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다리로 딛고 서서 안정을 주는 너
의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홍콩 공항에 있다.
대학교 휴학을 하고 인도를 가기 위해 홍콩을 경유했는데, 이왕 경유한거 일주일 정도 여행하기로 해서, 혼자 7일 정도 홍콩에 머물렀다. 꼼꼼히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고, 그저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안전한 숙소 한군데만 예약해놓고 무작정 떠났다. 첫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혼자하는 여행 또한 처음이라 설레임 한 국자에 막연한 두려움이 함께 곁들여있었다.
침사추이 거리를 제일 많이 누비고 다녔다. 대형 명품매장이 줄지어있고, 붐비는 사람들을 따라 걷다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나왔다. 휴학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은 이 여행에도 쓰고 학비에도 보태야했다. 그러면서 사지도 못하는 명품매장 거리를 무작정 걸으며 그저 깔끔한 도로, 적당히 기분좋은 날씨, 스타일리쉬한 사람들과 멋진 물건들을 구경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도 불안도 내려놓고 작은 자유를 느꼈다.
혼자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고 인도행 비행기를 탈 때 문제가 생겼다.
숙소 체크아웃시간과 비행기 탑승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12시간이 넘도록 붕 떠버린 것. 그것도 낮이면 상관없었는데 줄곧 새벽시간으로 떠버린 것이다. 아무걱정없는, 무모했던 스물한살의 여자애는 24시간 맥도날드나 카페를 찾다가, 그냥 홍콩공항에 노숙을 하기로 한다.
배낭 한 개와 캐리어 한개를 들고 깜깜한 밤에 홍콩공항에 입성을 했다. 늦은 시간이라 공항은 한적했고 조용했다. 오래 머물러도 눈에 띄지 않을 구석자리를 찾으며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엉덩이를 붙였다. 큰 창 너머로는 깜깜한 밤하늘 아래 비행기의 불빛으로 노랗게 물든 분주한 풍경이 있었고, 하얀 형광등불빛 아래 쾌적하면서도 건조한 그 공항의 공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오랜 기다림의 시간. 혼자의 시간.
자정을 넘기면서 공항의 하얀 불빛들은 점차 조도를 낯추었고, 나와 같은 배낭여행객들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 워낙 늦은 시간인지라 거의 혼자인 사람들이 많았고, 공항 여기저기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아 앉거나 누웠다. 백색소음처럼 들리는 공항직원들의 말소리만 웅성댈 뿐 조용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이 뻐근하고 피곤이 몰려왔지만, 무의식 속에서도 셀프보호본능이 올라왔는지 잠은 들기 쉽지 않았다. 무던한 성격의 나여도 그 낯선 장소에서 홀로 잠에 들지는 못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지겹고 여행내내 함께 지니고 있던 책도 지루했다. 불편하기도, 편하기도 한 의자에 허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몸을 기지개피듯 기대었다. 그리고 일기장에 끄적끄적 혼잣말을 적다가,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을 그리다가, 내가 쥐고 있는 커피컵도 그리고 의자도 그렸다. 그리고 곧 편한 의자에서 쉬고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홍콩에 머물렀을 때 아침마다 갔던 카페의 공간을 떠올렸다.
일말의 소속감없이 돌아갈 목적지는 그대로 둔 채 시간을 멈춘 듯 기다렸던 그 때. 설레임과 호기심과 두려움과 막연한 자신감이 서로 엉겨 들썩이는 마음을 '의자'라는 것에 기대며 혼자만의 낭만을 즐겼다.
기다림의 시간은 의자와 닮았다.
긴 기다림 끝에 바라던 기대를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편안함을 가져야 한다.
네 다리로 바닥을 딛고 반듯하게 서 있는 의자는 안정적인 기다림이다.
작은 실수로 공항에서의 밤을 보내는 동안, 내 짐을 지키며 인도라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기대와 불안,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나게 될 친구를 그리며 들쑥였던 마음. 그 마음이 정해진 것 없이 불안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지금의 나와 조금 맞닿아있다.
높이가 잘 맞아 바닥을 힘있게 지지하고 서 있는 오래된 나무의자 그림은, 내가 나서서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기다림만이 최선일 수 있다는 담담한 위로를 전하는 듯 하다.
현재에 발붙이고 충실하게, 성실하게 기다리는 것.
그 단단하고 묵직한 의자 위에 따뜻한 빛이 내리쬐는 풍경으로, 나에게도 따뜻함이 오지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