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년간 이 블로그에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쓴 서평들을 올렸다. 아니, ‘힘을 빌렸다’는 말에는 그마저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미련이 남아 있다. 실상은 프롬프트를 미리 만들어 놓고,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 서평, 기존에 세상에 나와 있던 책에 관한 자료들을 주재료로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양념처럼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그렇게 순식간에 만들어낸 글을 조금만 손보아 내 글인 것처럼 올렸다.
나름의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책 한 권을 다 읽은 뒤 그다음 읽고 싶은 책이 있지만, 아직 서평을 완성하지 못해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서평을 빨리 해치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에서 얻은 배움이나 인상적인 내용들을 짧게 정리해 그것을 서평으로 인공지능에게 작성토록 하면, 직접 글을 쓰느라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데 지체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 켠에 허무함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직접 쓰지도 않은 글을 쌓는 일이 기록으로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이건 처음 내가 서평을 쓰고자 했던 이유였던 나의 생각을 담는다는 것에도 맞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집중한다는 인생 원칙에도 위배됐다.
하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인공지능에게 글을 맡기는 편리함을 맛본 이상, 직접 글을 구성하고 적절한 표현을 떠올리며 그걸 하나하나 키보드로 입력하던 때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이번에는 내가 직접 써봐야지’라고 했다가도, 정작 서평을 올려보고 싶은 책이 정해지면 ‘이번만 인공지능의 힘을 빌리자’라고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이번 딱 한 번만.’ 세상 모든 중독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그 지독한 주문이 어느새 나의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건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내 몸과 마음을 남들이 만든 것에 볼모로 잡힌 채로 산다는 말이니까. 그래서 뭔가 급진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불살라야 했다. 결국 그동안 인공지능으로 작성했던 서평 50여 개를 삭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여기 공개된 곳에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밝힌 이상, 지켜보는 눈들도 있는데 다시는 인공지능으로 손쉽게 서평을 쓰는 일은 하지 않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음 차례로 읽어볼 책들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일을 반추해볼 수 있는 책이었으면 했다. 그때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이 말하는 편안함이 왠지 모르게 내가 인공지능 글쓰기에 빠져 지내며 익숙해져 버린 그 관성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저자 마이클 이스터(Michael Easter)는 두 명의 동료와 알래스카로 순록 사냥을 떠난다. 33일간 이어진 여정 속에서 저자는 현대 사회가 편리함을 좇으며 잃어버린 것들을 재발견한다. 예컨대, 오지에서 불편하게 식사하며 현대인의 과도한 식탐을 돌아보고, 순록 고기를 메고 오면서 ‘짐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중요한 특성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저자의 생생한 여정 중간중간 심도 있는 이야기를 오가는 구성이 매우 참신하고 영리한 시도라고 느껴졌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라고 하던데, 역시 프로가 다르긴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책 내용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단연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와 동료들은 알래스카 오지에서 순록 떼들을 추적한 끝에 드디어 사냥감으로 한 마리를 정하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그 순간 저자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부탄을 여행했던 이야기로 넘어간다. 부탄의 장관부터 종교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부탄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음에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그 해답은 한마디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죽음에 관하여 생각을 많이 한다. 언젠가 이 삶이 끝난다는 틀림없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직위, 인기, 재산 같은 속세의 것들은 부질없게 느껴진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힘일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 죽음에 관하여 생각해오던 것들을 다른 사람의 언어로 접하며 더욱 명료해졌다. 덕분에 읽는 내내 작가와 나의 생각이 공명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내가 애초에 이 책을 읽고자 했던 동기였던 인공지능이 불러온 존재론적 위기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영어 원서 『The Comfort Crisis』가 출간된 시기는 2021년 5월인데, 당시는 ChatGPT를 필두로 생성형 인공지능 붐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만약 책 출간일이 3년만 늦었어도 저자는 분명히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들만으로도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충분한 힌트는 얻었다.
앞으로는 서평 쓰기를 인공지능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글쓰기가 약속하는 편안함에 취하지 않고, 직접 고민하고 글 쓰는 일을 내려놓지 않겠다. 나의 생각을 담는 글을 쓰는 데 따라오는 고통이야말로 나를 인간이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 글의 구성이 조악하고 어휘들은 빈약하며 메시지마저 모호하더라도, 그래도 그 글을 내가 썼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나머지는 그저 곁가지일 뿐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여정이 곧 보상’이라는 말을 했다.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적절한 어휘를 골라가며 이전까지 세상에 없던 내용을 써나가는 과정 그 자체는 인공지능이 선사하는 편리함이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이 블로그는 내가 직접 쓴 글들로 채워질 것이다. 글쓰기에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해준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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