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저 일기 Aug 05. 2023

불륜, 그 일은 내 탓이 아니다.

어떻게 했어도 그 일은 결국 일어났을 겁니다.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믿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때때로는 나를 탓했고, 자주 그를 탓했다. 숱한 과거 일련의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왜 그때 몰랐을까. 뭔가 이상했는데. 그 순간 눈치채고 밝혀냈어야 했는데 왜 그냥 넘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일어날 일은 일어났고, 그 일은 내 탓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차라리 다행이야. 나는 그 시절 과도한 일에 너무나도 지쳐있었고, 그와 주고받는 카톡 메시지는 5개도 되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소홀해져 갔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머릿속은 온통 일과 돈에 관련된 생각뿐이었고, 그에게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내가 집을 준비할게. 네가 리모델링할 비용을 마련해 와. 지금부터 2년 정도 후면, 몇천쯤은 모을 수 있지? 나는 정말 그런 줄로 알았다. 그의 생활비와 고정비를 제외하면 그 정도는 모을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 까. 그렇게 우리는 차츰 멀어져 갔다.


  어느 날, 그가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몇천쯤이었을까.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가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수많은 핸드폰 어플들을 들락날락 거리며, 재테크공부를 하며 주식, 코인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했다. 그의 마음이 어떨지 알았기에, 괜찮다고 했다. 내가 조금 더 열심히 벌어서 갚아줄게, 그렇게 나는 참 멋진 사람이야 라고 자화자찬하며 넘어갔다. 시간이 흘러 외도가 들킨 후 들은 얘기로는, 그 순간에 그는 헤어지고 싶었다고 했다. 여자친구 앞에서는 그저 한없이 잘난 사람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자존심과 자존감, 자의식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자의식과 자존심은 무척 강했으며, 자존감은 낮았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미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저 좋은 면만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굳이 생각하지 않았을 뿐. 그를 향한 가벼운 농담 중에서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있으면 곧잘 화를 냈다. 본인이 친구들을 놀리는 건 괜찮았지만, 친구들이 본인을 놀리는 것에는 늘 엄격했다. 사람들은 으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며 이 사람은 여기까지는 괜찮겠구나 하는 `선`이라는 것을 가늠하게 되는데, 그는 타인에게 엄격했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기분을 자주 나쁘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그가 한 말과 타인이 한 말이 모두 비슷한 류였으므로, 본인이 하는 말은 괜찮고 남이 하는 말은 안 괜찮은 내로남불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콩깍지가 벗겨졌다. 그의 단점이 한꺼번에 보였다. 한동안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면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데, 왜 행동은 나쁘게 하면서 좋은 사람인척 거짓말을 할까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냥 그는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걸 감추려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한테 술술 거짓말을 할 때 알아차려야 했다. 그 거짓말의 향방이 내가 될 수도 있음을. 그때는 콩깍지에, 거짓말을 해서라도 시가와의 갈등을 잘 조율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작가의 이전글 외도는 학폭만큼이나 피해자의 삶을 파괴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