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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May 26. 2024

앉기도 눕기도 하는 정자와 벤치

고양 일산호 황지해 정원

고양 일산호 황지해 정원 - 앉기도 눕기도 하는 산책자의 탄소 벤치


산책자에게 질문을 안겨주는 선물 같은 정원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의 산책자이다. 세계적인 정원 작가 황지해의 고양 일산호수공원 작품을 만난다. 2024년 고양국제꽃박람회에 조성된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라는 작품이다. 일산호수공원의 장미원과 제2공영주차장 사이에 위치한다. 〈황지해 정원〉에서 일산호로 대각선으로 길게 선을 그으면 약초섬이 이쪽 메타세쿼이아 숲을 늘상 바라본다. 호수를 바라보며 산책 동선을 따라 대량으로 군식한 메타세쿼이아 군락지 안에 선처럼 두 줄로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산책자에게 메타세쿼이아는 개체의 나무가 아니라 전체의 숲이다. 키가 높아 커다란 기둥으로 지상을 버팅기면서 간섭하지 않는 나무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의식하지 않아도 산책자에게 부담은 없다. 조용히 그 자리에서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고 멀리 내다보는 나무이다. 산책자에게 메타세쿼이아는 존재의 숲이고 나를 안아주는 아득한 태고의 안식처이다. 그조차 산책자는 느끼지 않는다. 그게 메타세쿼이아의 존재 이유이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황지해 작가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정원 풍경 (2024.05.10.)


메타세쿼이아는 수직의 갈망으로 살아가는 산책자의 지향을 하늘로 내뿜는다. 살아가면서 사느라 각박해진 정서를 수더분하게 한다.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정원이 있다면 그것은 쉴 수 있는 친근한 구조물이다. 황지해는 이러한 쉼이 필요한 산책자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기막한 공간을 스케치한다. 쉼이 필요한 산책자에게 최고의 장소성을 제공한다. 황지해는 《2024 고양국제꽃박람회》 ‘세계 작가 정원 토크쇼’에서 대상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미 메타세쿼이아가 숲을 이루고 있는 원림같은 정원이어서 자잘한 정원 스킬을 사용하기 보다는 하나만 드러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메타세쿼이아 숲 자체가 이미 정원이었기에(…) 그저 정원에 앉아 그저 숨 쉬길 바랐다”고 전한다. 지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산책자에게 ‘그저 앉아서 그저 쉬고 싶은 게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는 산책자에게 물음을 안겨주는 선물 같은 정원이다. 

         

산책자에게 정자와 벤치는     


황지해의 정원을 보고 오면서 단순한 매력이 주는 복잡한 심사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면서 언뜻 스치고 간 감상을 다듬지 않은 날것의 문장으로 읽는다.     


황지해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는 뛰어난 미학으로 가득찬 한국정원의 누정 원림을 떠올린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는 산책자의 행위가 닮았다. 쉼의 공간이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는 호젓함을 지녔다. 누정의 새로운 현대적 해석이다. 이런 것이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자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현장이다. 고려대 심우경 교수가 “조경가는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온고창신(溫故創新)’을 가장 높은 경지에 두어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듯이 누정 원림의 행위와 다를 바 없는 행태와 의미가 황지해의 정원에서 고스란히 읽힌다.

     

정자와 벤치에 대하여 새로운 생각이 든다. 정자는 일단 높다. 바라보는 곳에서 눈높이이다. 정자에 앉은 사람은 지면에 서 있는 사람을 부감(俯瞰)한다. 내려다보는 장소이다. 그러니 급이 같거나 높은 이에게 “정자에 오르시지요”라고 정중하게 청하는 게 아닐까. 일상에 만연한 보통의 예의라는 게 이럴 것이다. 보통의 벤치는 두세 명 정도 앉아 쉬면 그만이다. 이번 황지해 정원의 벤치는 지금까지의 벤치에 대한 생각의 범주를 바꾼다. 평상도 아니면서 평상의 새로운 행태가 벤치에 스며들었다. 그러면서 디자이너의 독창성과 유니크한 개성이 돋보인다.            

