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거기서 그렇게 만났다.

시작의 모습은 절대 예상할 수 없다.

어느 여름, 그녀는 이별을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나와 헤어질 수 있냐며 상대방을 원망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첫번째 남자친구와 헤어지며 사랑은 변하는 것임을 배우고, 영원한 사랑을 믿는 순진함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고 두달 뒤, 그녀는 그를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녀가 그와 함께하면서 사랑에 젖어드는 이야기다.


어느 여름, 그는 사랑이 고팠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연애를, 제대로 된 사랑을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소개팅을 받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그가 바라는 진정한 사랑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과연 그런 사랑이 존재하는가, 모두 드라마에서 만든 판타지는 아닐까 의심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고 두달 뒤, 그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가 그녀와 함께하면서 사랑을 퍼붓는 이야기다.




5년이었다. 그 긴 연애를 끝내고 그녀는 전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서 그녀에게 무엇이 남았나 생각해보았다. 전남자친구와 이런저런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 끝나면서 별로 기억하고싶지 않아졌다. 그러면 그녀에게 5년간의 기간 동안 그녀만의 추억은 별로 없을까? 그녀는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별로 없었음을 씁쓸하게 인정했다. 그녀는 이별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동안 연애 말고는 딱히 한 게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의미가 결코 퇴색되지 않을 그녀만의 고유한 경험을 쌓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그 고통은 아주아주 길게 갔다. 사랑보다 내 삶을 먼저 챙겨야지.


그래서 그녀는 연애 말고 다른 걸 해보기로 한다. 그동안은 용기가 나질 않아서 혹은 게으름 때문에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하며 의미 있는 경험을 쌓아보기로 결심한다. 일단, 이별 때문에 우울하게 있기 싫다. 그래, 여행을 가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깔깔거리며 웃자.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라오스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다. 이제 연애도 안하는데 돈도 나를 위해서만 쓰자며 호기롭게 아주 좋은 호텔도 예약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소비는 엔돌핀을 솟게 한다. 하지만 라오스행 비행기에서 핸드폰에 저장된 커플사진을 정리하다가 자꾸 눈물이 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는 자신에게 이제 화가 난다. 그만 울고 싶다며 과감하게 영구삭제 버튼을 누른다.


그녀는 친구와 방비엥에서 모두가 한다는 블루라군 투어를 신청했다. 뚝뚝을 타고 블루라군으로 가는데, 모두가 한국인이었다. 방비엥은 한국인 천지였다. 그녀는 뚝뚝에서 내리자마자 홀린듯이 다이빙 대로 올라갔다. 용기를 내자고 결심한 탓에 의무감 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지기 싫다는 마음에 경쟁심 반으로 누구보다 빨리 올라갔다. 그녀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고 생각했지만 막상 올라가보니 엄청 무서워했다. 계속해서 다음사람에게 먼저 뛰라고 양보를 하고, 결국 몇분 동안 헤맨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화이팅 외치는 소리에 민망해져서 자세를 바로잡는 사이 나무에서 미끄러져 다이빙을 의도치않게 해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가 보고 있었다.  




3년이었다. 그는 일을 시작하고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살았다. 해외여행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일만 하다가 무엇이 남을까 생각해보았다. 일을 하면 인정도 받고 성취감도 느끼지만 별로 행복하진 않았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는 충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방에 돌아오면 공허했다. 주말을 반납하고 일에 매달렸지만, 일을 위해 산다는 느낌이 들때면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5년차가 되면 사직서를 내고 보다 자유롭게 살아보리라. 그때까지만 버티자. 그리고 일보다 내 삶을 먼저 챙겨야지.


그래서 그는 일 말고도 다양한 걸 시도했다. 그동안은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혹은 게으름 때문에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기로 한다. 독서 모임도 가입해서 참석하고, 드라마 도깨비 정주행도 했다. 도깨비 여주인공 김고은에 빠져서 팬미팅에 참여하는 등 덕질도 했다. 정적인 활동을 했으니 이제 좀 역동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다. 그래, 여행을 가자. 여태까지는 엄두가 나질 않아서 내지 못했던 장기휴가를 해외로 가야지. 가서 정신없이 놀아버리겠어. 그는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라오스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다. 그들은 걱정도 두려움도 없기에 즉흥여행을 하자며 숙소 예약따위 스킵해버린다.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만의 여행이냐. 그들은 라오스행 비행기에서 여행 직전에 미리 업무처리를 다 하느라 부족했던 잠을 쿨쿨 잔다.


그는 친구와 방비엥에서 모두가 한다는 블루라군 투어를 신청했다. 뚝뚝을 타고 블루라군으로 가는데, 그에게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블루라군에 도착해서 그 사람이 뽀르르 다이빙대로 씩씩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뛰어내리지 못하고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에게 계속 양보한다. 그도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그녀 뒤에 선다. 화이팅 소리치니까 주변에서 모두 화이팅 화이팅 따라서 응원을 한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미끄러져서 뒷통수로 물에 떨어진다. 그는 그 모든 게 대책없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그는 멋있게 다이빙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이빙을 하면서 잃어버린 모자를 찾느라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모자를 찾아주려고 가까이 가면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녀는 김고은을 닮았다.



의도치 않게 다이빙에 성공한 그녀는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자 스릴을 즐기게 되었다. 원래 두려움이란 처음만 크게 느껴지지 다음부터는 별 것 아니게 된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무에 올라가고 뛰어내렸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많이 뛰어내리고는 오랜 시간 물에 젖어 있어 살짝 한기를 느낀다. 햇볕에 몸을 따뜻하게 쬐여주고 있는데, 사람 머리가 퐁당퐁당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누군가가 물에 빠진건가 아닌건가 이건 무슨 상황인가 걱정이 들 찰나에 한 사람이 구해주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했고, 구해준  사람은 구명조끼 입고 들어가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녀는 다행이다 생각하며 그제서야 그를 인지했다. 뒤에서 화이팅 외쳐주던 사람을. 모자를 같이 찾아주겠다고 나선 사람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 사람을.




인연은 억지가 통하지 않는다. 끝난 인연을 억지로 이을 수도, 없는 인연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도 없다. 인연은 여름과 같아서 태풍이 휘몰아치다가 갑자기 다음날 햇볕이 내리쬔다. 변덕스럽다. 그 변덕에 사람들은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린다. 휘청휘청거리다가 그와 그녀는 라오스 방비엥에서 만난다. 전혀 의외의 곳에서 인연은 햇볕을 보여준다. 거기서 그렇게 만날 줄이야. 시작의 모습은 절대로 예상할 수 없다. 그의 세상에 햇볕이 선명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