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아이로부터 시작된 코로나 일기
고등학생인 큰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다. 같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가 며칠 후 나도 덜컥 걸려버렸다. 계속 음성이 나온 둘째아이와 남편은 내가 확진 판정을 받은 날 이후로 집 밖 호텔을 전전하고 있다.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난 왜 이리 힘든지, 일단 기록에 남겨보기로 했다.
아이 1일차. 3.24.목요일.
나중에 들은 말인데 아이는 목요일부터 목이 아팠다고 했다. 그런데 많이 아픈 것도 아니고, 아침에만 아프고 오후엔 안 아프길래 이야기를 안 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시작인 것 같으니 이 날을 1일차로 해야할까, 검사받은 날을 1일차로 해야할까 고민하다 그냥 증상 시작된 날을 1일차로 잡았다.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대면수업을 했다. 대면수업을 열심히 해주니 나로서는 좋았지만, 결국 아이는 식당에서 급식 먹을 때 감염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21명인 현재 아이의 학급에는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로 결석 중인 아이들이 나의 아이 포함 7명이나 되었다. 3분의 1인 셈이다. 게다가 코로나에 걸렸다가 나은 아이들까지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학교들이 등교를 강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작년까지만 해도 급식 먹을 때 식당에서 거리두기로 한 칸씩 띄어앉기를 했다고 하는데, 올해는 왠일인지 띄어앉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이도 그냥 옆의 아이랑 붙어 앉아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물론 칸막이가 있긴 하지만 완벽히 차단되는 것이 아니기에, 학원도 안 가고 오로지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하는 아이가 코로나를 어디서 걸렸을까 생각해보다 내린 결론이었다.
아이 2일차. 3.25. 금요일.
사실 나와 아이는 이 날 거의 얼굴 보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침에 주방에 나와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주고 나서 나는 아마도 최근 자주 그러듯이 거실 한가운데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조금 있다 둘째아이가 일어날 것이기에 다시 잘 수는 없고, 하지만 아직 졸리니까 일단 거실에 눕는 것이 요즘 나의 습관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아침을 먹을 때 아이 얼굴을 마주보지 않았을 것이다.
또 우연찮게 이 날 저녁에 조금 이른 저녁약속이 있었다. 하교하고 오는 아이와 나는 현관문 밖에서 서로 마스크를 쓴 상태로 마주쳤다. 엄마는 저녁약속이 있어 다녀온다고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며 이야기나누다가 카페 문을 닫는 9시에 일어나 집에 왔다. 집에 와보니 아이가 이미 자고 있었다. 둘째아이 말로는 언니가 목이 아프고, 자가키트는 음성이 나왔는데, 하튼간 일찍 자러 들어갔다고 한다. 앗 혹시,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 계속 목이 아프다고 하면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 3일차. 3.26. 토요일. PCR 검사. 이 날짜부터 공식 자가격리.
아침에 아이는 여전히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자가키트로 양성이 나왔다. "아름다운 두 줄!"이라고 외치길래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혹시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뭐?!"라고 되물었다. 어제 밤만 해도 음성이었는데 오늘은 두 줄, 양성이란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올 것이 온 건가, 검사는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생각들을 마구 하면서 검색을 했다. 검색을 하고 남편과 의논 끝에 가족이 다같이 서울시청 앞 선별진료소로 가기로 했다. 출석인정용으로는 근처 병원에서 하는 신속항원검사도 된다는 것을 담임선생님께 확인했지만, 이미 양성인 아이를 데리고 공간이 협소한 병원에 가는 것보다는 야외에 있는 선별진료소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선별지료소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이는 자가키트 양성이므로 PCR 검사 줄로 가고, 나와 나머지 가족들은 PCR검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신속항원검사 줄로 갔다. 입구에서 큐알코드 문진표를 작성하고, 긴 천막 안을 한참 걸어들어가, 창구 같은 데에서 이름을 말하니 내 이름과 오늘 날짜 등이 적힌 조그만 스티커를 주었다. 신속항원검사를 하는 곳으로 가니 파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앉아있었다. 집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키트인 것 같은데 역시 전문가라 코 양쪽을 여러번 잘 쑤셨다. 옆에 대기하는 공간인 천막 안에서 15분간 기다리면 이름을 부를 거라고 했다.
