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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슈라 Mar 09. 2021

빈 방의 빛

의식의 흐름으로 쓰는 일기

나 혼자만이 드는 감정이 있다. 쓸쓸함이나 공허함 같은. 나는 '공허함'을 자주 느낀다. 

쇄골 아래 늑골, 가슴 그 한가운데가 빈 방이 된 듯한 느낌. 차곡차곡 싸놓았던 생활가지들을 연락도 없이 이삿짐센터가 들이닥쳐 통째로 가져간듯 휑- 하다. 살아온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있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소리없는 햇살만이 드나든다. 


에드워드 호퍼, 빈 방의 빛



생각해보면 내게 공허함은, 이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어린 나이부터 이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런 감정은 어렸던 나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이름붙이지 못한 채 헤매기만 했던 것 같다. 헛헛한 마음을 어렵게 말로 풀어내어 친한 친구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가족에게도 의지해보았지만, 결국 진짜로 이해해주는 건 없다는 생각에 더 외로워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털어놓아 주변사람들을 더 힘들게만 했던 것 같다. 어렸기에 가능한 서툴고 어리석었던 방식이다. 


돌고돌아 맘편히 의지했던 것은 글과 그림이었다.

자기 전 일기를 쓰거나,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아무 책이나 골라잡아 읽었고, 그 중에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모아놓은 책을 읽으며 그림에 마음이 기울었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고흐의 강렬한 붓터치가,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이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가끔씩 빈 방의 존재감을 느끼게 될 때면, 그림 화집을 뒤적이거나 책을 찾아 읽는다. 




에드워드 호퍼, Morning Sun


그리고 지금은 호퍼의 그림들에 내 빈 방을 내어주고 있다. 

텅 빈 공간에 비추는 노르슴한 빛이, 한껏 쪼그라든 작은 나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것도 같고,

밝은 아침햇살을 온전히 쬐고 있는 그림 속의 여자를 보고있노라면, 잠시나마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어지러운 생각들의 뒤얽힘을 호퍼의 그림들이 살살 달래주고 있다. 






그러다 제목에 혹해서 산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내가 느끼는 그 공허함이 어쩌면 나의 창작 욕구를 누르고 있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나의 이 빈 방을 채워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만의 글과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

창작의 욕망을 억지로 누르면 어떻게 될까. 나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허감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 사회는 어느 연령대, 어느 세대를 봐도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객관적인 조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공허함을 토로하는 젊은이도 있고, 중년에 이르러 허무함을 못 견디겠다며 뒤늦게 일탈하는 이도 있다. 그런 정체성 위기는 자기 인생의 의미, 자신이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

훨씬 더 빠르고 직접적인 해답이 있다. 창작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자. 공들여서 하자. 빨리 시작하자. 당신은 본능을 채우지 못해 굶주려 있는 상태다.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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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입에 쓰여진 이 이야기들은 내게 느낌표를 던져주었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 속 빈방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를 누구보다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조금 더 오바를 보태면 운명적으로까지 느껴졌다. 운명적으로 느낀 창작. 빈 방의 이유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산 가치가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 Rooms by the Sea



어쩌다보니 이 길고 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나의 일기가 결국은 장강명 작가의 책 리뷰로 끝나게 되는 것 같은데, 정말 이 책은 좋다고 생각했다. 나같이 터무니없이 이런 감정에 휩싸여 쉽게 헤매이곤 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어쨌든.. 빈 방의 존재이유를 깨달은 지금, 지금부터가 아마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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