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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eok Jun 11. 2024

파혼할 뻔했습니다(11) "드레스 퍼스트 비용 내세요"

3장: 상한선이 없는, 신부를 위한 게임

추가금에 추가금, 불투명한 웨딩산업

공무원 외벌이였던 우리 집은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 엄마가 가정을 꾸렸다. 적은 급여에 엄마는 보험설계나 화장품 방문판매 일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누나들에 비해 늦게 태어난 나를 돌보느라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보험설계 일을 할 당시 나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도 안 보낸 막내아들을 집에 홀로 둘 수 없어 할 수 없이 손을 붙잡고 차에 태웠던 게다. 결국 엄마는 일하고 싶은 마음,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마음을 접은 채 집안일을 전담했다.      


엄마가 시장을 다녀오면 난 늘 검은 비닐봉지를 뒤졌다. 갖고 싶었던 로봇을 ‘서프라이즈’로 사 왔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번번이 그 기대는 서운함으로 변했다. 그럴 때면 “생일에 갖고 싶은 거 꼭 사줄게”라며 나를 달랬다. 십수 년이 흘러서야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스드메’를 434만원에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상담 당시 플래너는 드레스에 대한 추가 비용은 없고, 한 곳만 지정해서 가기 때문에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고 말해줬다. 앨범은 스튜디오와 따로 이야기해야 해 추가로 지출이 있다고 했다. ‘추가 비용’. 결혼을 먼저 한 친구들이 하나 같이 말하던 ‘추가 비용’이 얼마나 들지 가늠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드레스에 한해서는 더 나갈 돈이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여자친구가 드레스를 고르는 날 모빌리티 플랫폼을 이용해 차를 빌리고 드레스샵으로 향했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보며 ‘오늘만큼은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마침 예비 장모님이 함께 가는 터라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았다.      


드레스 샵에 도착해 여자친구가 원하는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당초 본식 3개, 2부에 입을 드레스 2개만 입어야 한다고 했으나 막상 여러 벌을 입을 수 있게 해줬다. 1시간 가까이 7벌 정도 드레스를 입은 뒤 마침내 본식에 입을 옷을 정했다. 예비신랑들이 여자친구가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일시 정지’ 상태가 된다는 말을 몇 번 들었으나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 하얀색 실크로 된, 몸매를 다소곳하게 감싼 드레스는 여자친구를 결혼식 날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드레스를 고르고 나가려는 찰나, 드레스 샵 관계자가 ‘퍼스트 비용’이란 용어를 꺼냈다. “플래너님이랑 얘기가 돼서 저희가 추가로 피팅비는 안 받는데 ‘퍼스트 비용’이 발생해요. 이 드레스를 올해 처음 입으시는 거라 거기에 대한 비용은 내셔야 해요. 다른 사람이 착용하지 않도록 보관하고 있다가 결혼식 당일에 준비해 드려요.”      


‘퍼스트 비용’이라. 당해 처음 입는 사람에게 받는 돈이라는 의미. 사실 우리가 처음일지 아닐지, 모두에게 ‘퍼스트 비용’을 받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다짐한 날. 하는 수 없이 프론트 데스크에 가서 카드를 내밀었다. ‘퍼스트 비용’은 55만원. 스드메 434만원에 55만원이 추가된 것이다. 예비 장모님은 당신이 지불하겠다며 내 손을 잡았지만 집을 해 오지 못한 ‘원죄’가 있는 마당에 자잘한 비용을 전가할 순 없었다.      


주위에 ‘퍼스트 비용’에 관해 물었다. 어떤 친구는 50만원, 어떤 친구는 88만원, 어떤 친구는 100만원을 냈다고 했다. 드레스 샵에 따라 100만원 이상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고. 적지 않은 비용 지불하면서도 실제 우리가 ‘처음 착용하는’ 사람인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웨딩산업은 “평생 한 번뿐인 결혼”이라는, 어쩌면 절대불변의 진리를 캐치프레이즈로 숱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웨딩 앨범을 만드는 일에도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사진 자체가 마음에 들어 불만은 없었지만 20페이지 앨범을 만드는 데만 65만원을 또 결제했다. 434만원에 110만원. 544만원으로 불어난 ‘스드메’ 비용. 엄마가 큰마음 먹고 내 생일에 로봇을 사줬듯, 나 역시 ‘평생 한 번뿐인 결혼’이라고 되새기며 돈을 냈다. 생일에만 활짝 열리는 엄마의 지갑이 떠올랐다. 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그날 만큼은 웃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투명하게 가격이 공개되고 있지만 웨딩산업은 예외다. 홈페이지에 드레스나 촬영 비용이 공개되지 않고, 각종 구실로 추가 비용을 받는다. 결혼식장도 마찬가지. 인구 1000명당 혼인율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돈이 나갈지 모르는 불투명한 시장을 신혼부부들이 헤매고 있다. 첫 단추를 꿰기도 어려운 구조를 방치한 채 결혼만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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