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남편과 어이없는 다툼을 했다.
다툰 날로부터 한 이틀간은 서로 서먹했는데, 진심으로 섭섭하고 서운하고 화가 났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먼저 싸움을 건 남편이 귀엽게 느껴져 기록해보기로 했다.
나는 남편과 식사를 할 때, 또는 식사를 차려줄 때 그릇에 차곡차곡 담아 정갈하게 차려주는 걸 좋아한다. 마른 반찬은 이런 그릇에, 부침반찬은 이런 접시에, 귀여운 종지에 양념장도 담아보며...따끈하게 끓인 보리차도 새 컵에 담아둔다. 소꿉장난하듯 요즘 이런 살림에 재미를 붙여 마음에 드는 그릇도 종종 산다. 차리는 재미가 있어 스스로 만족하고, 설거지를 할 때도 지루하지가 않다. 밥상차리기, 청소하기, 빨래부터 작은 정리정돈 그 많은 살림거리들 중에서 그나마 재미붙인게 주방일이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다.
그렇게 소꿉장난을 하듯 밥상을 차리면 또 그것을 맛있게 싹싹 비워주는 그를 보면 내가 다 배부른 느낌이다.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거린달까. 그럴때면 이런게 모성애인가- 싶어 몰랐던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 주말을 앞두고 몇일 전부터 밥상에 투정을 부리는 거다. 접시에 옮겨담지 말고, 그냥 통째 가져다놓고 먹자는 둥, 냄비에서 국을 덜고 있으면 금방 다 먹을걸 왜 덜고 있냐며 냄비를 휙 가져가 냄비째 밥을 말아버리는 거다.
나는 집에서 먹는 저녁 한끼, 근사하게 보는 맛도 좋은데 자꾸 대충 차리라고 잔소리를 해대니까 슬슬 열이 받았다.
그렇게 '대충' 먹자던 식사를 '대충' 끝내며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 식으로 어차피 설거지 내가 하고 내가 차리는데 왠 잔소리람, 하며 쏘아댔다. 말을 내뱉고도, 참 못됐게도 말했다 싶었지만 주워담을 수는 없으니 입을 퉁 내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보고 저리비키라며 입을 쭉 내밀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서 무슨 자기만 설거지를 하는 줄 아냐며, 내가 주방살림 말고는 다른 집안일은 신경도 안쓴다는 식으로 말하는 거다.
다른 집안일은 귀찮기도 하고 잘 못하겠는게 사실이다. 청소기를 돌려도, 빨래를 해도 나보다는 더 꼼꼼한 남편이 잘했고 또 남편보다 털털한 나이기에 늘 청소를 먼저 시작하는 것도 남편이다. '다른 집안일은 신경도 안쓰면서 설거지만 늘어놓는다는' 식으로 들린 나는 그나마 남편보다 잘하는 나의 주방일에 담긴 내 성의를 무시당하는 것 같아 열이 올랐다.
어쨌든 당신을 위하는 마음에 정성껏 차리는 것인데, 라는 말은 꿀꺽 삼켜버리고. 그럼 이제부터는 밥을 따로 먹자고, 나는 대충 차리는게 싫으니 내 스타일대로 차려먹고, 오빠는 오빠스타일대로 대충 하던지 말던지 이제부터 따로 먹자고 하고 대화를 끝내버렸다.
그로부터 2일간 혼밥을 하는데, 차려먹기도 귀찮고 밥맛도 안생겼다. 나는 원래 혼밥을 잘 하지 못한다. 혼자 먹을라면 정말 '대충' 먹게 되고 차리는 것도 귀찮고 설거지도 귀찮다. 그리고 먹게되면 허겁지겁 먹느라 후식으로 소화제를 먹는게 일상이다. 싸우고 다음날 남편은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지 늦게 들어왔고, 나는 먹는둥마는둥 군것질이나 하며 저녁을 보내고 둘다 말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금요일이었는데, 둘다 일찍 들어와 저녁시간이 겹쳐버렸다. 나는 우유에 씨리얼을 말아 TV 앞에 앉았고, 남편도 퇴근하고 귀찮았는지 김이랑 김치, 스팸한통 꺼내더니 스팸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식탁에 앉는 거다. TV에는 윤스테이를 하고 있었고, 근사한 떡갈비에 뜨끈한 만두국을 보고있자니 우리 둘 모습이 우습고 짠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다시 우리는 식탁에 마주앉았고, 나는 남편 너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게 즐겁다, 설거지는 내가 하면 되고, 다른 집안일은 당신이 더 잘하니까 그것에 더 신경쓰면 되지 않냐고 말했고, 남편은 내가 설거지를 매번 너무 많이 하니까 그게 부담스러웠다고 하는거다. 한 식탁에서 각자 저녁밥을 먹으며 그렇게 눈녹듯 또 한번의 다툼이 끝이 났고 우리의 집안일 분담은 다시한번 정리가 되며 평화가 찾아왔다.
표현에 서툰 남편과 나는 다투면 늘 이런식이다. 서로를 배려해주려는 마음은 있는데, 늘 표현이 어색하다. 둘 중 한명이라도 어색한 표현 뒤 숨겨둔 속내를 포착하지 못하면 오해의 꼬리를 잡고 오해의 벽만 쌓아가기에... 방심은 금물이다. 1이면 1, 2이면 2, 바로 얘기를 하지 못하고 김장이라도 하듯 담아두고 묵혀둔다. 나보다 훨씬 더 어색한 이 남자. 이제 그 무뚝뚝한 표정 뒤에 있는 진심을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