  

탄소 벤치 아래 식재된 바람꽃 (2024.05.10.), 우측은 바람꽃 개화모습


벤치는 높이 25센티, 길이 30미터로 두 줄이 놓였다. 벤치와의 간격은 마주앉아 무릎이 닿는 정도이다. 벤치 아래에는 바람꽃(Anemone crinita Juz. )을 식재하였다. 고산지대의 습기가 있는 풀밭에서 자라는 호습성이며 반음지 식물이다. 그러니 일산호의 습한 기운이 다가와야 한다. 국내에 자생하는 바람꽃의 종류는 많다. 학명에 아네모네가 들어가는 바람꽃 속(屬)으로는 바람꽃, 남바람꽃, 세바람꽃, 들바람꽃, 국화바람꽃, 태백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꿩의바람꽃이 있고, 변산바람꽃, 풍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만주바람꽃은 학명이 아네모네가 아닌 바람꽃이다.   

  

탄소 벤치에서 드는 생각 하나     


황지해의 탄소 벤치는 그런 면에서 내려보거나 “오르시오”를 청할 이유는 줄어든다. 다정하게 마주 보거나, 곁에 있거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뒷등을 보거나 하는 설정이다.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등을 맞대고 앉을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이든 평의자는 평등하다. 다만 먼저 자리하느냐 빈자리가 있느냐의 차이는 상존한다. 올려보는가 내려보는가의 수직적 행태가 아니다. 앉을 자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는 수평적 행태이다. 먼저 왔는가 나중에 왔는가의 선점 강도의 투영이다.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어느 지점의 문제이다. 그래서 공간의 점유를 정하는 방식에 자본주의의 예약 문화가 들어선다. 이때부터 자본주의의 모든 속성이 관여한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 논리에서 기기묘묘한 엄청난 수단과 방법이 발달한다. 공원과 누정 원림은 이러한 자본주의 속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실존이고 부조리여서 어떤 권력과 이념과 종교와 도덕과 핏줄이 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사익과 공익의 차이를 극명하게 쥐고 흔들며 살아있는 설명으로 군림한다.       

       

정자에서 여는 들차회 -제천 탁사정(2023.10.23.)


한국정원에서의 누정 원림은 누구나 오르고 내릴 수 있어 호혜적이다. 최근에 문중에서 관리를 위하여 통제하거나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유지 보존하기 위하여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누정은 목조 건물로 이루어졌기에 사람의 훈기를 쐬지 않으면 폐가처럼 금방 삭는다. 사람이 들락거리는 누정일수록 반들거리며 윤기 나는 생명력을 발산한다. 그러니 산책자의 지극히 정성스러운 사용이 공공의 재산에 대한 당연한 예의인 것이다. 그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공간이 사람의 행위를 규범으로 이끄는 행태에 관련한다. 정자는 수직적 위계에서 주변 자연을 받아들여 멀리까지 관조한다. 그리고 정자에서의 행위는 많은 경우 대화와 일상의 관계에 집중하거나 호젓하게 혼자 사색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정자에서 차를 마시며 풍광을 함께 나누는 차담(茶談)은 고급스러운 정원 문화를 표상한다.

             

탄소 벤치와 메타세쿼이아 -탄소를 흡수하던 목재가 정원으로 자원 순환(시진 : 라펜트)


일산호 황지해 정원의 탄소  벤치는 두 줄이다. 하나는 엉덩이를 걸쳐 앉는다. 앞의 벤치에는 손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늘어놓고 뭔가를 도모할 수 있는 마루처럼 쓸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신발을 신은 채로 가능하다. 바람꽃이 일산호의 분수가 뽑아내는 물보라에 뺨을 적시는 것을 보려면 벤치에 눕는다. 물보라가 내 뺨도 적신다. 입이 벙그러지는 순간이다. 메타세콰이아가 만든 수직의 녹색 벽면을 보고 정원의 장소를 잡은 것은 두루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주는 확신이다. 언뜻언뜻 정자의 입지 선정처럼 놀라운 발견이다. 이 모든 게 정원 문화의 향유를 위한 ‘세심한 관찰’과 ‘알아차림의 정성’에 근거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황지해 작가의 정원에서 한국 정원 유산의 근본 정신을 발견하는 일은 매번 놀랍다. 정원은 보는 것도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쉬는 곳이다. 자연의 풍광에 소박하고 평온한 거점 시설 하나면 그만이다. 저절로 풍류의 기운이 샘 솟는다. 몇 사람 어울리면 해학과 신명도 따른다. 쉬면서 새로운 창발적 발상을 돕거나 사유의 깊은 숲에 드는 일이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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