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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Oct 11. 2023

'100% 일반인'과 인터뷰하는 법  

보통 사람의 역사를 쓰는 일 

메일함을 열었더니 반가운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인터뷰이 J님이 취업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40대 중반인 J님은 22년간 군에서 장교로 일하다 전역한 뒤 전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직하려는 분야가 의외였다. 군 정보분과에서 기획과 행정 일을 담당했던 그는 4차 산업 분야 기술자로 제2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에 썼던 인터뷰에 대한 글에서 사전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인터뷰이가 언론 노출이 전혀 없고 인터뷰가 처음인 '100% 일반인'이라면? SNS 등 공개된 자료도 찾기 어렵다면? 사전 취재를 하려고 해도 할 것이 없다. 그냥 ‘우리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얼굴 보고 해요'라며 무작정 만나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을 인터뷰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인터뷰이는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기에 엄청난 긴장감과 부담감을 안고 인터뷰에 임하리라는 것. 이 마음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은 인터뷰이로서의 경험이 조금 쌓였지만 처음 인터뷰 할 때는 정말이지 너무나 떨렸다. 


이미 인터뷰어로서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인터뷰이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예상 못했던 질문이 나오면 그대로 얼음이 되면서 어버버 하게 되고 '내가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집에 가면 이불킥을 했다. 그래서 '질문지는 미리 주실 거죠?'라고 조심스레 묻는 인터뷰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질문지는 당연히 미리 준다. 그래야 인터뷰하기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사전 질문지의 역할


사전 질문지는 보통 인터뷰 이틀 전쯤 인터뷰이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너무 일찍 보내면 인터뷰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있고, 너무 늦게 보내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사전 질문지는 인터뷰이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로를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이러한 질문을 징검다리 삼아 당신에 대해 물어볼 테니 미리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J님에 대한 자료는 J님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매치업 사업에 참가했던 경험을 2p 분량 수기로 쓴 것이 전부였다. 수기에는 J님의 그간의 경력과 고민이 압축적으로 적혀 있었다. 매치업 사업 자체 내용뿐만 아니라 J님의 '전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사업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돼야 독자들이 공감하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경험이 적은 인터뷰이일수록 질문지를 짤 때 뭉뚱그려서 묻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세분화해서 묻는 것이 좋다. 인터뷰 질문을 징검다리라고 생각한다면 다리를 짧게 짧게 끊어서 놓는 것이다. 인터뷰가 처음인 인터뷰이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막연할 수 있기에 인터뷰어가 '이 길로 오면 된다'라고 잘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수기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보면서 궁금한 부분을 추가로 검색하고 공부했다. '이 부분은 왜 이랬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을 더 듣거나 이야기를 끌어낼 만한 것이 있겠다' 싶은 것을 메모했다. 질문지를 짤 때는 최대한 인터뷰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나는 군대 생활에 대해 경험한 적이 없기에 남편에게 J님의 이력을 설명하면서 J님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지 상상하면서 질문을 구체화했다. 주제와 대화 흐름에 맞게 질문지를 구성했다. 


하지만 사전 질문지는 말 그대로 사전 질문지일 뿐. 간혹 인터뷰 현장에서 미리 작성해 온 답변지를 앞에 두고 그대로 읽거나(어느 교수님 출신 인터뷰이는 '답변지 여기 몇 페이지'라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읽은 적도 있다. 강의실인 줄...), ‘저는 말 주변이 없으니 그냥 이것대로 써주세요'라고 말하는 인터뷰이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답변지는 나중에 인터뷰 끝날 때 저한테 주시고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를 하시면 된다고 말한다. 준비해 온 답변지도 볼 것이고, 인터뷰 나가기 전 피드백할 기회도 드릴 테니 지금은 지금의 이야기를 하자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지금부터가 진짜 인터뷰이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 


@평생학습e음 이민정


J님이 평일에는 취업을 위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듣고 있어서 인터뷰는 주말에 진행됐다. 주말이라 커피숍은 정신이 없을 것 같다며 사진작가가 J님 집 바로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를 대관했다. 보통 사람과의 인터뷰에서는 인터뷰이가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J님은 오전에 다른 자격증 시험을 보고 인터뷰 장소에 왔다고 했다. J님 손에는 미리 작성한 답변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부담 없이 편하게 말씀하시면 된다고. 


진취적인 사람.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J님의 인상이었다. J님은 군 생활을 하면서도 두 개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박사 학위를 수료할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 높았다. 인터뷰에서 내가 자주 질문하는 것은 ‘동력'이다. 주어진 일만 하면서 살아가도 될 텐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왜 끊임없이 공부를 했을까? 무엇이 J님을 움직였을까? 


