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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Jul 07. 2024

작은 배가 준비되었으니 한두 달 머뭄세

안동 고산정 원림

안동 고산정 원림 – 작은 배가 준비되었으니 한두 달 머뭄세     


낙동강의 숨겨진 보석 금난수의 고산정     


안동의 고산정(孤山亭)을 다녀왔다. 막상 주소만으로 한국정원 문화유산을 찾는 일은 늘 설레며 궁금하다. 깜짝 놀랐다. 평온의 미학이 깊은 풍광으로 이끈다. 의도치 않았는데 도산구곡의 제8곡 고산(孤山)을 만난다. 도산구곡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을 기리고자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빗대어 후손과 후학이 설곡하였다. 퇴계가 주자의 학문을 정통으로 계승하였다는 의미로 작동한다. 비경이다. 안동 최고의 풍광이라는 가송협(佳松峽)이 이곳이다. 가송마을 앞 물가로 가는 길 개펄 위에 전망대로 삼을만한 마루로 만든 계단형 대가 반긴다. 오늘따라 가송협은 고요하다. 가송협은 청량산 축융봉의 서편 자락이 낙동강과 만나 휘돌면서 조성된 빼어난 풍광의 협곡이다. 이곳의 층암절벽은 깎아 세운 웅장과 수려함을 지녔다. 제 몸매를 한껏 뽐낸다. 낙동강 상류에서 가장 멋진 곳이다. 우레처럼 강바닥을 내리치며 긁어대는 여울이 청량하다소리는 낭떠러지가 다하는 지점에 이르러 잦아든다. 강 건너 고산정을 대각선으로 마주한다.


가송마을에서 바라본 고산정 전경 1. 고산정, 2. 고산, 3. 취벽, 4. 가송협(도영담), 5. 가송마을 전망대 (2024.03.25.)


고산정은 강 건너 깎아 세운 듯한 멋진 벼랑 옆에 기울어진 소나무를 앞세운다. 한눈에 고산정 원림의 정갈한 모양이 드러난다.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가 고산정을 지은 것은 34세(1564년)였다. 매화와 소나무를 심고 작은 배를 마련하여 넘나든다. 퇴계는 어려서 숙부에게 학문을 익히려 이 길을 걸었다. 오늘날 ‘예던길’로 각광받는 강변길이다. 퇴계와 성재는 고산정에서 만난다. 둘의 나이는 29살 차이니까 퇴계의 말년인 63~69세의 고산정 왕래였겠다. 그날의 감회를 시로 남겼다.     

越險投深得一天 (월험투심득일천) 험준함을 넘어 깊은 곳에 한 천지 얻었으니
瓊臺瑤圃映芝田 (경대요포영지전) 멋진 누대와 아름다운 정원에 영지밭이 비친다.
舊來不見今來見 (구래불견금래견) 예전에 와서 못 보고 이제 와서 만나 보니
疑是親逢洞裏仙 (의시친봉동리선) 마치 이 골짝의 신선을 친히 만난 것 같다.     

-이황, 「고산정제영(孤山亭題詠)」 ‘유고산(再遊孤山)’, 성재집(惺齋集), 권4 /‘부록’, 한국고정종합DB.     


나루터 방향의 고산정 원림세상 밖에서 우아하게 노니는 고산정 원림


퇴계가 강 건너에서 고산정을 향해 성재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재차 고산정을 찾아와 만남이 이루어졌던 시경(詩境)이다. 다시 고산을 찾아오니再遊孤山〕 그림 같은 멋진 풍경을 얻는다. 이곳은 누대와 정원이 뛰어난 경관이어서 신선이 사는 곳이다. 이 골짝〔洞天〕의 신선이 곧 자네가 아니겠는가. 퇴계는 성재가 거처하는 이곳 고산정 원림이 신선 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직접적으로 표상한다. 바로 ‘동천 속의 신선을 친히 만난 것 같다’〔親逢洞裏仙〕는 표현에서 고산정 원림을 경영하는 금난수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엿본다.