천막 안에 할 일 없이 앉아있는데 저 멀리서 PCR검사를 받고 나온 아이가 보였다. PCR검사 결과는 내일 오전 중에 문자로 알려준다고 하길래 큰아이는 먼저 집에 보냈다. 얼마 후 나와 가족들의 번호가 호명되었다. 음성이니 그냥 집에 가면 된다고 했다. 입구에 서 있던 친절한 안내해주는 분이 아까 큰아이가 PCR검사를 받으러 가는 걸 보았고, 만일 내일 오전에 큰아이 검사결과가 양성이 나오면 그 확진 통보 문자와 가족관계증명서를 갖고와서 나머지 가족도 PCR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큰아이는 집에서도 양성이니 PCR도 양성이겠지? 우리도 그럼 또 저기 가서 이번엔 PCR 받아야 되네?! 우린 음성이 나올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집에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목 아플 때 먹는 코로나 상비약을 달라고 했다. 세상에, 도라지 성분 액상 약 스틱 한 개에 2천원, 또 무슨 알약도 10개쯤 들은 한 팩에 2천원이었다.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 진통제는 그렇다 쳐도 쟤네들은 너무 비쌌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 이걸 먹여야겠으니 사왔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많이 아픈 것 같지는 않아서 병원을 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한 집에서 가족의 자가격리는 불가능.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가격리가 아니었다. 방 2개, 화장실 1개인 집에서 작은 방 1개는 첫째와 둘째아이의 공동 방이었다. 사람들은 화장실이 2개여도 한 집에선 자가격리가 불가능하다고들 하지만, 1개는 정말... 나름 살균 스프레이를 갖다두고 매번 칙칙 뿌리고 닦고를 반복했지만 의심스러웠다. 아이에게 식사를 차려서 방으로 갖다주긴 했지만 아이는 식사 쟁반을 들고 나오고 나와서 주방에서 간식을 챙겨먹기도 하고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받아 방에 들어가곤 했다. 식구들에게 실리콘장갑을 끼라고 말했는데 정작 큰아이가 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마스크들은 kf94로 다들 쓰기는 했다.
누가 나에게 한 집에서 가족과의 자가격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준 적도 없었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개념이 없어서 한 번은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에 있는 큰 테이블(식탁으로도 쓰지만 큰아이의 책상이기도 하다)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남편은 기겁해서 제발 방에 들어가라고 했고, 그제서야 아이는 귀찮아하며 방에 들어갔다. 뭐 대략 이런 식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가격리가 아니었던 자가격리라고나 할까.
이 날부터 큰아이는 침 넘길 때마다 목이 아프다며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다행히 열도 없고 다른 증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머지 동거가족들.
큰아이와 달리 나, 남편, 둘째아이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아, 나와 남편은 기분 탓인지 나는 살짝 코가 시큰거리다 말았고 남편은 살짝 목이 안 좋다면서 집에 있는 일본 감기약을 입에 털어넣었다. 바깥에 외출도 못하고 우리 뭐하지? 엄마, 놀자!라고 중학생인 작은아이가 말했다. 나는 다음주 화요일까지 마감인 강의원고가 있어서 혹시 나도 증상 생기기 전에 미리 끝내두어야 하는가 잠시 망설였지만, 일단 아이랑 같이 놀았다. 아마 같이 집에서 넷플릭스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얼마 없는 나의 일정들이 생각났다. 일단 PCR 검사결과가 내일 나오기에 아직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확진자는 아니지만, 아침에 분명 자가키트에 선명한 두 줄이 나오지 않았던가. 그 정도면 확실히 양성이었다. 나는 아무 증상이 없지만 일단 아이와 한 집에 살고 있기에 나도 언제 옮을지 모르며, 어쩌면 이미 옮았는데 무증상일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남편이 어딘가에서 찾아낸 권고문에는 PCR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동거인들도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라고 되어 있었다.
아... 별 거 없는 나의 최근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 내일 일요일에 있었다. 가수 이주영이 우리집에서 도보로 3분거리에 있는 에무시네마의 야외무대에서 하는 콘서트, 이름하여 '격조콘'이었다. 줌마네의 지인들도 온다고 해서 나도 얼른 표를 예매해두었던 게 있었다. 코로나 2년 동안 쇼(이주영의 별칭)의 공연을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아니 그 어떤 콘서트도 혹시라도 밀폐된 공연장 안에 있다가 코로나에 걸릴까봐 가지를 못했다. 그런데 우리 집 앞에 온다 하고, 무대도 야외무대고, 카페와 루프탑과 야외공연장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헤드폰으로 들으면 된다 하니, 코로나 시대에 정말 적당한 무대 구성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차마 갈 수가 없었다. 너무 가고 싶어서 그냥 갈까 고민도 했지만, 혹시라도 나에게 이미 바이러스가 있을까봐, 만일 그렇다면 이주영 공연장에 가서 코로나를 옮인 장본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이 오니까 얘기도 할거고 혹시라도 커피도 마시고 싶어진다면...?! 안되는 일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쇼와 다른 지인에게 상황 설명을 하는 카톡을 보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얼마 없는 나의 일정 중에 다음주 월요일에 코시국동안 한 번도 못 본 선배언니를 2년만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역시 눈물을 머금고 취소의 카톡을 보냈다. 나머지 일정은 온라인이니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그 날은 그렇게 그럭저럭 지나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