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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Nov 10. 2019

한 번쯤은 허리를 곧이 세우고

출생의 우연

보기에 불편하고 마음에 담기 무거운 것들을 여행에서는 자주 마주한다. 여행이라서 그렇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지만 그것들 앞에서 나는 깊이 가라앉고 만다. 그럴 때는 자주 눈을 감고 등을 돌려버렸다. 보지 않겠다, 가 아니라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꾸만 내 눈을 감게 하고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은 것은 바로 “출생의 우연”이었다.



출생의 우연. 

축복받아야 마땅할 새로운 생의 시작에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것. 그러므로 누구나 속수무책이고 누구든지 책임을 회피하기도 쉬운 것. 그래서 무섭고 겁이 나는 것.

나는 불교나 힌두교의 신자가 아니기에 윤회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출생이라는 축복의 순간에 전생을 들이대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기력해지고 만다. 


“지금 네가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네가 전생에 잘못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것만큼 잔인한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말로 모든 것을 무마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누군가에겐 처절하고 잔인하다. 하지만 그것들 앞에 나는 비겁하게도 그것의 반대편, 출생의 행운에 기대어 내 삶에 안도했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비겁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랬었다. 



하푸탈레에서 버스에 몸을 싣고 한 시간쯤 달리니 립톤의 녹차 밭이 가득한 곳엘 도착했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건 산 아래 녹차를 가공하는 공장까지 뿐이다. 거기서부터는 세 시간쯤 두 다리로 직접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산을 오르는 작은 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산비탈이 자리한다. 산비탈 가득 꼼꼼하게 녹색의 녹차 나무가 가득했고, 그 사이를 구름이 수줍다는 듯 살짝 걸려있었다. 


녹차 밭은 왜 이렇게 높은 산에, 그것도 평지가 아닌 비탈에 있어야만 할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에 물어보니 평지의 땅은 대부분 농사를 위해 쓰인단다. 그리고 차나무를 키우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선선한 기후인 높은 산이 유리하다고. 녹차 잎은 기계를 사용해서 수확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일일이 녹차 잎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수확하기에 적당한 것들을 직접 손으로 따야 한다. 이 깊고 가파른 산비탈에서 말이다. 이렇게 산의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녹차 나무들이 야속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긴 했지만 저곳에서 날카로운 비탈에 힘겹게 불안한 발을 붙이고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혔다. 

스리랑카의 녹차 밭에서 녹차 잎을 따는 사람은 대부분 타밀족 여자들이다. 이들은 사실 인도가 고향이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오로지 노동력의 수급을 위해 스리랑카로 강제 이주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녹차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어머니가, 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숱하게 많은 괄시와 차별을 견뎌내면서 말이다. 그 힘겨웠던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순박한 표정처럼 여렸던 마음도 여러 번 다치고 아물기를 반복했겠지. 그래서 이제는 참 많이 단단해져 어느 정도의 시련이야 이 한 번 세게 깨물고는 넘길 그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내가 미안해졌다.


매일매일 커다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기를 반복하며 녹차 잎을 따야 하는 이들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도대체 얼마만큼 무겁고, 어느 정도로 깊으며, 얼마나 두꺼울까? 머리를 짓누르는 바구니가 무거워질수록 숨은 차오르고 다리에 힘은 풀리겠지만 그것만큼 수입은 늘어간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지만 그래도 그들의 허리 숙임에 그들의 자식들이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자신의 몸을 깎고 깎아서 가족을 돌보는, 아니 돌봐야만 하는 그들의 삶이 애달팠다. 

삶을 살아갈수록 그녀들의 몸은 닳고 닳겠지. 그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힘든 것이 삶이다. 머리를 짓누르고 두 다리를 한없이 땅으로 잡아 끄는 것이 없더라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자꾸만 삐걱거리고 넘어지고 아픈 것이 삶인데. 혼자의 몸을 가누기에도 버겁고 숨 쉬기도 어려운 높은 산에서, 서있기도 난감한 비탈 위의 녹차 밭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숙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 

이곳은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없었고, 자식에겐 이런 삶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결단조차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니 너무나도 푸르게 빛나던 녹차 잎들이 오히려 잔인해 보였다. 정말이지 잔인한 푸른빛이다.



가파른 녹차 밭 사이, 작은 오솔길을 오르고 오르는 동안 이상하게 녹차 잎을 따는 타밀 여인들을 보지 못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오늘은 종교행사가 있는 날이라 휴일이란다.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무슨 종교행사인지도, 무엇을 기리기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인들이 오늘 하루쯤은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오늘의 삶은 온전히 그녀들만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는 얕은 희망도 품어본다. 밀린 빨래를 하고 가족들의 밥을 짓고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삶이 끈질기게 메여있는 푸른 녹차 밭이 아니라 허리를 쭉 펴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실컷 바라봤으면 좋겠다. 하루쯤은 그래도 되겠지.

힘겹게 도착한 산 정상에서 그녀들이 땄을 녹차 잎으로 우려낸 진한 홍차 한 잔을 마셨다. 향이 진하고 맛이 좋았다. 하지만 결코 맛있게만 마실 수 없는 홍차였다. 그 안엔 그녀들의 고된 삶이 있을 테니.


산을 내려오는 길. 

길 위에서 타밀족 여자아이를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아이는 몇 번인가 망설이더니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여린 손으로 거친 내 손에 연두색 앳된 녹차 잎을 쥐어준다. 그 손이 너무 따듯해서, 오랜 친구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은 정겨움이 있어 한참을 아이와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가게 된 아이의 집. 이번엔 아이게 나에게 하얀 각설탕을 건넨다. 우리에겐 커피에 넣어먹는 네모난 각설탕이 이곳 아이들에겐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손을 잡고 있는 여자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다시 한번 출생의 우연이라는 말이 나를 친다. 아이와는 반대편, 먼 곳에서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이가 날 바라보며 웃는다. 아이의 미소엔 작은 그늘이 있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고개를 돌려 괜히 땅을 바라본다. 혼자 속으로 앞으로 아이의 삶을 가늠해 본다. 이내 그 무거움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만다. 출생의 우연이므로 네 잘못이 아니란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무섭다. 

이런 세상이 무섭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다시 지금의 순간을 접어 숨겨둔 채 잘 살아낼 내가 무섭다. 아이가 건넨 녹차 잎은 아마 아이가 살아가야만 하는 삶이 될 것이고, 건넨 각설탕은 아이의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다.

쓰디쓴 녹차 잎과 달달한 설탕을 내 손에 쥐어주는 아이. 그 아이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자신의 삶을 도와달라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그래도 녹차 밭이 있어서 이렇게 달달한 설탕을 먹을 수 있잖아요, 라는 스스로의 위안이었을까.


그 두 가지를 모두 손에 꼭 쥐고는 속으로 이 아이가 앞으로 허리를 곧이 세우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으면 했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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