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소설책과 친하지 않았다. 글 읽는 건 누구보다 좋아했다. 과자를 먹을 때도 봉투 뒤에 적힌 걸 읽으며 뭐 재미난 거 없나 살펴볼 정도였으니. 다만 책을 읽을 때는 주로 과학이나 사회 현상 쪽으로 관심이 치우쳐 있었다. 똑같이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인 책인데도 소설에는 왠지 손이 선뜻 가지 않았다. 아마도 ‘소설은 허구’라는 인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뭐 하러 시간을 써 가며 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소설이라는 장르를 다시 보게 되었다. 40대가 되니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왜 소설에 인생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건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요즘은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한 권 한 권 마음 가는 대로, 그중에서도 세월의 검증을 거친 고전을 위주로 소설을 읽고 있다. 마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향하는 느낌으로. 그렇게 이번에 선택한 책이 『싯다르타』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싯다르타』라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므로 이 글에서는 저자 소개나 줄거리 요약을 생략하겠다. 물론 유명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 내용을 안다는 말은 아니다. 나부터도 바로 얼마 전까지는 책 제목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잠깐만 검색해서 한 페이지 가득 나오는 내용들을 내가 여기서 굳이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 대신 내 관점에서 느낀 점을 풀어가 보겠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깊이 빠져들었던 부분은 싯다르타와 아들 싯다르타가 갈등하는 부분이다. 그 장면에서 지금 나와 딸의 관계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싯다르타가 자기 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딸아이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살면서 알고 배운 것들을 전해 주고 더 나은 환경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부모로서의 마땅한 도리이자 역할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싯다르타와 그의 아들이 겪는 갈등을 제삼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동안, 딸아이를 향한 과도한 관심과 보호는 결코 이 아이를 위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겪으면서 단단해지고 성장했다. 딸아이도 충분히 스스로 해낼 수 있다. 싯다르타는 말한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네. 지혜를 발견하고 지혜롭게 살며 지혜를 품고 다닐 수 있지만, 그 지혜를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다네.”(“Wissen kann man mitteilen, Weisheit aber nicht.”) 내가 이 아이를 가르쳐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다. 결국은 다 자기만의 삶이 있고 그 속에서 겪게 되는 뜻하지 않은 시련 또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것이다. 아니, 성장에 필요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자체가 남이 결코 대신해 줄 수 없는 여정이고 곧 삶이다. 아, 이제야 그걸 알게 되다니.
깨달음을 향한 싯다르타의 여정을 보면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생각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확인한다. 명예로운 브라만으로서의 삶을 떠나서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떠돌이 사문으로 살다가 다시 속세의 일부가 되었다가, 뱃사공이 되어 결국 깨달음에 이르는 싯다르타의 인생. 그 여정에서 그가 처음부터 의도한 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흘러간 것이고 그렇게 살아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내가 큰 탈 없이 살아온 것은 수많은 우연의 결과였다. 지금까지 나의 삶, 그리고 나름의 성취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냉정히 살펴보면 그것들 가운데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진 것들이 많다. 무언가를 목표로 했다고 그것을 반드시 이룬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꼭 나누고 싶은 한 가지. 그 어떤 일도 긴 시간을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갈등도 환희도, 심지어는 싯다르타가 그토록 바랐던 깨달음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힌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봤다면 알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 속에 부유하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 먼지 위에서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는 것이고. 아주 작은 공간에서의 극히 짧은 순간.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더없이 귀한 우리의 삶이다.
나의 기준으로 딸아이를 바라보지 말자. 목표라는 허상에 집착하지 말자. 그저 주어진 순간순간에 감사하며 살아가자. 이 세 가지가 내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나서 느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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