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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이야기 Aug 31. 2017

우산을 쓰다.

잃어버린 우산

우산을 쓰다.





구름은 이미 비를 머금고 있었다.

바로 쏟아진데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하늘이었다.


하지만 난 우산을 챙기지 않고 현관을 나섰다.


손잡이에

엄마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우산마저,

잃어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 우산은

어제 잃어버린 자두 색 우산에 비해

훨씬 더 튼튼하며, 새것이기도 했다.


사실 우산뿐만이 아니었다.


지갑, 휴대폰, 키, 모자, 가방 등을

나는 자주 분실하고 다녔다.

심지어 어떤 날은

자전거를 길에 두고 온 적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돌아 올 때는 깜박하고 버스를 타고 와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깜빡이가 되어 있었다.




깜빡이로 살면서, 나는 점점 나를 믿지 못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복창' 이었다.


몸에 지닐 물건을 혼잣말로 복창하면서

하나씩 챙기는 것이다.


“지갑, 열쇠, 휴대폰”


 


효과는 있었다.


적어도 3가지 물건은, 내 몸에  일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시나 우산 이었다.


챙기는 것보다, 무사히 가져오는 것이 어려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손잡이 우산은, 언제든 손에서 떠날
불안감 까지 내게 안겨주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내게 우산은

비를 막아줄 도구가 아니라, 그냥 짐이었다.


우산을 분실한 날은,

우산하나 챙기지 못하는 나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때문에
차라리 비에 젖는 것이, 우산을 분실하고 빈 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것보다 덜 비참했다.




시립도서관 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렸고,

비가 그 정도를 참아주면,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다행히 도서관 가는 길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이왕 비가 쏟아 질 거라면,

옆에 카페나 편의점이 있으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며, 비 오는 풍경이나

실컷 즐기게 말이다.


집 밖으로 나몇 걸음을 옮겼을 때,

콧등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다시 하늘을 올려 보았다.


집밖으로 나오는 그 짧은 사이에,

살짝 흐릿했었던 구름이, 먹구름으로 변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비가 쏟아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제도 오늘 같은 먹구름 잔뜩 겁만 주다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덕에 챙겨간 우산만 잃어버린 날이기도 했다.


그래도 급할때를 대비해서

옆구리에 매고 있던  가방을

머리위로 올려 보았다.


최소한 머리는 가릴 수 있는 면적이었고,

손으로 들기에 가벼웠다.

우산대신 활용할 것이다.


그런데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다.


아차! 싶어 가방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보이지 않았다.


또 깜박한 것이다.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뒤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동안,

한숨을 쉬며 조용히 책 제목을 복창했다.





책은 신발장 옆 에 있었다.


우산을 생각하다가, 두고 나온 것이었다.

책을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손으로 콧등을 닦으며 거울을 봤다.
앞머리도 살짝 젖어있었다.


하늘은 그 사이 더 어둡게 변해 있었다.

어제 아껴둔 비까지 한꺼번에 쏟아낼 표정이었다.


침을 삼켰다.


책만 반납하고 오면 되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우산 손잡이를 놓지 않을 거라 다짐도 했다.


주문을 외우듯 우산을 3번 복창하며,

엄마 이름이 적힌 손잡이 우산을 잡았다.


도서관을 향해10분 정도를 걸을 동안

장대비는 쏟아지지 않았다.


“쳇! 이럴 줄 알았어.”

라는 푸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굵은 장대비가 내 온몸위로 쏟아져 내렸다.


도서관을 불과 80m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였다.


나는 엄마 이름이 새겨진 우산을 펼쳐 들었다.


우산을 가지고 온 보람이 있었다.


장대비를 막아주는 손잡이 우산 창에서,

엄마의 스웨터 냄새가 났다.


어느새 우산 밖 풍경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산을 펼쳐든 사람들, 건물처마 밑으로 몸을 숨기는 사람들, 어디론가 뛰어가는 고양이까지,


모두가 껍질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달팽이처럼

차분하게 각자 자기만의 피신처로 숨어들어갔다.





하지만 끝내 피신처에 숨어들지 못한 달팽이가

내 시선 속에 들어왔다.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였다.


껍질을 잃어버린 달팽이처럼
할머니는 굵은 장대비를 온몸으로 견디고 계셨다.


겨우 옆구리에 걸쳐진 목발만이  

할머니를 위태롭게 세워놓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달려가서, 달팽이 할머니에게 껍질을 만들어 드렸다.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병원!”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돌아 가야할 병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사고로 입원해 계시는 중인데, 외출했다가 병원으로 다시 들어가는 중이라고 하셨다.


 

“왜 혼자 다니세요?”


할머니는 입술을 몇 번 다실뿐

대답을 하지 못하셨다.


생각해보니 저 질문은 내가 들었던 불편한 폭언들 중 하나였다.


다시 공손한 제안으로,

아무렇게나 토해낸 앞선 내 질문을 덮으려 시도했다.


“저랑 병원 같이 찾아봐요. 제가 병원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껍질을 둘러쓴 할머니의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두리번거리며 주변병원을 찾았다.

도서관 앞 사거리 주변은 병원뿐만 아니라, 약국들로 즐비한 골목이었다.


아침마다, 침과 뜸을 하며 물리치료를 한다는 할머니 말에 의지해, 한방병원을 우선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개원한지 얼마 안 된 한방병원을 찾아냈다.


나는 할머니에게 멀찍이 보이는 병원간판을 가리키며, 귀에 대고 병원 이름을 복창했다.


 “바른 한방병원! 맞아요. 할머니?”


할머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던 날 밤에도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하셨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할머니는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그날의 기억에 대해
쏟아 내셨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의 껍질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나만 살아남았어! 영감이........ 영감만........ 뭔 염병하고 이 꼴로 나만 살아남아서........”


나는 껍질이 벗겨진 할머니의 어깨를 꼭 안아드렸다.


거기서 엄마가 입었던 스웨터 냄새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내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할머니와 헤어지기 전까지 나는 머릿속으로 할머니께 해드릴 위로의 말을 생각했다.


하지만 적당한 말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다시 내 입은

방정맞은 말을 던지고 말았다.


 “할머니 힘내세요.


우산은 필요할때 둘러보면 꼭 있더라구요"



도서관에 도착해 책을 반납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다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는 듯 한

따가운 햇살이었다.


손에는 가져간 엄마 우산대신,

새로 빌린 책들만 들려져 있었다.








엄마가 내게 남기고자 한 것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우산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은 나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엄마의 우산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우산이 되어가길 원했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엄마 우산이 새겨진 우산을 지키는데 만

머물러 있었다.





우산을 짐으로만 여겼던 이유도


혼자 쓸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껍질을 잃은 달팽이 할머니를 만나서 깨달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비를 막아줄 우산을 새로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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