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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슈라 Mar 16. 2021

매우 사적인, 둘만의 이야기

임경선 작가님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으며-

책을 예약주문해놓고 이렇게 손꼽아기다린 일은 정말 드물었다. 금요일 오후,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알림을 받고 혼자 책을 읽으며 불금을 보낼 생각에 집에 도착할때까지 두근두근 설레었다. '한 치의 미화도 검열도 없는 결혼생활에 관한 가장 사적인 진실을 쓰는 것이 작가로서 결혼 2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온전한 방법'이라며 인스타그램에 남긴 이 동기가, 정말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 동기는 아마도 '쓰는 사람'들의 로망 아닐까?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라는 책에서 뒤늦게 임경선 작가님의 매력을 알아보았고, 이 책을 예약주문함으로써 이 작가님에게 이미 반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나는 2017년 늦가을에 결혼해 3년을 꽉 채우고 이제 4년차에 접어들었다. 아직 아이는 없다.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산 1-2년 동안은 서로의 열정과다로 걸핏하면 오해하고 서운해하하다 극적으로 화해하는 등의 불같은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그 열정의 불길이 잔잔해졌지만 아직도 냉탕과 열탕을 오가며 불안정한 온도에 머무르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해 알게되는 게 연애일지 모른다면, 상대방을 제대로 알게 되는 건 결혼인 것 같다. 겉옷부터 속옷까지 그의 옷가지들을 옷장 속에 정리하며 속속들이 알게 된다. 회색 반팔티 한장을 나만의 '애착티'라며 목이 늘어나고 헤지도록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입는 나와 달리 주기적으로 옷을 관리하고 교체하며 옷장을 채우는 남편. 디자인이 맘에 들면 재질은 둘째치고 후다닥 사버리는 나와 달리 일단 재질과 사이즈부터 확인하며 꼼꼼하게 구매하는 그. 


빨래를 갤때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결혼을 앞두고 우리는 먼저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 때 내 친구 중 한 명이 남편에게 같이 산다는 게 언제 가장 실감이 났냐는 질문에 어색한 듯 말을 시작하길, 내 팬티를 개고 있을 때 실감이 난다고 하는 거다. 생각도 못한 대답을 듣고는 웃음이 터져버린 친구들 옆에서 '앗차, 우리 진짜 이런 사이가 되는 거구나!' 하며 마음이 간질해지는걸 느꼈다. 오직 나만의 것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간질이는 시작에서 얼마 지나지않아 우리는 서로의 다름에 자주 당황해야만 했다. 

나는 잘 때 덮는 이불은 극세사이불처럼 어느정도 무게가 있고 폭신해서 내 몸이 폭 감싸져있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사락사락한 가벼운 이불을 선호했다. 나는 집에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화분을 잔뜩 들여놓고 싶어했고, 남편은 집안 바닥에 아무것도 두지않고 심플하게 쓰고싶어 했다. 주말이면 나는 어디라도 나가서 콧바람을 쐬고싶어했지만 남편은 집안청소를 하고 TV를 보며 느긋하게 쉬고자했고, 퇴근시간이 달라도 나는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을 먹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배고프고 번거로울테니 먼저 혼자 먹으라고 했다.


의식주에 관한 세세한 모든 것에서의 다름이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었고, 우린 왜이리 안맞을까 하는 슬픔과 억울함이 가득했다. 1번부터, 1다시1, 1다시2 이렇게 세부적인 모든 것들을 우린 조율해야 했다.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그 골치아픈 과정 속에서 함께일 수 있는 이유는 연애할 때부터 나와 그가 참 닮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지점들이었다. 


적당히 무뚝뚝한 말수에 많이 차이나지 않는 가정환경, 비슷한 경제관념,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그 무언가는... 아마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음을, 그러니 '우리'를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마음이지 않을까..?


Mr and Mrs Clark and Percy. David Hockney


결혼20년. 까마득한 시간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작가님 부부의 내밀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또 공감하다 이내 부러워졌다. 

작가님이 그의 책 목록을 줄줄 읊으며 너무 다른 취향에 신기해하고 감탄하며 페이지를 쓰는 것처럼 나도 그의 취향과 습관을 더욱 더 알고 싶어졌다. 갑자기 나와 '안'맞는 그가 너무 궁금해지는거다. 


사랑에서 결혼으로, 환상에서 일상으로. 이제는 오로지 우리 둘만이 쌓아가는 역사일테지. 나는 어서어서 우리 둘의 페이지가 두툼하게 쌓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안'맞음이 우리만의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나이가 한참 들어 머리가 희끗해짐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왔다갔다 할 우리 둘..  

우리 둘의 결혼이 참 애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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