“교육이라는 게 끝이 없더라고요. ‘대학 졸업하면 공부 끝, 취업하면 공부 끝’ 이럴 것 같은데 직무 지식도 배워야 하고 기술 확장도 해야 하고요. 변화에 맞추기 위해 공부를 손에서 놓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공부를 계속 이어왔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학교 공부에만 치중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학력을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기술보다는 학력이 중요한 줄 알고 살다가 사회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기술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거죠." 


J님은 전직 준비 과정에서 본인은 4차 산업 분야에 대한 취업 정보를 얻고 싶은데 컨설턴트들이 주로 행정직, 서비스직, 생산직 위주로만 구직 안내를 해줘서 답답함을 느꼈다고 했다. J님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분들한테도 제가 특이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J님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 4차 산업 분야 직무 향상 프로그램인 ‘매치업' 사업을 알게 됐고 드론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서 드론과 관련된 분야로 이직을 꿈꾸게 됐다고 했다.


인터뷰 당시 J님은  스마트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자동 공정 제어 장치) 교육 과정을 듣고 있었다. J님은 드론을 조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기계를 제어하고 정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도 J님이 직접 정보를 찾아 수업을 들었다. 처음에는 청년 대상 국비 지원 사업이라고 해서 좌절했는데, 전화를 걸어봤더니 수강생 중 80%가 청년으로 채워지면 나머지 20%는 중장년층이 참여해도 된다는 답변을 듣고 수강할 수 있게 됐다고. 다시 한번 ‘진취적'이라는 형용사가 떠올랐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에게 몰입하고 감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왜' 그랬는지, 그때 혹은 지금 마음이 어땠는지 물어보는 사람이다. 이러한 태도가 보통 사람을 인터뷰할 때는 특히 중요하다. 일상에 치여 그때그때 선택을 내리며 살다 보면 내가 왜 그랬는지, 내 마음이 어땠는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 인터뷰어는 밋밋해 보이는 삶에 문장 부호를 찍는 사람이다. 그때 왜 그랬는지, 그래서 마음이 어땠는지. 보통 사람을 인터뷰할 때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저조차도 잘 몰랐던 제 마음을 인터뷰 덕분에 들여다보게 됐어요.' 



평범한 서사의 힘 


J님에게 왜 익숙한 일을 계속할 수도 있을 텐데 기술 분야로 취업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물었다. 물론 J님이 공학을 전공했기에 완전히 무관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도전임에는 분명했다. 


이제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100세까지 살든 안 살든 지금까지는 상황에 의해 선택을 했다면 앞으로는 제가 선택한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 좀 더 성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사실 그동안 쌓아온 경력이 있으니 단순하게 이직을 하려고 하면 관리직으로 쉽게 일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죠. 그런데 60대가 되어 능력의 한계치가 왔을 때 그때 가서 기술을 배우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조금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바닥에서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거죠. 이력서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써봐요. 자소서도 처음 써보고요."


J님은 이번 교육 과정이 끝나면 관련 업계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그는 일단 직장에 들어간 다음, 코딩을 좀 더 배워보려 한다고 했다. 


“저희 아들이 코딩 학원에서 코딩 배우는데 걔네가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배워야 하는 거예요. 어른이 배우나 애들이 배우나 처음 배우는 건 똑같잖아요. 못 배울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J님과 인터뷰를 했을 때 나 역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질문의 끝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라는 회의가 있었다. 조직 안에서도 조직 밖에서도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겁게 느껴졌다. 자꾸만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떨까. 


“어차피 20년 이상 더 일해야 한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일하려 한다면,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J님의 답변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스스로 세워둔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20년 이상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면 지금 시작해서 늦을 건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안 될 이유'를 따지며 안전지대를 찾는 내게, ‘안 될 게 없는 이유'를 말하는 J님과의 인터뷰는 울림이 컸다. 안전한 선택만 내리다 60세가 됐을 때 내가 가장 후회할 일은 무엇일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이 아닐까. 


이런 고민은 비단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닐 거라 생각했다.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는 40대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도록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기사 발행 전, 피드백을 받기 위해 원고를 보냈더니 J님에게 이런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기록으로 남겨지는 제 역사네요! 다시 시작하는 과정의 내용인 만큼 소중하게 간직해야겠어요!

짧은 시간 따듯하게 대화 나누어 좋았고 홍선생님, 같이오셨던 사진작가님도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터뷰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인터뷰를 처음 경험해 보는 인터뷰이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는 투명한 기쁨과 보람이 있다. 보통 사람의 역사는 또 다른 보통 사람에게 용기와 영감이 될 것이기에. 




*이전에 썼던 원고를 다듬고 보완해서 싣습니다. J님과의 인터뷰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어요.


프리랜서 인터뷰어/에디터로 일하고 있어요. 인터뷰 관련 문의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으로 주세요. 14년 차 인터뷰어 포트폴리오는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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