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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eok Jun 25. 2024

파혼할 뻔했습니다(12) "격식 차릴 돈이 없잖아"

3장: 상한선이 없는, 신부를 위한 게임

예물·예단에 부모님 마음까지, 챙길 게 많다

“내가 팔려가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돈을 신랑쪽에 왜 줘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거 때문에 결혼 직전까지 엄마랑 하루종일 싸웠다니까.”     


청첩장을 주기 위해 만났던 여사친이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여사친이 말한 돈은 ‘예단비’였다. 개인적으로 예단비는 지참금(持參金)이 강하다고 본다. 지참금은 주로 여성이 결혼할 때 친정에서 남편 측으로 가져가는 돈이다. 과거에는 대부분 여성이 상속을 받지 못해 미리 딸에게 재산을 증여하려는 목적으로 지참금을 쥐여 보냈다고 한다.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인도 등에도 지참금을 주고받는다. ‘카스트 제도’라는 신분제 문화가 공고했던 인도는 고등교육을 받은 신랑의 비용을 신부 측에서 함께 분담하는 의미도 지닌다고 한다. 동양 문화에서는 대체로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고 자산을 형성에 집 등을 마련한 뒤 신부를 받아왔으므로 지참금 문화가 존재했으리라. 예단비 역시 경제적 기틀을 마련한 신랑에게 ‘시집오는’ 여성이 가져오는 돈의 성격으로 생각했다.    

 

“양가에서 부모님 도움 안 받고 우리가 모은 돈이랑 대출로 결혼생활 시작하는데 돈을 왜 줘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이게 ‘예의’라고 하는데 그 예의가 도대체 누굴 위한 예의인지 모르겠다.”     


격정 토로를 듣고 있자니 시부모님께 딸이 미움받지 않도록 신경 쓰는 여사친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누나들을 결혼시키면서 돈을 보냈다는 얘길 얼핏 들었다. 가령 2000만원 정도의 금액을 보내면 일부를 남편 측에서 사용하고 일부는 다시 돌려줬다고 했다. 20대 초반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굳이 왜 이런 짓을 벌이나’ 생각했다. 각자 쓰면 그만인 것을. 차라리 선물을 서로 주고받으면 모를까. 돈을 주고 왜 다시 돌려주는지 30대 중반에도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집을 준비하지 못한 '원죄'가 있지 않나. 답은 간단했다. 예단비를 받지 않는 것. 여자친구가 갖고 싶은 반지와 가방을 사주더라도 나는 무엇하나 받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 예단비로 불리는 지참금을 받더라도 우리 집에서 답례 차원으로 줄 만한 것도 마땅치 않았으므로 내가 사주더라도 나는 받지 않는 편이 깔끔했다.      


결혼준비 과정에서 여자친구가 예물·예단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부모님이 예물이랑 예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던데 자기네는 이야기해봤어? 부모님은 자기한테 시계 사주고 싶다면서 백화점에서 보고 왔다고 하더라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예물·예단 안 하는 쪽으로 하는 게 어때? 자기가 갖고 싶은 가방 사주고 나는 따로 안 받아도 돼. 요즘에는 서로 주고받지 않고 그걸 결혼에 보태는 경우가 많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여자친구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일단 각자 부모님과 더 이야기해보고 다시 논의해보기로 했다. 예물·예단으로 충돌해 헤어지는 커플이 많다는 얘길 들은 터라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됐다. 예단비를 받는 순간 우리도 차려야 할 격식이 많은데, 그 격식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집안 단속’ 뿐이었다.      


“엄마, 여자친구 부모님이 나한테 시계를 사주고 싶으시다고 백화점에서 시계를 보셨는데 그게 1000만원 정도였다네?”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에게서 다소 신경질적인 답이 돌아왔다. “네가 그걸 받으려고 그러냐?”     


“받겠다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말한 거야. 그리고 나도 받을 생각 없고 예물·예단 이야기 나왔는데 서로 주고받지 않는 걸로 했어. 엄마도 예단비 받는다는 생각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일방적인 통보가 기분 나빴을까. 엄마 목청이 조금 높아졌다. “그걸 왜 상의도 없이…. 원래 여자가 예단비를 보내면 아빠 정장 같은 거 맞추고 남은 걸 돌려주는 거야. 네 누나들 결혼시킬 때 엄마도 다 그렇게 했어. 매형들한테 돈 다 보냈고. 옛날부터 다 그렇게 해 온거야.”      


돈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던 시기라 나 역시 짜증이 났다. “매형들은 적어도 전셋집을 해왔잖아. 나는 전셋집도 못 해가는데 무슨 예단비를 받아? 그리고 예단비 받으면 우리도 답례를 해야 되는데 그건 어떻게 할 건데? 격식 차릴 돈이 없는데 뭘 그런 걸 지금 따지고 있어.”   

 

“예단비를 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상의도 없이 엄마한테 통보하니까 그렇지. 됐다, 됐어. 네 알아서 해. 언제 엄마 말 들은 적 있냐?”     


신경질적인 대화가 짧게 오가고 통화를 끊었다. 감정적으로 힘들어도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집안 단속’뿐.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부모님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순 없었다. 의견을 강하게 내실 분들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으나 이내 씁쓸해졌다. 내가 많이 벌었다면 없었을 논쟁. 부모님의 의견을 차단하는 게 유일한 돌파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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