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하게 밥 한번 사겠다는 구실로 만났었기 때문에, 그럴싸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은 아니었다. 요즘 많이들 먹는 두툼한 삼겹살은 절대 아니었고, 그냥 대패 삼겹살보다는 조금 더 두꺼운 냉동 삼겹살을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삼겹살의 맛이 그렇게 중요한 저녁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어색함은 조금 떨쳐졌고, 둘 다 술은 못하기에 그냥 맥주 한잔으로 ‘짠’만 했었기에 소위들 말하는 알코올에 기댈 것도 없었다. 너무나 멀쩡한 맨 정신으로 2차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정말 별다른 얘기들은 없었던 것 같은 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얘기는 쉴 새 없이 했었고, 간간이 그는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떴었고, 그때마다 한 숨 돌리며 괜히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켰던 것만 얼핏 떠오른다.
어느덧 카페 문도 닫을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더 이상 갈 수 있을 곳은 없었다. 역시 술은 잘하지 못했기에 딱히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아마도 역삼과 선릉 중간 어딘가에서 시작을 했던 것 같고, 선정릉 방향으로 주택가 사이를 따라 꼬불거리는 동선을 정처 없이 걸었다. 7월 중순에 이렇게 걷겠다는 결정을 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꺼낼 수 있는 얘기들은 모두 꺼낸 것 같고, 다시금 조금 어색한 시간이 찾아왔을 때에는 그냥 말없이 터벅터벅 걸으며 길가의 불빛과 달빛 그 중간의 어스름함에 기대어 옆모습만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던 중 그 고요함을 깨며 그가 질문했다. “강아지 좋아해요?”
그 늦은 시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 나온 어떤 중년 부부가 마침 옆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 강아지들이 눈에 들어오자 말을 뱉어본 것 같다. 아 네 좋아하죠,라고 하였던가 굉장히 좋아하죠라고 하였던가. 여하튼 제법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척 대답하려고 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참 모르겠고, 사실은 굳이 꺼내보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 순간 왜 그렇게 가슴이 뛰었는지 모르겠다. 어색함을 깨려고 노력했던 모습이었던가,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던 무언가에서 소재를 찾아내었던 센스였던가, 혹은 그 질문을 하는 말투에서 이상하리만큼 솔직하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 보다, 그냥 그 사람의 모든 게 다 좋아 보이는 마음이 앞섰던 게 더 먼저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그냥 평범한 질문이었음에도, 순간 아 이 사람이 좋아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으니 그거야 말로 한여름밤에 불현듯 스며든 감정이었다.
어디서 봤던 문구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도 어떤 소설 아니면 만화였을 것 같다. 만약 제삼자가 그 순간 나를 보았다면 아마 그 순간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소 진득한 습기가 몸을 감싸고, 식었지만 여전히 따끈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여름밤에 길가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을 볼 때면 가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꼭 그리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모든 건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인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여름밤의 기억이 만들어진다면, 참 별것들도 아니었다며 웃음 지어볼 수도 있을 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