     

重到孤山四月天 (중도고산사월천) 고산에 다시 당도하시니 천기는 사월인데
長鑱時復理荒田 (장참시부리황전) 긴 가래로 때때로 다시 거친 밭을 일군다.
何須學得金丹術 (하수학득금단술) 어찌 꼭 신선 공부 배워 습득해야 하는가?
物外優遊便是仙 (물외우유편시선) 세상 밖에서 우아하게 노니니 편한 이것이 신선이다. 

-금난수, 「경차퇴계선생고산운(敬次退溪先生孤山韻)」, 성재집, 권1 /‘시’, 한국고전종합DB.    


 

‘경차퇴계선생고산운’은 퇴계 선생의 ‘고산’시의 운으로 경건하게 차운한 시라는 뜻이다. 위의 ‘재유고산’ 시에 대한 화답이며 퇴계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굳이 신선술을 배우고 공부하여야만 신선인가. ‘멋진 누대와 아름다원 정원瓊臺瑤圃이 있는 이곳의 일상이 물외(物外)이다. 밭갈고 ‘한가롭고 여유롭게 노닐면’〔優遊〕 신선이다. 고산정을 노래한 두 사람의 시는 이후 수많은 선비가 이곳을 찾아 시경을 읊는 계기가 되었다. 「고산정제영」은 고산정 원림에서의 물외우유(物外優遊) 풍광을 퇴계를 비롯한 34명이 지은 시를 모아 성재집 권4의 ‘부록’으로 전한다.     


가지 않은 달이 없고 가기만 하면 며칠을     


청량산 축융봉 아래 마을은 속칭 ‘날골’이다. ‘일동(日洞)’이라 이름하였다. 금난수의 넷째 아들 금각(琴恪)은 요절한 천재였다. 그의 「일동산수기(日洞山水記)」에 의하면 고산정의 풍광은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춰둔’〔天作地藏〕 곳이다. 아버지 금난수가 이곳에 가면 돌아오는 것을 잊는다고 하였다. 오래 머물면서 현실을 떠나 물외의 풍광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가지 않는 달이 없고’〔無月不往〕, ‘가시면 번번이 여러 날이고’〔往輒累日〕 ‘돌아오는 것을 잊는다’〔而忘歸焉〕.” 과연 그럴만한 기막힌 경관이다. ‘안동 고산정 협곡에서’라는 제목으로 시경을 읊는다.  

        

안동 고산정 협곡에서          

온형근               




   당신에게 다가서는 길이 셀 수 없이 많았음을 우린 서로 몰라도 된다. 

   어떤 풍파와 그런 가로막음과 저런 깨어짐이 

   살여울 즐비하였다는 사실조차 알 바 아니다.  

    

   하나였던 산줄기 암벽이 터져 헤어졌으니

   홀로 외로운 산이어서 고산이고

   떨어져 푸른 손짓하니 취벽이다.

   네가 고산으로 나를 부르고

   내가 취벽으로 하여금 모래톱을 걷는다.     


   낙동강은 본선만으로 긋지 않는다. 

   숱한 지선으로 흐트러지고 헝클어졌다가 

   남은 물줄기 하나가 아름다운 소나무 협곡을 만나

   결기에 찬 행보를 거듭하여 그대를 잇는다.  

    

   푸른 산을 향해 두 손 모은 선학대는

   맑고 푸른 못 속에 드리워 이리저리 출렁이고 

   이녁과 별유천지인 고산정 원림을 품는 건

   독산(獨山)의 불거진 바위를 등진 나룻배          


-2024. 03. 25.



