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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명랑 Sep 05. 2024

방년 48세 비만소녀 탈출기 2

제2화 육즙 떨어지는 OO 통닭

이 나라에서는 프라이드 치킨을 치느님이라고 부른다. 나도 프라이드 치킨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최근 들어 주변에 채식주의자가 많아지면서, 나도 나름 각성을 하게 됐고, 쇠우리에 빽빽하게 갇힌 닭들이 하나둘씩 튀겨지는 모습이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어쪄랴. 나의 입맛은 튀긴 치킨을 모른 척하기가 어려운 것을. 그런데 말이다. 최근에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서로서로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의 가격이 2만원을 웃돈다. 말도 안된다. 여하튼 언젠가부터 파, 마늘, 매운 고추가 올라가는 치킨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각종 양념과 치즈 범벅인 치킨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오리지널 프라이드 치킨파다. 


내 단짝친구 수영이가 동네에 맛난 치킨집이 새로 생겼다며, 거기서 만나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며칠 전에 연락이 왔다. 그날 밤부터 수영이와의 만남보다 치킨에 대한 기대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는데,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법. 막상 당일이 되니 온몸이 찌뿌둥한 것이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의 약속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수영이와의 약속을.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비록 지금은 그때 맞춘 반지를 끼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서로 영혼이 연결된 사이다.  


마침 오래 기다리지 않아 버스가 와서 약속 지점에 도착했다. 새로 오피스텔이 왕창 들어선 신도시였다. 도대체 이 많은 오피스텔에 누가 사는 것일까? 나처럼 아직 집 한 칸 없는 사람들이겠지? 1층엔 각종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피자집이며, 국수집이며, 삼겹살 집이며 말이다. 수영이가 말한  치킨집은 오피스텔 안쪽 벽면에 있었다. 이름하여 OO통닭! 통닭, 나의 사랑이여. 그 이름도 아름답다.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수영이가 어서 들어오라며, 이곳에서는 바로 튀겨서 주기 때문에 자기가 미리 주문을 못했단다. 우리는 프라이드 통닭 한 마리와 그것만으로는 좀 아쉽다 싶어 매운 떡볶이를 주문했다. 마지막 순간에 내가 똥집 튀김을 덧붙였다. “야, 이거 우리가 다 먹을 수 있을까?” 수영이가 흘끔 날 쳐다보며 물었다. “뭐, 남으면 싸가면 되지”, 나는 빙긋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러니 우리가 살이 안찌고 배길 수가 없다. 


10분 남짓 지났을까? 전 세계에서 주문한 음식이 이처럼 빨리 나오는 나라가 있을까? 얌전하게 몸을 웅크린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와 파스타 그릇에 담긴 떡볶이, 그리고 접시에 똥집튀김이 나왔다. 물론 500미리 생맥주 두 잔과 함께! 


닭에서 굳이 어느 부위를 선호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다리’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다리는 아버지나 남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게 암묵적 규약이었기 때문일까. 남들과 같이 프라이드 치킨을 먹으면서 내가 먼저 다리를 뜯어본 적은 없다. 오늘은 수영이와 단둘이니 각각 하나씩 다리를 뜯어도 되련만, 소심하게 슬쩍 날개 한 짝부터 잡고 뜯는다. 우와… 이건 천상의 맛이야. 회사에서 잔뜩 싸짊어지고 왔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하지만 이 집이 진정 맛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슴살을 먹어봐야 된다. 프랜차이즈 통닭의 가슴살은 대개 퍽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은밀한 눈빛을 교환하며, 가슴살을 포크 두 개로 좌악 찢었다. 어머나 세상에. 가슴살에서 육즙이 뚝뚝 떨어진다. 가슴살이 쫄깃쫄깃했다. 


“수영아, 나 회사 관두고 여기 프랜차이즈 하나 열어서 장사할까?” 

“미친 년. 너 먹을 때마다 장사한다고 한 것만 모아도 벌써 스무 개는 될 거다. 그거 다 해서 돈 벌었으면 벌써 빌딩 올렸어, 빌딩.”

“하하하, 그러네. 근데 이 집 왜 우리 동네에는 없는 거지? 우리 동네에는 애들 좋아하는 것들 밖에 없어. 669 같은 거.”

“기집애,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냐? 내가 이 회사 대표라도 되냐?”


우리는 낄낄거리며 닭 한 마리를, 때때로 떡볶이 국물에 찍어서 다 먹고, 매운 떡볶이를 다 해치우고, 똥집을 두 세 개 남겼다. 똥집은 솔직히 좀 질겼다.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러고도 다이어트를 한다니… 나 자신이 순간 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수영이와 함께라서 즐거웠다. 다이어트에도 치팅데이라고 있지 않은가? 가끔은 이렇게 맘껏 먹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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