녁식사 후 바로 공부하러 방으로 들어간 오빠에게 가져다주는 그 모든 일을 김동진씨에게 시켰다. 김동진씨는 엄마가 시키는대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오빠에게 사과와 녹차 디저트를 갖다주고 나왔다가 무슨 일이 있어 잠시 후 다시 오빠 방에 들어갔던 김동진씨는 오빠가 방안에 돌아다니던 바퀴벌레 몇 마리를 잡아 투명한 통 안에 넣고 자신이 깎아서 가져다 준 사과 조각을 먹이며 사육하는 장면을 보았다. 김동진씨는 엄마에게 말했고, 엄마는 김욱진씨를 혼냈다.


그런 모든 일들 속에서도 김동진씨가 꿋꿋이 조금의 자존심이라도 지켜왔던 것은 그래도 내가 오빠보다 공부는 잘 한다는 바로 그 한가지였다. 그런데 김동진씨도 공부하기가 녹록치 않아, 서울대 보다는 연대를 목표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재수생이던 김욱진씨가 연대 성적표를 받아온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김동진씨는 김욱진씨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자존심상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김동진씨의 진학 목표는 무조건 '서울대'가 되었다. 연대보다 더 공부 잘 하는 대학은 서울대밖에 없으니까.


김욱진씨는 결국 연세대에 입학했다. 김동진씨는 아 이제 오빠의 수발 드는 시절은 끝났구나, 이제는 오빠나 엄마가 내 수발을 들어주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욱진씨는 신입생환영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술을 마시고 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고, 그 참에 아예 휴학을 했다. 김동진씨에게 녹차와 과일 디저트를 김욱진씨가 가져다주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김동진씨는 서울대 사진을 어딘가에서 오려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샤'자 모양의 정문과 눈덮인 캠퍼스 사진이었다. 김동진씨의 목표는 오로지 서울대였다. 영어를 좋아했던 김동진씨의 목표는 그래서 처음에는 서울대 영문과였다. 그런데 서울대 영문과에 지원하기에는 점수가 부족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언어인 서울대 불문과를 생각했다. 그런데 불문과에 지원하기에도 점수는 부족했다. 그래서 영어교육과로 눈을 돌렸다. 김동진씨는 교사라는 직업을 싫어했고,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서울대를 가려면 그랬어야 했다. 문과의 다른 학과들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당시 김동진씨의 고3 담임선생님의 별명은 '바보'였다. 김동진씨 또래들이 고1일 때 고1 담임, 김동진씨가 고2일때 고2 담임, 그리고 김동진씨가 고3일 때 본인도 고3 담임을 처음 해보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입시 지도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학생들이 붙인 악의적인 별명이었다. 김동진씨는 힘닿는데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영어교육과의 컷트라인은 만만치 않았다. 김동진씨와 '바보'선생님은 교무실에 앉아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흠...... 쪼금 불안하긴 한데......"

"........."

(둘이 동시에) "혹시 불어교육과?"

"그래, 여기는 붙을 거야. 여긴 반드시 붙어!"

"...... 그럼 불어교육과 할게요."


점수표 상으로 영어교육과 밑에 있는 것이 불어교육과였다. 김동진씨의 목표는 영문학을 전공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영어교육을 전공하여 훌륭한 영어선생님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서울대'였기 때문에 불어교육과가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만족해하며 지원했다.


김동진씨의 대학 입학 원서는 엄마와 김욱진씨가 들고 접수하러 나갔다. 어떤 고3들은 본인들이 가서 하기도 한다지만, 김동진씨의 엄마는 아마도 날씨도 춥고, 김동진씨는 집에서 공부를 한 자라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와 김욱진씨는 원서를 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문득 물었다.

"참, 2지망은 뭐 쓰지?"

"아무거나 써, 거기 무슨 교육과 많잖아. 어차피 되지도 않을텐데 뭐."

"응, 그래, 어차피 뭐."

그 때 당시에는 1지망, 2지망 제도가 있어서, 1지망으로 학생들의 대부분을 뽑지만 2지망으로 해당 학과를 적어낸 학생들 중에서도 소수의 학생을 뽑았다. 2지망으로 선발되는 학생의 수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에 대부분은 가능성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원을 하는 편이었다. 김동진씨도 마찬가지였다. 교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사범대 안에서 2지망으로 지원할 수 있는 다른 학과가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원서접수를 하고 들어온 엄마와 김욱진씨는 2지망을 '교육학과'로 써냈다고 했다. 내가 그런 과에 가서 뭘 하냐고 김동진씨가 되묻자, 엄마는 "아, 다른 과들은 정말 다 흐질하고 별볼일 없었는데, 니 오빠랑 나랑 보니까 교육학과는 괜찮아 보이길래 그냥 그거 썼다. 어차피 안 될 건데 뭐 멋있는 거 쓰지 뭐." 그러게, 뭐 어차피 안될 거니까, 하고 김동진씨는 피식 웃었다.


수능 말고 대학별로 본고사를 보던 시절이었다. 불어교육과 본고사장에 들어간 김동진씨는 어리둥절했다. 김동진씨말고 다른 수험생들이 친밀하게 서로 얘기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본고사를 잘 못 보고 나온 김동진씨는 그 아이들이 '외고'에서 온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 외고. 생각도 못했다. 불어를 잘하는 외고 아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김동진씨의 바보 담임선생님도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후에 고백했다. 그 당시 불어는 수능시험 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교과서 진도조차 마치지 않았다. 김동진씨는 혼자 공부하다가 나중에 급 섭외한 아빠 친구인 불어 학원선생님에게 한 달간 교과서 진도를 마무리하는 과외를 했다. 그 정도로 허술하게 불어를 공부하고 불어교육과에 지원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불어에 특화된 교육을 받은 외고 불어과 학생들과 함께. 김동진씨는 머리가 띵했다. 재수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싶었다.


합격자 발표는 전화로 확인했다. 전화상의 ARS 목소리는 김동진씨가 교육학과에 합격했다고 말해주었다. 김동진씨는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채 멍하니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 교육학과 붙었대."


..................


김동진씨의 엄마는 재수하고 의대에 가라고 말했지만, 김동진씨는 첫째로 이 지긋지긋한 공부를 1년 더 하는 끔찍한 일을 하기가 싫었다. 둘째로는 일단 의사가 되기도 싫었다. 세째로는 만일 재수하면서 문과에서 이과로 바꿔서 의대에 간다 하더라도 서울대 의대는 꿈도 못 꿀 점수임이 틀림없었다. 김동진씨의 목표는 김욱진씨보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즉 서울대를 가는 것, 그 한 가지였기 때문에 김동진씨는 2지망으로 붙은 서울대 교육학과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까스로 오빠보다 더 좋은 대학에 다닌다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으으 오늘도 길다. 나의 서울대 합격 스토리. 하지만 아마도 누구라도 이 부분은 길게 쓸 것이다. 누구의 인생에서나 중요한 이야기니까.

애초에 나는 교육학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구나 하고, 원래 알던 사실이지만 새삼 이 글을 쓰면서 발견하게 된다. 평생교육을 공부하는 길에서 여성학을 만난 게 얼마나 내 인생에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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