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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05. 2020

그리고 아빠의 죽음

이제는 '82년생 김지영' 소설도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김지영씨와 김동진씨의 인생은 사실상 처음부터 달랐고, 계속 다르니까요. 또 그 동안 '82년생 김지영' 소설의 진도와 발맞추어 나가느라고, 그 사이사이에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뛰어넘은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휴재 후, 주 1회 연재로 바꾸면서,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들은 좀 뛰어넘습니다.


김동진씨의 아빠는 김동진씨가 26살일 때 돌아가셨다. 직계가족 친척들만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힘들어하셔서 가족들만으로 장례식을 치른다고 말하라고 했다. 친척들은 장례식장에 와서 이제 아빠가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말했다. 김동진씨에게는 그런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김동진씨가 어렸을 때에는 아빠가 함께 교회에 출석했지만, 어느 날 아빠는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나야 그냥 따라 가는거지 뭐'라고 말했고,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교회에 함께 '따라'가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믿음이 없을 것이라고 김동진씨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들은 아무리 고모며 삼촌이며 친척이어도 아빠가 평소에 어떤 신앙생활을 했는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아빠가 천국에 가셨다고 말하고 있었다. 김동진씨는 당신들이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 김동진씨는 석사 졸업을 위해 마악 논문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 때 당시 김동진씨의 전공에서는 석사공부를 5학기 동안 하고 졸업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김동진씨는 논문 주제를 빨리 정하지 못하겠고, 조금 여유를 두고 논문을 쓰고 싶어서 지도교수님에게 5학기에 졸업하겠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그 해 5월, 김동진씨는 데이터 수집을 하면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김동진씨의 오빠는 4학기만에 이공계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김동진씨의 엄마는 한 학기 학교를 더 다니는 김동진씨를 마치 지진아처럼 취급했다. 아무리 아빠가 돌아가셨지만, 그렇다고 논문을 미루고 6학기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장례식 후 잠시 쉰 다음 김동진씨는 바로 다시 학교로 복귀해서 미친듯이 논문을 써댔다. 그리고 그 해 8월에 졸업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김동진씨가 '여위었다'는 말을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는 김동진씨에게 살이 빠졌다고 했고, 그에 더해 누군가는 여위었다고 했다. 어쨌거나 김동진씨는 한동안 미친듯이 논문만 써대서 결국 졸업을 했다. 


김동진씨의 엄마는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마치 아빠와 원수처럼 지냈었다. 거의 아빠를 혐오하는 것 같았다. 김동진씨의 엄마는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엄청 울었고 그 이후에도 밤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면 항상 소리지르고 하소연을 하며 울었다. 딱히 아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라기 보다는, 생전에도 나를 괴롭히더니 죽어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웬수같은 놈을 욕하는 것 같았다. 늘 맥주 한 잔을 하고서 그랬기 때문에 김동진씨는 그게 엄마의 술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대하는 것이 힘들었다. 


아빠의 죽음으로 김동진씨는 그동안 믿어오던 기독교 신앙에 처음으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지금 나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고, 하나님은 공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부당한 하나님인 것 같았다. 대학에 다닐 때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던 김동진씨는 아는 친구 선배들이 많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신앙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의 믿음이라는 것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김동진씨의 신앙적 질문에 만족스런 답을 주지 못했다. 목사님을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대형교회 목사님이라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졌고, 목사님이라고 답을 알까 싶어서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읽고 그 책의 훌륭한 논리에 설득되어 결국 기독교를 떠나지는 않기로 했다. 


저는 석사 졸업 후 전공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조원으로 1년간 일했고, 그리고 나서 미국 유학과 동시에 결혼을 했습니다. 오빠는 한 광역시에 있는 대기업 연구소에 병역면제로 취업을 해서 회사 사택으로 이사를 나갔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을 건너뛰고, 다음 편에서는 유학생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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