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상한선이 없는, 신부를 위한 게임
“스드메, 높은 가격대 먼저 보지 마세요”
결혼 준비의 첫 단추가 결혼식장 선정이라면 그다음은 웨딩플래너 계약이다. 대개 여성들은 플래너 정보를 공유하고 괜찮은 플래너를 추천받기도 한다. 여자친구도 결혼식장을 계약한 뒤 플래너를 알아보던 중 친구들에게 추천받았다. 친구 A는 “너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할 거야. 플래너가 진짜 중요한데 나랑 계약했던 플래너가 진짜 일 잘했어”라며 자신을 도와줬던 플래너를 강하게 밀었다.
여자친구는 2명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A가 추천한 플래너는 신혼부부 스타일을 파악해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등을 알아서 제시하고 방향을 설정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가 추천한 플래너는 연락은 잘 닿지 않지만(?) 신혼부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여러 선택지 가운데 신혼부부가 만족할 만한 제안을 던진다고 했다. 전자는 신혼부부 의견이 개입될 여지가 적은 대신 일을 맡길 수 있는 유형이라면 후자는 신혼부부가 챙길 것은 많지만 제 뜻을 반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우리의 결혼식’을 만들어보자는 협의 끝에 결국 후자를 택했다. 플래너를 만나러 들어선 한 사무실에는 많은 신혼부부가 각 플래너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신혼부부 모두 웃음기를 띠고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미간을 찡그린 남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스드메’ 때문이었다. 플래너가 예산을 얼마 정도 생각하느냐고 묻자 30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봐볼 수 있냐고 답했다. 플래너는 정중하면서 단호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낮은 가격대를 보다가 높은 가격대를 보면 다음엔 아래로 돌아올 수 없어요. 300만원대를 본 뒤에 500만원대를 보면 예산상 300만원대를 선택해야 하는데도 이를 선택할 수 없는 거죠. 차이가 꽤 나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가격대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걸 보는 편을 추천드려요. 스드메 견적으로 200만원을 잡는 신혼부부가 계시면 저희는 400만원, 500만원대를 보여드리지 않아요. 예산이 200만원가량인데 높은 금액대를 보면 퀄리티 차이가 나서 선택을 못 하시더라고요.”
여자친구 눈치를 슬쩍 봤다. 300만원 정도로 견적을 잡아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만족해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의 동요를 최대한 숨긴 채 “400만원 정도로 보겠다”고 말했다. 플래너는 먼저 스튜디오를 몇 군데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스튜디오는 C스튜디오가 있는데 여기가 야외랑 실내 촬영 다 할 수 있어요. 콘셉트도 신혼부부가 직접 정할 수 있고요. 두 분에게 잘 어울리는 곳인 거 같은데 어떠세요? 실내·야외촬영 둘 다 진행되고 4시간~4시간 30분 촬영하는데 비용은 132만원이에요. 지금 여기 표 보시면 다른 스튜디오는 실내만 100만원이고 야외촬영 하면 50~100만원 더 붙는데 여기는 지금 프로모션 중이라 구성이 좋아요. 앨범도 10장짜리 한 권 나오고요.”
스튜디오 비용 차이가 하늘과 땅차이였다. 야외촬영을 진행하면 기존 가격에 2배를 받는 곳도 있었다. 실내에서만 진행되는 촬영도 100만원 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따금 저렴한 곳의 샘플을 보면 비용을 왜 적게 받는지 알 것만 같았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드레스. “이 업체는 프리미엄 라인인데 신부님이랑 잘 어울릴 거 같아서 보여드려요. 예쁘죠? 드레스를 여기로 할 거면 500만원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꼭 여기가 아니어도 신부님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곳이 있어요. 디자인이나 퀄리티가 거의 비슷한데 지금 C업체가 지금 가장 핫하고 괜찮아요.”
웨딩플래너는 기본급과 업체 소개료를 주 소득으로 삼는다.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라 업체 소개료가 주요 수익원이라고 한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업체들이 특정 시기나 상황에 따라 수수료가 일부 달라지는 것인지 고정 소개료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플래너는 상담 중간중간 특정 업체를 강하게 밀었다. 실제 그 업체가 비용이나 퀄리티 면에서 괜찮아 큰 문제가 없었지만 동영상 촬영 등 추가 상품을 끼워 넣으려는 노력도 간간이 엿보였다. 당시 프리미엄 라인보다 저렴한 C업체를 플래너가 적극적으로 추천해준 덕에 드레스 비용을 다소 아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메이크업도 추천을 받아 선정해 최종 434만원의 견적을 받았다. 스튜디오 촬영이 132만원이면 드레스와 메이크업이 202만원이란 뜻. 202만원은 어떻게 산정된 걸까. 드레스를 100만원 정도로 잡는다고 치면 웨딩사진 촬영&결혼식 당일 메이크업 받는 비용이 100만원인 것일까. 플래너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품목 하나하나 가격을 산정해 신혼부부에게 알려드리진 않는데 메이크업이 100만원 정도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거기가 워낙 비싼 곳이니까. 두 분이 총 두 번 받는 가격이고 신부님들은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니까요. 부원장님이 메이크업 해주시는 걸로 제가 말씀드릴게요.”
촬영과 결혼식 당일 2명이 받는 메이크업 비용만 100만원. 나는 혼자 BB크림 바르고 머리를 넘겨도 될 일인데…. 내가 메이크업을 안받는다고 해서 비용이 반값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이 일로 실랑이를 벌이다 여자친구와 싸우게 되느니 이를 악 물고 받아들이는 게 나은 선택. 결국 예약금 30만원을 입금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올해 한 결혼정보회사 조사 결과 스드메 비용은 평균 479만원에 달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400만원 선이 가장 많았다. 그렇다면 스드메 비용은 정말 이 정도로 매듭지을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상상도 못 할 추가 비용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