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존버의 현실
만약 내가 매입한 주식의 가격이 떨어져서 손실을 보고 있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묵혀두면 언제든 오르겠지?"
"물타기가 답이다".
"이제 와서 팔 수는 없잖아."
사람들은 대체로 주가가 하락한 주식이 본인의 매수평단가 까지는 쉽게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위 '본전'에 대한 비이성적 희망을 갖는 것인데요. 이런 성향을 해석하고자 행동경제학에서는 몇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첫 번째로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라는 것을 정의하였습니다. 어떤 대상을 소유한 뒤 그 대상에 대한 애착이 생겨 객관적인 가치 이상을 부여하는 심리적 현상을 뜻합니다. 이를 주식시장 관점으로 보자면 "내가 산 주식이니 이 가격보다는 높게 팔아야지" 라는 것입니다. 내가 고민했던 시간과 노력이 주식에 전이되어 본인이 생각하는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식의 가격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영향이 있나요? 주식의 가격이라는 것은 본인의 생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합의로 결정되는 것이니 결국 이런 부분은 투자수익률 입장에서 비이성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소유효과는 유명한 책인 <<넛지>>로 잘 알려진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말하는 "손실혐오"(loss aversion)로 이어집니다. 단어가 어려우시죠? 간단합니다. 사람들은 똑같은 액수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서 느끼는 감정적 크기가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10만 원짜리 주식이 11만 원이 된다면 별생각 없이 주식을 팔고 만 원의 이익을 챙깁니다. 왠지 내가 워런 버핏이 된 것 같은 우쭐감이 들면서요. 왠지 다음에 또 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생깁니다. 쿨한 마음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주가가 만 원이 떨어져서 9만 원 된다면 상황이 좀 많이 다릅니다. 어딘가 내 마음이 다친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갑갑한 마음에 HTS를 쳐다보며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왠지 내가 산 가격인 10만 원까지는 도달할 것 같습니다. 만약 다시 주가가 10만 원이 된다면 바로 팔아버리고 다시는 주식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며 다짐합니다. 주식을 해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이런 얘기들입니다.
조금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내가 들고 있는 주식 A, B의 상황이 아래와 같다고 가정해 봅시다.
1) 10% 이익중인 주식 A
2) 10% 손실중인 주식 B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이성적인 행동을 한다면 주식 A와 주식 B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많이 오를까에 대한 분석을 하거나 또 다른 옵션인 주식 C를 고려하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은 주식 B의 손실이 안타까워 나에게 수익을 창출해준 주식 A를 팔아서 주식 B를 추가적으로 매입(물타기) 합니다. 주식 A는 이미 성공을 거뒀으니 이쯤에서 정리해도 되지만 B를 손실로 '확정' 짓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나의 것, 나의 주식을 실패(-) 로 끝내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손실혐오 현상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흔한 내용입니다. "본전에 집착하지 마라", "손절라인을 짧게 가져가라" 라는 말은 곧 주식투자 입문서 맨 첫째 페이지에 등장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이런 투자자의 습성이 나쁘다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본전에 집착하는 행위가 '비이성적'이라는 것이지 그것이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 아니지 않나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반론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본 "가치투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가치투자는 저평가된 주식을 일희일비 하지 말고 꾸준하게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기적으로 하락을 하던, 급등을 하던 개의치 말고 쭉 들고 가라.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수익을 얻는 다는 것이 가치투자의 기본적인 철학입니다. 그렇다면 워렌버핏으로부터 시작되어 사람들의 찬양을 받는 "가치투자"의 일정 부분과 손실을 보면 빠르게 손절해야 한다고 말하는 "본전에 집착하지 말고 손절하라"라는 두 아이디어는 서로 대립하는 면이 있는 것입니다.
가치투자 VS 짧은 손절 무엇이 맞는 것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눈으로 숫자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다음과 같은 테스트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1) 2012/01/01 로부터 약 5년간의 상장되어 있는 모든 주식 데이터를 대상으로 분석.
2) 한 달 동안 주식을 홀딩 했을 경우 손실 중인 모든 케이스를 고려.
3) 손실 중인 주식을 매입한 가격까지 도달할 확률을 계산.
4) 여기서 '도달'이란 장중 최고가 기준. (한순간이라도 매수가를 터치하면 본전으로 간주)
테스트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본전'과 관련된 주식의 행동이 기업의 크기에 따라서 다른 양상을 보일 것 같다는 추측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체 종목을 시가총액 기준으로 5개 구간으로 나눈 후에 개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상 대형주와 중소형주가 움직이는 패턴은 다양한 부분에서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5) (추가조건) 시가총액을 5개 구간으로 나눠서 개별적인 결과를 검토.
먼저 보유 중인 주식의 손실폭이 -10%에서 -20% 사이였을 케이스에 대해서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평소에 당신이 생각한 확률과 비교해 봤을 때 어떤가요? 더 높은가요? 낮은가요? 아니면 이런 확률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추정치보다 더 낮았습니다.
