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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명랑 Sep 05. 2024

방년 48세 비만소녀 탈출기 1

제1화 48세 오만금, 줌바댄스를 등록하다

내 이름은 오만금, 방년 48세이다. 세상 만금보다 귀하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난 내 이름을 단 한 번도 자랑스러워하거나 심지어 좋아해 본 적이 없다. 21세기에 촌스럽게 오만금이 뭐란 말이냐. 심지어 이명박 정권 때는 신문에 새만금 사업이 떠들썩하게 오르내리니, 괜히 내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걸핏하면 “네가 오만금이면, 네 동생은 육만금이냐? 아님, 오천금?”이라고 놀리는데, 내 동생의 이름은 말짱하게 오동철이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는 이야기는 쪽팔린 고백이다. 다이어트에 관한 고백. 키 160에 몸무게가  72킬로인 나는 정기검진을 받을 때마다 비만 판정을 받는다. BMI 28.12. 정기검진 때마다 전날 쫄쫄 굶고 가는데도 늘 이렇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늘 내게 “운동을 더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식사량을 줄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당뇨의 위험이 있어요” 등등의 뻔한 말씀을 하시는데, 신기한 건 그런 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배불뚝이였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몸무게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늘더니 최근 급기야 70킬로를 넘기면서, 이제는 사놓은 옷을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바지 단추가 안 잠기는 건 물론이거니와, 재킷은 앞 단추와 단춧구멍이 서로 이어지지를 않는다. 남방이나 블라우스를 입으면, 가슴 부분이 벌어져서 민망한 수준이다. 크지도 않은 가슴이건만, 가슴둘레가 길어지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솔직히 살면서 다이어트라는 걸 한 번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각 잡고 제대로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옷이 작고 입을 수 없게 되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를 제대로 해 보기로 굳게 결심했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배에 난 고무줄 자국을 긁으며, 제일 먼저 나는 동네 구청에서 하는 체육센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거야. 그럼, 운동이지, 운동이고 말고. 어차피 식사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살이 빠지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 갱년기에 접어들어, 먹는 걸 줄여도 몸무게는 계속 늘기만 한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게 이런 것인지. 마침 체육센터 등록이 며칠 뒤인 오늘!


졸린 눈을 비비며 체육센터에 갔더니, 이게 웬걸. 사람들이 벌써 북적거리는 게 아닌가. 스무 명은 넘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몰려있었다. 빨간 츄리닝의 머리가 하얗게 새신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빙긋 웃는다. 헉, 이분이 나한테 왜 이러시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괜히 딴 생각하다가 등록에 실패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며 순서표를 뽑아 들고 기다렸다. 번호를 부르는 아저씨의 외침에 응답하며 하나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창구로 가는 사람들. 로비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점차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또 벽에 붙은 표지판에 프로그램이 하나둘씩 지워졌다. 골프 마감이요! 수영A반 마감입니다! 에어로빅 마감이요! 아니, 이렇게 다 마감이면 나는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순서를 부를 즈음엔 로비에 대여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뭘 하지? 사실 나는 줌바댄스나 수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두 프로그램 만이 그나마 퇴근 후 저녁 시간에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선 새벽 타임에 무언가를 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런 정신 가지고 어떻게 다이어트를 한다는 거야! 이제부터는 아침부터 벌떡 일어나서 해야지”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내 차례가 되어 창구에 앉아있는 분께 물었다. “저, 혹시 줌바댄스 자리 남았나요?” 오호, 쾌재라. 이게 왠일인가. 줌바댄스는 아직 두 자리가 남아있단다. 사실 난 줌바댄스가 뭔지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내게도 댄스는 그나마 재미있지 않을까? 문득 손발을 리듬에 맞춰 흔들며, 캡을 뒤집어쓰고, 랩을 읖조리는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이제 댄서가 되는 거야! 날씬해지는 그날까지!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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