탄탄한 삶이 갈라져 나뉘듯 하나의 암벽이 고산(孤山)과 취벽(翠壁)으로 마주한다그 사이를 물의 깊이를 숨긴 가송협이 흐른다. 때로 갈수기에 드러나는 몰골은 앙상하기 짝이 없다. 풍요로움은 일렁이는 물살에서 생의를 지닌다. 풍파와 가로막음과 깨어짐에서 이어진다. 일렁임이 깎아지른 절벽에 부딪힌다. 반짝이는 차돌모래가 모래톱으로 흐른다. 흐트러졌다 헝클어져 세상의 본때에 달라붙는다. 한줄기 가느다란 결기로 세상을 읽는다. 푸른 산에 눈 씻고 들먹대는 물이 고산정을 품는다고산정 원림은 여전히 비밀스러운 정원이고 빼어난 풍광이다물길의 깊이를 안다는 것은 나룻배의 의지이고 그가 직접 몸으로 익힌 언어이다.     


퇴계는 물길 따라 산을 돌아〔山太極水太極〕 승경을 만나면 시경을 읊었다. 그중 고산을 대상으로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何年神斧破堅頑 (하년신부파견완) 어느 때 신선의 도끼 굳고 완고한 것을 깨뜨렸는가
壁立千尋跨玉灣 (벽립천심과옥만) 천 길 우뚝 서서 옥빛 물굽이에 걸쳤다.
不有幽人來作主 (불유유인래작주) 은거하는 그대가 와서 주인 되어주지 않는다면
孤山孤絶更誰攀 (고산고절갱수반) 고산의 외로운 절경 또 누가 오르랴.

-이황, 「고산」, 성재집 권4 /‘부록’, 한국고전종합DB.     


취벽과 고산이 한 덩치였는데, 어느 때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상기한다. 실제로 가송마을 안쪽에 과거 낙동강이 흐르던 지형상의 특징이 남았다. 물길이 바뀌었고 바뀐 물길에 기암절벽의 단애가 양쪽으로 있으니 신화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두 개로 나뉜 고산과 취벽은 옥색 물빛을 자랑하는 물굽이를 사이좋게 걸친다. 이런 승경에 자리 잡은 금난수의 은자로서의 뛰어난 안목을 높이 산다.     


고산정 원림의 원형 경관     


금각의 「일동산수기」에 고산정 원림의 원형 경관이 자세하다. 낙동강은 취벽을 끼고 동쪽으로 흘러 산악에 부딫혀 깊은 연못을 이룬다. 물이 깊고 맑아 그림자를 머금고 푸른빛을 띠고 있어서 이를 ‘도영담(倒影潭)’이라고 하였다. 금빛 모래는 맑고 영롱하며金沙淸瑩〕 옥 같은 돌멩이는 푸르고 차갑다玉礫紺寒. ‘금사청영’은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가 맑고 영롱한 금빛으로, ‘옥력감한’은 물에 씻긴 자갈이 푸르고 차가운 옥처럼 보인다고 묘사한다. 고산정은 취벽 옆에 지었는데 서쪽 바위 기슭에 두 층의 대가 있다. 아래는 선학대(仙鶴臺), 위는 소요대(逍遙臺)라고 한다. 도영담 위에 있어서 맑고 푸른 물을 내려다보고俯瞰凈綠〕 강 건너 고산의 푸른 낭떠러지를 평평하게 당긴다平挹翠巘원림의 뛰어난 경치를 한 번 보는 잠깐에 모두 담을 수 있다盡得於一覽之頃矣고 하였다.      


맑고 푸른 물을 내려다보는 ‘부감정록’과 푸른 낭떠러지를 평평하게 당기는 ‘평읍취헌’의 선학대로 고산정 원림의 경관을 읽는다. 퇴계의 ‘선학대’라는 시이다. 해질 무렵의 풍광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晩日橫槎截碧流 (만일횡사절벽류) 해질 무렵 가로놓인 배는 푸른 물결 가르는 듯
瑤臺秋色洗淸愁 (요대추색세청수) 아름다운 누대의 가을빛이 맑은 수심을 씻는다.
仙禽本屬孤山譜 (선금본속고산보) 신선의 새인 학은 본래 고산보에 속하였기에
好替訛名作勝遊 (호체와명작승유) 그릇된 이름 잘 바꾸어 빼어난 유람처 되었다. 