만약 당신의 약 주식이 -12% 정도 손실을 보고 있다면 1주일 내 본전에 도달할 확률은 5% 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10%에서 -20% 사이의 손실구간에 있다면 1주일 내로 본전에 도달할 확률은 약 5% 수준이며 한 달 동안 도달할 확률은 약 20% 수준입니다. 적어도 3개월 (약 100영업일)은 기다려야 겨우 50%의 확률로 본전에 도달합니다. 본전에 집착하는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낮은 확률에 베팅했던 것은 아닐까요?
손실폭이 더 클 경우에는 당연히 본전을 찾을 확률 역시 더 낮아집니다.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결과를 확인해보면 재밌는 현상 하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형주일수록 본전에 도달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손실폭이 -10% ~ -20% 일 경우 시총 500억 이상 소위 잡주의 경우 6개월 내에는 81.72%인 높은 확률로 본전까지는 도달하였는데 이는 꽤 높은 수치입니다. 종목이 작고 가벼울수록 한 번쯤 시세가 발생하여 본전까지 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반대로 엉덩이가 무겁고 큰 종목의 경우에는 한번 하락한 추세가 쉽게 바뀌지 않아 중소형주보다 본전까지 도달할 확률이 비교적 낮습니다.
소형주가 본전에 도달할 확률이 더 높음을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형주가 대형주에 비해서 변동성이 더 높기 때문에 특정 가격에 도달할 확률이 높습니다. (마치 변동성이 큰 기초자산의 옵션의 가격이 더 높은 것과 같음) 두 번째로 시가총액이 클수록 시계열의 자기상관계수(auto-correlation)가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큰 놈이 추세가 더 강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 테스트는 이미 하락한 주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하락하던 주식은 하락 추세가 더 유지되는데 이 정도가 대형주가 중소형주보다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입니다. 데이터에 대한 몇 가지 의미를 추론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손실 중인 주식을 한 달 이내로 기다려서 본전을 찾을 확률은 낮다. (평균적으로 약 20% 이내)
2) 일주일 안에 본전을 찾을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3) 소형주가 대형주보다 본전을 찾을 확률이 더 높다.
4) 500억 이하의 초소형주의 경우 6개월 기다리면 높은 확률(약 80%)로 본전을 찾는다.
5) 사이즈를 막론하고 6개월 정도를 기다리면 본전을 찾을 확률은 약 50% 정도다.
그렇다면 순전히 본전을 찾는다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대형주보다는 소형주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일까요? 과연 위 내용에 장기투자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잠시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가 손실된 주식을 계속해서 홀딩하는 경우 (aka 존버정신) 어느 기간 동안 본전이 돌아오기를 기대합니까? 뭐 주구장창 기다릴 각오로 버티기를 시작하지만 마음은 솔직히 1주일 혹은 1개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가 진심 아닐까요? 당장 내일 급등이 나와 본전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나요?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1) 기회비용
2) 종목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비용
만약 종목이 손실권에 진입하여 본전까지 기다리는 경우 우리는 그 금액만큼 새로운 투자에 대한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0%인 주식 A을 기다려서 0%인 본전에 매도하더라도 그 때문에 동일한 기간 동안 20% 오른 종목 B를 살 수 없었다면 최종 손실액은 -20%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에 배팅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목을 계속 쳐다봐야 하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목이 본전에 도달하는지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카카오스탁 알람 기능이나 여러 HTS의 편리한 기능을 활용한다면 좀 더 나아질 수는 있겠으나, 나의 소중한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종목이 손실 중이라는 점에서 오는 심리적인 데미지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약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것에 들어가는 내 시간의 가치가 크다면 투자수익률은 낮아집니다. 그런 관점에서 비교적 심리적 타격이 큰 본전을 기다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수익률이 낮습니다.
갑자기 시간적 비용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위에서 계산된 충격적인 숫자 그 자체보다, 본전을 기다리는 것은 훨씬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도출된 낮은 확률 자체도 문제지만, 본전에 도달하기 위한 저 기간은 더욱 큰 비용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드라마 "올인"에서 포커 고수가 이병헌에게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포커에서 고수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버려야 하는 행동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낮은 패를 쥐고 있는 상태에서 미래에 나올 카드로 '메이드'가 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포커는 운이 좋아 높은 패가 들어오는 여부가 아닌, 이미 받은 패가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잘 숨기고 장사를 잘하는데서 실력이 갈립니다. 주식투자로 얘기하자면 "수익을 내고 있는 종목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얘기들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미 내가 쥐고 있는 카드 몇 장이 미래의 운을 통해 강력한 패가 되길 원하지만, 실제로 그 확률은 위에서 우리가 표로 확인한 것처럼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훨씬 낮습니다. 낮은 확률의 한 번의 대박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소 높은 패턴에 여러 번 베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단 한 번의 도박이 아닌 반복적인 시도로 통계의 영역에서 승부를 보는 것은 포커나 주식시장이나 유사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무조건 본전을 기다리는 행위는 옳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손실중인 주식에 대해서 버티고자 한다면 위에서 보여드린 평범한 확률을 확실하게(유의하게) 무너뜨릴수 있는 사실, 혹은 본인만의 투자원칙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에서 아래가 '메이드' 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저 확률을 기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걸 읽고 계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저건 전체 주식에 대한 통계잖아, 내 주식은 다를걸?
그럼 우리는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도 어쩌면 소유효과에 포획당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