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불면증의 시작
“돈을 왜 그거 밖에 못 모았어?”
번번이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한국 나이 서른에 입사한 회사 연봉은 삼천 초·중반대였다. 방송국과 역사가 오래된 신문사와 비교하면 연봉 차이가 꽤 컸지만 업계 전체와 견줘보면 ‘괜찮은 수준’이었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 문과 내에서 전문직과 일반 회사원과의 구분에서 보자면 삼천 초·중반대 연봉은 말 그대로 ‘괜찮은 수준’으로 볼 수 있었다. 연봉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만족감도 컸다. 대개 펜 잡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KOSIS 국가통계포털 자료를 보면 내가 취업에 성공한 2019년 25~29세 평균소득은 251만원, 중위소득은 237만원이다. KOSIS 국가통계포털은 만 나이로 통계를 산출하는데, 만 30~34세 평균소득과 소득을 보면 각각 312만원, 285만원이다.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인 중위소득으로 따져보면 나의 월급은 237~285만원 사이에 있었으므로 첫 회사의 처우가 나쁘다고만 볼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오가니 지금의 장인·장모에게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기 위해 날을 잡았다. 이 사이, 우리 둘 사이에는 약간 날 선 대화가 오갔다. 돈에 대한 말은 마음을 예리하게 갈랐다.
“돈을 왜 그거밖에 못 모은 거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3000만원을 모았다는 말을 기억한 그녀가 물었다. 그녀도 나와 결혼은 하고 싶은데 현실적인 이유가 걸림돌로 작용한 게다. 원하는 집에 가구와 가전을 고르고 채우는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로 인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목돈을 모을 수 있는 정부 정책인 ‘청년내일채움공제’ 덕분에 3년 근무한 끝에 3000만원을 모았다. 대출 이자와 관리비,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이 돈도 잘 모았다, 생각했지만 그녀 생각은 달랐다.
“더 많이 모으면 좋겠지만 보통 1년에 1000만원 모으면 나쁘지 않은 거 같아. 한 달 벌이가 더 많으면 더 모았을 텐데 내가 버는 수준에서는 이게 최선이었어.”
변호와 변명 사이. 생애 몇 번 느껴보지 못했던 굴욕감이 꾸물거리며 올라왔다. 결국 소득이 적어 모은 게 적다는 결론에 수렴하자 ‘나는 왜 이것밖에 못 벌까?’는 생각에 가까워졌다.
중위소득 안에 겨우 들어가는 내 한 달 월급을 깊게 파고들어 보니 ‘평균적인 남자’(평균남)에 전형을 보는 듯했다.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한때 재능이 빛난 순간이 있었지만 진로설정이 뒤죽박죽이었던 탓인지 우여곡절 끝에 서울 중위권 대학교에 진학했던 과거. 소위 ‘유력 매체’로 불리는 언론사에 떨어진 후 3000만원 초중반의 연봉을 받는 30대 초반의 남성. 지방에서의 중산층, 서울 중위권 대학교, 3000만원 초중반의 연봉, 175cm의 키는 후하게 쳐줘야 ‘평균남’으로 불릴 만했다.
결혼시장은 더 냉혹했다. 내 조건들은 평균에도 속하지 못했다. 최근 가연결혼정보회사가 진행한 ‘2024 결혼 비용 리포트’에 따르면 남자는 결혼 평균 비용으로 3억2000만원이 든다고 응답했다. 몇 년 전에도 남성의 최소 평균 1억~2억원 있어야 한다는 통계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평균 1억~2억원’인 만큼 이보다 더 많은 수준의 자산을 원하는 여성도 많았다. 막상 결혼 준비를 하려고 보니 시장에서 나는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돈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던 그 시기. 친구는 자신의 ‘파혼 썰’을 들려줬다. IT 대기업 종사자인 친구의 연봉은 또래 중에서도 높은 편이었지만 그도 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파혼했다.
“2년 전에 결혼하려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여자친구 엄마가 현금으로 3억 해오라고 하더라. 아빠는 별말 없었는데 엄마가 3억 해오라고 하니까 막막했지. 부모님께 말했더니 5000만원 지원해 주실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연봉이 높은 편이라고 해도 3억은 무리지. 여자친구 잘 설득해서 결혼해 보려고 했는데 여자친구도 어느 날 ‘오빠 연봉으로 우리 둘이 어떻게 먹고 살아?’라고 말해서 그 자리에서 헤어지자고 그랬다. 그 후로 지금 차(외제 차) 산 거잖아.”
곧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하는 입장에서 친구의 사례는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내게도 파혼은 멀리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