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리뷰
※ 2019년 이 드라마가 방영했을 시점에 쓴 글을 다듬었습니다. 역시나 저의 한결같은 드라마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꽃보다 남자>부터 시작해서 <그놈은 멋있었다>와 같은 청춘 학원 ‘로맨스 판타지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이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라는 대사가 나오는 배경이라기에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보기 시작했다. 1화를 보다가 생각했던 내용만이 아닌 것 같아 이게 뭐지 싶은 마음에 공식 홈페이지와 인물 설정을 뒤져보았다. 사실 처음에는 현실 속 사람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 빙의한 빙의물 드라마라고 생각해서 콧김을 퐁퐁 뿜으며 기대를 했었다.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되길 꿈꾼다. 하지만 그런 인생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잡지 표지 모델을 했다는 우리 학교 캠퍼스 여신을 보며, 면접관 앞에서 유창한 피칭을 하는 옆자리 응시생을 보며, 경쟁자를 물리치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사람을 보며,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은
시시때때로 밀려온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는 작은 부품이 아닐까?
여기, 평범한 열여덞 소녀 은단오가 있다.
그리고 그런 단오보다도 더 보잘것없는 소년이 있다.
스포일러 없이 짧게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여주인공 ‘은단오’는 어느 날 갑자기 본인이 어떤 만화 세계 속의 조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의 캐릭터적 설정과 인간관계,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 그 세계의 주인공들인 ‘여주다’와 ‘오남주’의 사랑 이야기를 위해 곁들여지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각성한 은단오는 조연보다도 못한 엑스트라인 반의 13번을 만나게 되어 ‘하루’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작가가 설정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바꾸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보고자 시도를 하게 된다.
우선 이 드라마가 기대했던 내용이 아님에도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보기 시작한 요인은, 은단오와 친구들이 속한 세계관이 바로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청춘 학원 로맨스 판타지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는데 이 은단오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설정값을 바꾸고자 하는 부분들이 이 ‘클리셰’적인 상황을 조금씩 비틀거나 바라보는 입장에 서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관 주인공인 ‘오남주’가 ‘여주다’와 부딪혀서 옷이 더럽혀지는 첫 만남이 이루어질 때, 이를 빌미로 “앞으로 내 세탁비 갚을 동안 따라다니며 심부름해”라고 전형적인 뻘 대사를 날릴 때, 은단오는 혀를 내두르며 그 광경을 옆에서 바라본다. 때론 독자와 시청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어쩜 이렇게 공식을 벗어나지 않냐"며 발을 구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 내가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은단오의 아등바등 에 우리네의 모습(혹은, 적어도 나 자신)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겁날 것 없고, 세상만사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스팟라잇이 비치는 중심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만 서있는 것 같고 내가 그리던 삶의 모습이 나 아닌 누군가를 통해 이뤄지는 것을 나 자신은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선남선녀의 사랑 이야기도, 직장에서 멋들어진 업무 처리와 고평가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계 곳곳을 탐험하는 여행도, 단짝 같은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것도, 모두 나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옆에서 듣고 있는 조연, 혹은 그보다 못한 엑스트라인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과 우울감이 삶에 대한 기대감보다 커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주인공 은단오는 계속 부딪힌다. 작가가 부여한 설정값과 인생을 바꿔보겠다며, 매 스토리의 순간마다 세계관의 주인공들 위주가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우리의 삶도 이런 투쟁과 실패의 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삶 속의 항상 모든 시도들이 성공할리는 없다. 하지만 성공하지 않았다고 하여 나의 이야기가 쓰이지 않는 게 아니다. 유난히도 슬픈 이별을 했어도, 시험에서 떨어졌어도, 회사 프로젝트가 엎어져도 이런 안타까운 일들 자체가 나의 존재 가치를 결정짓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있는 나 자신이 바로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비단 행복과 성공만이 이야기로 쓰이지 않듯, 다양한 형태의 슬픔과 좌절도 나의 이야기가 되고 여기서의 감정들과 진행 과정 속의 이야기들은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되기 충분하다.
이제는 기억도 까마득한 불문학도 시절의 실존주의 문학 수업을 더듬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부조리한 삶 속에 던져진 게 맞으며 이 부조리함에 반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생을 살아가는 것이라 기억한다. 인생이 천지개벽할 것 같이 성인이 되었지만 너무 뭣도 없는 나의 모습에 화를 내며 생의 의미란 무엇일까란 허무함에 빠졌던 20대 초반에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였다. 허무함을 이겨내는 방법이 바로 살아가는 그 자체라는 것이 역설적이면서도 차라리 납득하기 쉬웠던 것 같다. 생이 덧없으니까 굳이 힘을 내며 살아갈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보다는, 덧없는 생이라는 자체가 짜증 나니까 어디 한번 본 때를 보여주마! 같은 조금 더 반항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더 적극적으로 나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너무 지쳐버릴 때까지 힘을 주는 것은 조금 다른 얘기겠지만. 여하튼, 지치지 않고 계속 작가가 정해놓은 캐릭터성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인생으로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은단오의 모습은 바로 내가 생각하던 생에 대한 반항적 태도라 생각한다.
이런 철학적인 고찰을 뒤로한 채 스포일러 빼고 캐릭터들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 짚어 보고자 한다. 일단 김혜윤의 은단오는 깜찍, 발랄, 유쾌 그 자체로 너무나 만족스러운 긍정 파워 여자 주인공의 모습이었지만(그저 사랑), 메인 남자 주인공 로운의 '하루'와 서브 남자 주인공 이재욱의 '백경'의 캐릭터가 뭔가를 보여줄 듯하다가 끝난 점들이 있었다. 하루는 스토리를 직접 헤쳐나가는 능동적인 모습보다는 여자 주인공 단오에게 끌려다니는, 혹은 좋게 보자면 지지를 해주는 듬직한 존재감만 보여줬다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더 은단오라는 캐릭터가 전체적인 스토리를 끌고 가는 임무를 가지고 있기에 그 옆에서 존재하는 자체가 큰 역할을 다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듬직한 등으로 여자 주인공을 받쳐줄 수 있는(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등으로 사람을 받아낸다.) 신체적 스펙에서 이미 만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후회 남주의 전형적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던 백경은, 후회까지 가는 못된 짓을 쌓는 것에 좀 더 비중이 쏠렸던 것 같다. 대체 언제 후회하며 질척이는 모습을 보여줄 건가, 라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기대했지만 약간 못된 짓 95% 후회 5%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 게 못내 아쉬웠다.
의외의 소재였기에 더욱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단순한 학원 청춘 로맨스물을 넘어서서 존재의 의의나 삶의 가치적인 부분까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사실 콘텐츠 중에 어려운 주제 따로, 가벼운 이야기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얼마나 쉽고 자연스럽게 진입장벽을 낮춰서 생각할 부분을 던져줄 수 있는지도 결국 재미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또 어떠한 일상의 스토리를 꾸려서 재미와 감동을 잡아볼지 구상해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하루는 어디에 있기에 여태 발견을 못하고 있는 것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