-이황, 「선학대」, 성재집 권4 /‘부록’, 한국고전종합DB.    


고산정 원림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다. 해질 무렵의 도영담에 비추는 푸른 물결은 애수를 띤다시름이고 근심인데 맑아진다산수가 정원이니 서글픔은 자연의 평온함이 거둔다. 퇴계는 선학대가 고산정 원림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라고 여긴다.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는 ‘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林逋, 967~1028)가 항주 서호의 북서쪽에 있는 ‘고산(孤山)’에 은거하였다. 신선처럼 은둔하며 학과 살았던 임포를 빗대어 ‘신선-학-고산’의 이미지를 시로 형상화한다. 선학대가 될 수 있음은 성재 금난수가 이 골짝에서 고산정 원림을 경영하기 때문임을 안다.     


금각의 ‘일동산수기’에 나오는 고산정 원림 1. 고산정, 2. 고산, 3. 취벽  (A. 선학대/소요대, B.수운대/망선대/약대, 자료 : 구글어스

         

‘일동산수기’에 표현된 금각의 경관관은 가히 뛰어나다. 고산정을 시대를 건너 뛰어 명승의 반열에 들게 한다. 과연 명문이다. 그가 그려 낸 고산정의 경관은 수없이 많은 후인에게 거듭 재독과 차운으로 향유할 근거를 유발한다. 고산 위에도 두 개의 대가 있는데, 동쪽은 ‘물구름을 바라본다’는 수운대(水雲臺), 서쪽은 ‘선학대를 바라본다’는 망선대(望仙臺)라 하였다. 산허리의 깎아지른 절벽은 도영담 위로 불쑥 내밀어 낚시할 만하여 약대(釣臺)라 하였다. 새가 날아들며 안개 피어오르는 숲구름 낀 계곡버드나무 섬모래톱 등 거닐며 스스로 즐길만한 신선계이다.   

   

한없이 고요한 이곳의 풍광을 하나 더 읽는다. 고산정을 경영한 퇴계의 제자 성재 금난수의 시경이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절경이 즐비하다. 이곳 가을의 풍경과 흥취를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 1535~1603)의 시에 화운하여 성재가 읊은 시이다. 고산정 원림의 시경을 제대로 표현한다.  

   

梅鶴孤山勝 (매학고산승) 매화와 학은 고산의 빼어난 승경
風流赤壁秋 (풍류적벽추) 풍류가 적벽의 가을이로다.
相追林下徑 (상추림하경) 숲 아래 오솔길을 서로 따라가며
同作畫中遊 (동작화중유) 함께 그린 그림으로 노닌다.
楓葉粧紅錦 (풍엽장홍금) 단풍잎은 붉은 비단으로 장식하고
江雲動碧油 (강운동벽유) 강 위의 구름은 푸른 기름결처럼 일렁인다.
居然成一別 (거연성일별) 그런대로 또 하나의 별천지를 이루었으니
淸夢會悠悠 (청몽회유유) 맑은 꿈속에서 아득하게 만난다.   

  -금난수, 「孤山亭和金▣[耼壽]韻」, 성재집, 권1 /‘시’, 한국고전종합DB.      



매화와 학은 신선계의 구성 요소이다. 고산의 풍광을 단숨에 선계로 이끈다. 그러면서 취벽과 고산의 단애를 적벽의 풍류와 나란히 놓는다. 격조 높은 풍경의 발견은 숲을 따라 걸을 때 제대로 감지한다깊은 가을 붉은 단풍과 짙푸른 도영담에 일렁이는 경치는 별천지이다. 고산정 원림에서 노니는 모습이 꿈속에서조차 맑고 수수하다. 친구와 함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정경이다. 소식의 적벽부를 상기하듯 다섯 살 차이 친구와 빼어난 풍광을 나눈다. 퇴계가 반한 곳이 고산정이다. 늘 그랬듯이 퇴계가 즐겨 다닌 곳, 글을 남긴 곳은 후인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미스터 션사인과 고산정 가송협     


