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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May 22. 2019

2-10. 안섶

안전 서핑



1.

그 많은 차들이

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 곳에 모여있는 건지

불가사의했다.

그리고 이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를 벗어나 갈 곳은 있는지도.



2.

버스는 한참을 멈춰있다가

조금씩 움직였다.

이걸 반복하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기도 하고,

국도변 허술한 휴게소에,

때로는 갓길에

정차하기를 몇 번 더 반복했다.


그 사이 나는

'지금 톨게이트인데 너무 차가 많다.'

'아직도 가평 휴게소 못 갔어.'

'가평은 지났는데 어딘지 모르겠어.'

'인제도 못 갔어.'라며

나를 기다릴 친구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양양 로컬인 친구도

여름의 휴가철에

그 인근 교통이 어떤 지경인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닐곱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낼 정도의

극악의 교통체증일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이

도로 위에서 예닐곱 시간을

차 속에서 보낸 사람들 역시

이럴 줄은 몰랐을 것이다.



3.

버스 안에서 모든 진이 빠져서 도착한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내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던 친구는

터미널로 오는 중이었다.


뜨거운 날씨를 피해

근처 가게(편의점 커피숍)에서 기다리다가

1년여 그리고 예닐곱 시간 만의 극적 상봉을 마쳤다.


그다음은...

또 이동.

'하조대 정류장'까지 이동해야 했다.

서울 시내버스처럼 배차가 자주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 배차까지 뜨는 시간.

하조대 정류장에 내려서

해변까지 걸어가려면...


성수기에 해변 직행이 없다면 가지 말자!


이동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난 후의

눈물 나는 교훈이었다.



하조대 서피비치/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4.

점심은 친구가 준 빵으로 때우고

겨우 하조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피비치는 극성수기의 복잡함이 덜해 좋았다.

서핑 전용 해변이라 붐비지 않은 것 같았다.


전년도 서핑 입문을 이 친구와 하고

1년 만에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었다.

둘 다 전과 다르게 올해는 보드 렌털만 하게 되니

좀 떨리기도 했다.


물론 혼자 서핑을 다니긴 했지만

'나도 이제 서퍼인 건지'

'바보 둘이서 겁 없이 렌털만 하는 건 아닌지',

좀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다에서 서핑 강습 중인 모습/ 하조대 서피비치/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5.

다른 곳보다 한적한 해변이긴 했지만

서핑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많았다.


그 날만 강습이 두세 차례 있던 걸로 보였다.

한 번에 어림잡아 5-60명 정도로 생각됐다.


어김없는 장판 상태.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으로선

파도가 없이 서핑을 해야 해서

기분도 안 나고

서핑 체험을 진행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보기엔

이 인원이 이런 환경에서 배운다는 게

훨씬 안전해 보이긴 했다.



6.

서핑이 인기를 끌자

바다에는

서핑을 배우러 온 사람들로

넘쳐날 때가 많다.


그리고 나도 그 덕에

바다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인

강습생을 꽤 봤다.


서퍼들이 서로 돕고 다닌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떠있는 해변에서

위험한 사람 모두를 돕긴 어렵다.

위험한 사람도 한 둘이 아닐뿐더러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방파제에 빨려 들어가 있거나

먼 바다로 떠내려가는 사람을 본 적도 있었다.

뭐, 나도 그랬지만...


그중 한 분은

테트라포드tetrapod* 더미로 빨려 들어가 보드에 매달려 계셨는데

나는 그저 그분이 보드 위에 올라갈 수 있게

옆에서 잡아주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안심시키고, 강사분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까지가

서로의 안전에 더 나은 선택이었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두 명 이상의 구조자가 필요하다.

특히나 전문 인명구조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그 어려움에 빠져보지 않으면

대자연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체감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안섶(안전 서핑)하세요~.'


란 인사를 서퍼들끼리 하게 된다.

서핑도 결국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인지라

실력에 상관없이

큰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파도나 남의 보드에 자기 보드가 파손되는 정도는 다행이다.

코 부러지고

이 부러지고

다리 부러지고

갈비 부러지고...


어느 해에는

강습자가 사망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내가 다칠 수도,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게

서핑이다.


실력 상관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즐겨야 하는 게

서핑의 진정한 시작인 것 같다.


*테트라포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구조물로 사방으로 발이 나와있다. 방파제 등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다. 테트라포드 더미에 빠지면 119가 와도 못 구해 준다. 관련 설명 출처 네이버 클릭

**사망 루머: 내가 들은 얘기는 2018년도에 강습자가 사망했다는 얘기를 서퍼들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뉴스로 남아있지 않고, 사고 지점 등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여름철 물놀이 사고가 워낙 많아 사실 확인 없이 쓰이는 기사도 굉장히 많다. '서퍼가 구했는데 물에 빠졌던 사람이 결국 사망-서퍼 사망'이런 식도 많다. 정확한 기사를 제보해 주시면 '얘기'가 아닌 '뉴스'로 수정하고 싶은 내용이다.



성수기의 서핑 강습/ 하조대 서피비치/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1. 다음 글, 2019년 5월 30일(목) 발행 예정.

2. Cover photo by Eddie Kop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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