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딸과 함께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 든 책이다. 제목이 내가 요즘 품고 있는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처럼 다가왔다. 글을 쓴다는 게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요즘 들어 부쩍 무엇을 써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생성형 인공지능이 술술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을 목격한 이래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머릿속으로 고민해가며 글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가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는 책 제목은 무언가 본질에 다가간 듯한 해결책처럼 보였다.
저자 다나카 히로노부는 일본의 유명 광고 회사인 덴츠에서 24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카피라이터. 내가 생각하는 카피라이터는 자본주의라는 풍경을 보며 시를 쓰는, 말하자면 ‘프로 시인’이다. 프로 축구 선수, 프로 게이머… 오늘날 최고의 전문가는 자신의 일로 돈을 버는 ‘프로’들이다. 그런데 ‘프로 시인’이라니. 진짜 직업은 따로 있으니 돈 따위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어줍잖은 글이나 써재끼는 나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글에 통달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시종일관 일본인 작가 특유의 싱거운 농담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런 전개가 어색하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저자가 스스로를 웃음의 소재로 삼을지언정 남을 깔보거나 냉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해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을 향한 따뜻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이 첫 저서이며 자신은 무명 작가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글을 대하는 자세나 철학에서는 글쟁이로서의 비범한 내공이 느껴진다. 대상의 기본부터 파고드는 모습이 그렇다. 저자는 글을 쓰기에 앞서 단어 하나하나의 정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지금 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서 두 가지 단어에 대한 정의가 등장한다. 먼저, 저자는 수필(에세이)을 이렇게 정의한다.
수필: 사상(事象)과 심상(心象)이 교차하는 곳에 생긴 문장.
사상이란 자신이 보고 듣고 읽어서 경험한 세상의 일이다. 심상은 그러한 사상을 접한 후에 글을 쓰고 싶게 하는 마음이다. 즉, 에세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경험했는지와 그로부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모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경험한 것들만 주루룩 나열한다거나, 밑도 끝도 없이 기분만 써 내려간다면 그것은 수필로서 실격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본에 대한 강조는 계속 이어진다. SNS에 올리는 짧은 글조차도 기승전결을 갖추라는 내용이 그렇다. 글의 맥락을 강조하는 부분이나, 글쓰기를 위한 자료 조사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부분도 기본에 대한 집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특히, 자료 조사를 위한 도서관 활용법에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의 도서관뿐 아니라 한국 도서관에 대한 소개도 부연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한국어 번역본을 준비하면서 보강한 내용일 텐데, 그것이 저자의 판단이든 혹은 국내 출판사의 제안이든 한국의 독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라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책에는 작가의 추천 도서 목록도 실려 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라는 부제와 함께 10권의 책이 소개되는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처럼 귀에 익은 작품부터 한국인인 나에게는 생소한 일본인 작가의 책들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들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라 글쓰기를 위해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강조한다. 그 둘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즈니스 실용서를 읽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에 미루어 보건대 글쓰기 기술을 다룬 게 아닌 읽기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책이란 의미인 듯하다.
저자는 나 같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서 실현하고 싶어하는 목표, 이를테면 글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의 부질없음에 대해서도 짚어준다. 저자는 글을 써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얻는 데 신경 쓰기보다는 그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때로는 유일한 독자일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두 번째 정의가 등장한다.
취미: 수단이 목적으로 바뀐 것.
저자가 취미의 정의를 언급한 것은 단어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취미라는 단어를 예로 든 것은 그 정의가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글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겨서는 글쓰기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유명세나 경제적 이익 같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움, 즉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이면 이미 썼던 주제에 대해서 반복해서 쓰는 것도 주저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 또한 글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보는 저자의 관점과 부합한다.
저자는 이 책이 글쓰기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책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아무래도 저자는 글쓰기를 실용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데 다소 거부감을 가진 듯싶다. 책 곳곳에 유용한 글쓰기 팁이 포함되어 있지만,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의 핵심은 글쓰기 기술은 아니다. 대신, 글쓰기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더 깊은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이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큰 영감을 얻었던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백미는 11장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쓰지 마라’이다. 이미 남이 썼던 글과 다름없는 글, 내가 쓰지 않아도 남이 쓸 만한 글은 쓰지 말라는 의미다. 그런 글은 아무도 읽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즐겁지 않을 것이니까. 이 부분은 겨우 4페이지밖에 되지 않은 적은 분량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글에 갖고 있던 가장 큰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되었다.
덕분에 요근래 글쓰기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시도해 보던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을 정리했다. 일례로, 의학 상담 코너도 짧은 시험 운영 기간을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의학 상담은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글을 쓰는 방법을 고민하던 것도 그만두었다. 그런 글은 인공지능을 좀 다룰 줄 안다면 내가 아닌 누구라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만의 경험, 고민, 주장, 해법이 담겨 있지 않은 글이니 말이다.
나만 할 수 있는 일. 나만 만들 수 있는 것. 나만 쓸 수 있는 글. 그걸 통해서 대체 불가능의 존재가 되기. 그것이야말로 내가 단 한 번 주어진 이 삶에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비단 글쓰기에만 해당되는 원칙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삶 전체에 적용해도 좋을 만하다.
우연히 접한 책이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둘 중요한 배움을 얻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어진다. 글을 쓰고 싶은데, 책을 내고 싶은데, 대중 앞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다나카 히로노부의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를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b%82%b4%ea%b0%80-%ec%9d%bd%ea%b3%a0-%ec%8b%b6%ec%9d%80-%ea%b1%b8-%ec%93%b0%eb%a9%b4-%eb%90%9c%eb%8b%a4/ |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