여기 낙동강 줄기의 고산을 이곳에서는 독산(獨山)이라고도 부른다. 홀로 떨어져 우뚝 솟은 소나무로 우거진 산이다. 파자(巴字)로 흘러 도는 단양 운암(雲巖)의 앞가림처럼 고산의 나루터 자리도 모래로 덮였다. 세차게 여울을 때리며 들썩이던 강물은 싣고 온 침전물을 강바닥에 하역한다소용돌이치며 깊은 소를 이루던 힘 빠진 아랫물이 고산을 감싸며 돈다. 이때 모래를 스치며 부려놓은 게 백사장을 이룬다. 펑퍼짐한 모래사장이 사람을 불러세운다. 여기에 강 건너 고산정으로 나서는 나룻배를 매었다. 가운데 배를 대기 좋은 바위가 ‘계주암(繫舟巖)’이다. 이곳 물 사정에 밝고 헤엄으로 단련된 어부 한 사람 정도 미리 사발통문을 넣는다. 뱃삯은 두둑하다. 그래야 퇴계가 반한 ‘멋진 누대와 아름다운 정원’〔瓊臺瑤圃〕인 고산정 원림의 절경이 쏟아진다.


               

고산과 모래톱 -고산정 강 건너의 나루터 촬영 장소-tvN 미스터션사인(2018), 캡쳐화면


거기다가 도산구곡의 8곡이 아니었던가. 안동댐에 수몰되어 사라진 구곡이라지만 고산정 원림 주변 풍광은 절로 도드라진다. 고산정의 가송협이 있어서 굽이마다 뛰어난 경치였던 도산구곡의 아름다운 전모를 그릴 수 있다. 2018년 7월 7일부터 24부작으로 방영한 <미스터 션샤인>의 공간 구성은 실제의 경관을 편집하여 새로운 환경을 상상하게끔 창의적이다. 안동 도산면 고산정 맞은편 백사장에 초가 주막을 가설하였다. 여기서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가마골로 간다. 그 가마골은 안동 길안면의 만휴정(晩休亭)이다. 자동차로 1시간 걸리는 64㎞ 거리이다. 그러니까 배를 타기 전의 주막과 배를 타고 있는 강물그리고 건너 닿는 나루터는 실제의 고산정 강 건너 나루터의 풍경이다. 그리고는 중간 여정을 날리고 가마골로 불리는 만휴정으로 연결한다. 만휴정에서 도자기를 굽는다는 설정이다. ‘만휴정중수기’를 보면 이곳의 깊은 웅덩이 세 곳을 삼홍(三泓)이라 하였다.      


홍(泓)에 관해서는 ‘속위홍위부(俗謂泓爲釜) 이기형야(以其形也)’라고 하였다. “세속에서는 깊고 맑은 물인 ‘홍’을 가마솥인 ‘부’로 일컫는데, 그 형상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속위(俗謂)는 오랜 세월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말로 대개 생활이나 경험에서 얻은 지혜나 교훈을 간결하고 함축하여표현할 때 꾸며주는 부사이다. "속칭" 또는 "세속에서 이르기를"이라고 운을 뗀다. 아니면 "흔히 ~라고 한다" 또는 "일반적으로 ~라고 말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곳의 토박이들이 물이 휘돌며 만든 웅덩이가 가마솥 속을 닮았기에 이곳을 가마골이라 불렀을 것이다그래서 드라마에서 만휴정 골짝을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의 은신처인 가마골로 설정하였을 것이다. 그가 은신하는 이유는 의병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가마소’는 “강이나 내의 물이 소용돌이치며 지나가는 깊은 곳”을 말한다. 가마솥 같은 웅덩이인 가마소는 칠흑같이 깊어 두렵다. 꿈에 나타날 정도로 강력한 인지 요소로 작용하여 가마골로 세전되었을 법하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물체를 통하여 자연 현상을 상상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가마솥은 오래전부터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맑고 깊은 물은 풍요와 번영을 상징한다. 이를 드라마에서는 가마를 굽는 가마골로 설정하였다. ‘가마소는 깊은 물이지만 가마골은 도자기 따위를 구워 내는 골짜기이니 중의적이다. 아무튼 잘못 구워진 도기를 받아 사격 연습 재료로 쓴다는 설정이고 이를 일본군이 간파하는 대사까지도 등장한다. 상상의 나래가 한참을 앞서 나갔다. 상상 환경을 잘 여몄다.   

