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 30%만 일하기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할때 거창한 꿈을 위해, 새출발을 위해 등 많은 꼬리표를 달곤 한다. 하지만 난 스스로가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론적으로 스스로가 지금의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절대로 관리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배운것은 많았다. 팀원을 관리하고, 능력있는 친구들과 깊은 기술적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수 많은 엔지니어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대규모 처리를 위해 클라우드 상에서 여러 시물레이션을 해봤다. 처음에는 개발자가 나 혼자였고, 개발의 모든 틀을 내가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익숙한 자바 백엔드를 버렸고, 처음으로 Firebase라는 것을 써봤다. NoSQL의 세계에 한동안 빠져 있었고, 여러 SaaS를 이용하면 정말 최소한의 개발만으로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래서 여러모로 도전해봤다.
결과는 실패였다. 도전은 곧 하나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나는 jQuery에서 앵귤러로 넘어올때, 그리고 리액트로 넘어올 때 몇개월의 큰 장벽을 거쳤다. 현재의 프로젝트가 어느정도 완성 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념을 따라갔다. 그런데 이는 실상 크나큰 시간을 요구했다. 너무 신기술만 고집하다 보니 좋다는 것은 죄다 가져왔다. 큰 틀에서는 ReactJS, Redux, Thunk, ImmutableJS부터 해서 Firebase, Firestore, Google Kubernetes Engine, Gitlab CI/Runner, 작게는 내부적으로 100여개의 라이브러리가 들어갔고, 작은 컴포넌트 하나도 최신 라이브러리가 나오거나 다른 프로젝트를 보다가 나름 획기적이거나 편한 라이브러리라 생각하면 이를 과감하게 집어넣었다.
문제는 이 틀을 잡는 주체가 나 혼자였다는 점이다. 물론, 3개월 이후에는 팀원들이 계속해서 추가되었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제대로 된 문서화가 없어서 리액트에 어느정도 익숙한 사람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Redux의 Ducks Pattern을 따르는 우리 프로젝트가 Firestore를 쓰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생각해보면 기존 Java/REST 백엔드 시스템을 갖춘 것에서 큰 틀을 따오다 보니 갑자기 추가된 Firestore가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리팩토링 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MongoDB를 쓰다가 Firestore가 좋아보여서 내지는 무료 혹은 저렴하고, 관리하기 편할 듯 해서 선택했다. 물론 기술적이나 개념적으로 틀린 선택은 아니었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나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서다.
그렇다. 나는 풀스택 개발자라는 생각에, 스스로의 능력을 너무나도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게 쉬워보였다. 폼이나 필드 하나 추가하는것, 이미지 바꾸는것, 레이아웃 바꾸는것, 하물며 HTML이나 CSS수정하는 것도, 내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었지만 일단 개발자가 없다는 생각에 모조리 했다. 어느날은 포토샵을 켜서 로고 작업까지 하고 있는 내 모습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점차 나는 풀스택 개발자가 아니라 개판이 되어갔다. 프론트 백엔드 가리지 않고 모조리 했다. 사실 유라임을 하던 시절에도 나는 전부 했으니깐 꼭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히나 내 전문이 아닌 (아니고 싶은) 프론트 앤드를 회사에서 너무나도 지속적으로 요구하자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하물며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는 비판을 내가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의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고, 내겐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이는 나한테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난 정말 내가 만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자체가 함정이었다. 전문성이 없는 것도 모자라 온갖 굳은 일을 모두 하는 사람으로 나 스스로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번일로 내가 깊게 느낀점은, 나는 풀스택 개발자를 하고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SaaS를 써서 백엔드든 프론트든 한쪽을 잡고 가면서 연결하는 것은 모를까. 난 결국 스스로의 영역 조차 잡지 못했고, 몇 년간 우왕좌왕 하고 있는 틈에 스스로가 전문성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건 내 '능력'이라기 보다는 내 '시간'을 100도 모자라 200, 300까지 억지로 쥐어짜면서 난 결국 번아웃(탈진)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8개월, 그간 내가 유라임에서 손을 놓고 있던 시간이다. 조금 더 선명한 미래를 잡겠다고 선택한 결과가 그렇다. 배운것은 정말로 크다. 30%의 인간, 그게 나인 것이다. 누구는 주 40시간, 주 52시간을 말하지만 난 결국 그중에서도 30%밖에 일하지 못하는 능력의 개발자이다. 나도 40시간, 52시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주 90시간을 일했을 때 내가 했던 것들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나의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던 일들이었다.
미국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것은 시간의 절대량이다. 모두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 시간을 놓치면 놓칠수록 미래의 가치가 감소한다는 것. 그리고 시간 대비 하는 일의 질에 따라서도 말이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마치 장바구니에 엄청난 것들을 담아놓고 죄다 구매해서 택배를 뜯어보는 것 같다. 뜯어본 택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비로서 환불을 하는 것처럼. 사전에 구매하지 않으면 될 것들을 나는 무슨 욕심에 그토록 많은 것들을 구입한 것일까.
한창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아마 그럴 것 같다. 나도 몇 권의 미니멀리즘 서적을 보면서 결국 느낀점은, 물건을 줄이고, 욕심을 줄이고, 그러면서 소유욕과 물욕 등을 줄여나가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관리에도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집에 있는 것을 버리기 시작하고, 여백을 만든다. 내 시간에는 과연 여백이 있을까?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 그런 여유를 나는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그 시간조차도 과대포장된 능력으로 채워넣지는 않았을까.
돌아보는 나의 실력. 물건을 늘어놓든 모든 내 실력들을 나열해 보고 싶다. 내가 희열을 느끼는 것과, 어쩌면 괜한 욕심 때문에 가지고 있는 그것들, 그리고 정리하고 싶다. 미니멀리스트 처럼 말이다. 어딘가에는 공백을, 어딘가에는 능력을 끝없이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그렇게 미니멀리즘 개발자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