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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pr 16. 2024

무섭다기보다 슬픈 일

다시, 세월호

4월을 앞둔 제주에는 4.3 항쟁 추모 분위기가 가득했다. 라디오에서도, TV에서도, 길거리 현수막에서도 4.3이라는 글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4.3이 뭐냐고 묻는 날날이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2학년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날날이가 외교부 장관이 돼서 평화 통일을 하고 싶다 그랬지. 광복을 맞이했는데 남북이 통일을 못하고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세웠잖아. 그러면서 남북이 갈라지고 이념 갈등이 심해져.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서로를 싫어하고 못 믿게 된 거지. 그런 상황에서 남한 단독정부는 안 된다고 반대하던 제주도 사람들이 엄청 엄청 많이 희생되고 죽었어.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을 죽인 거야.”


아이가 아직은 민간인 학살이라는 단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더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 4.3 항쟁을 4.3 사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차 뒷자리에서 가만히 듣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4월에는 무서운 일이 많네.”

“또 무서운 일이 뭐가 있는데?”

“세월호.”

“맞아. 세월호를 탔던 고등학생 형, 누나들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오고 있었지. 그런데 결국 제주도까지 오지 못하고 배가 침몰했어. 날날아. 4.3항쟁이랑 세월호는 무서운 일이기도 하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슬픈 일이야.”


얼마 전 아이는 학교 끝나고 다니는 마을방과후에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를 배웠다. 친구들과 함께 커다란 노란 리본을 만들기도 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의 가사는 매우 짧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9살 아이가 어둠과 빛과 거짓과 참과 진실과 침몰과 포기를 노래하는데 마음이 아리고 시렸다. 어둠은 빛을, 거짓은 참을, 정말 이길 수 없는 걸까. 진실은 침몰하지 않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있는 걸까. 명료한 가사 앞에서 자꾸만 물음표를 띄우게 됐다.  


노래를 배우기 전 세월호에 대해 배웠다는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무서웠냐고. 그러자 아이는 마치 나를 가르치듯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무섭기보다는 슬펐어.”


세월호 10주기라는 말을 듣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했는데 생각해 보니 참사 2주기 때 배 속에 있던 아이가 9살이 되었다. 인간은 타인의 시간에 이토록 무심하다.


아이 없이 출장을 떠나 와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그리고 다짐한다.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떠나간 아이들을 위해.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다음 제주행에는 4.3 평화기념관에 꼭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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