   

강물이 빚어낸 고산정 원림 주변의 경관 예술     


퇴계가 걷던 길은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의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려져 만들어 낸 강변을 걷는 길이다. 요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예던길’이다. 청량산의 산줄기와 낙동강의 물줄기가 음양을 만든다. 그 중심에 고산정이 위치한다. 태극은 음양을 형상화한 창조와 질서로 가는 초월의 풍경이다. 퇴계는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를 통하여 그 자신의 학문과 도학을 정연하게 다듬는다. 숲길과 강길을 걷는 계절마다 시간마다 공간마다 서정적이고 화창한 분위기이다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위안과 깨우침을 얻는다. ‘세심한 관찰과 알아차림의 정성’이 깃든다. 자연에서의 ‘관찰·정성’은 한국정원을 향유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퇴계의 고산정 원림 영역  : 고산(孤山), 일동(日洞), 월명담(月明潭), 한속담(寒粟潭), 경암(景巖), 미천장담(彌川長潭), 백운지(白雲池) (자료 : 필자)


퇴계는 고산정 원림의 영역을 금난수의 ‘고산정’뿐 아니라 넓게 설정하여 향유한다. 성재집 ‘권4’에 실린 산태극수태극의 ‘물길 따라 산을 돌면서’ 만난 승경에 시를 지었다. 고산, 일동(日洞), 월명담(月明潭), 한속담(寒粟潭), 경암(景巖), 미천장담(彌川長潭), 백운지(白雲池)가 그것이다. ‘고산’은 위에서 소개했듯이, 고산정 주변의 시경을 표상하였다. 취벽과 고산의 절경에 고산정을 경영하는 금난수를 치하한다. ‘일동’은 옥토가 있어서 평안한 이곳에 암자 하나 지어달라고 묻는다. 월명담은 고요하고 맑은 물과 주변의 그윽한 분위기가 달빛 아래 이끌리는 곳이다. ‘한속담’은 산을 넘으며 바라본 깊은 골짜기의 기운이 삼엄하며 맑아 신선이 노닐만하다고 느낌을 묘사한다. ‘경암’은 거센 물살에 우뚝 솟은 웅장한 바위를 통해 무상함과 위대함을 대비한다. ‘미천장담’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연과 교감한다. 백운지는 푸른 산과 푸른 물로 둘러싸인 풍광에 마음을 정화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알게 되었음을 표명한다.    

 

퇴계의 고산정 원림 시경을 통해 한국정원의 미학을 헤아린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꾸미고 장식하지 않는다는 외형적 특징이다. 그렇지만 풍경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노력과 의지는 남달랐다. 꾸미는 것은 보편적 정신 영역이기 때문이다. 꾸미는 일은 새롭거나 더하거나 빼서 눈이 맑아지는 일이다. 여기에서 한국정원 문화유산의 특징이 발현한다.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소박하고 평온하다는 사실이다. 꾸미고 장식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평온한 미감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실천적 설계와 경영 의지가 내면화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가려 있거나 보이지 않던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나 아무에게나 들키지 않는다소박하여 꾸밈이 없어 보이나 정교한 마음 씀씀이가 곳곳에서 도사린다바로 한국정원의 미학이 버젓하게 자리 잡은 지점이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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