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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u Byun Jan 26. 2020

독일에도 명절 스트레스가 있을까

같은 빡셈 다른 느낌

또다시 명절이다.

여전히 명절이 되면 인터넷 포털 검색어로 ‘명절 증후군’이 상위에 오른다. 2년 전쯤 부터는 웹툰 ‘며느라기’의 명절 스트레스 에피소드가 뭇 한국 여성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 나 역시 한국에선 명절을 좋아하지 않는 며느리에 속했다. 우리 시댁은 제사를 지내지 않고 대가족이 모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는 길 오는 길은 늘 피곤했다.

시댁은 충남 보령, 친정은 부산이고 우리는 서울에 살았다. 남편의 회사 특성상 연휴엔 고작 2-3일 쉬는데 보령-부산-서울을 오가는 숨 막히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고속도로에 갇혀 있을 모습을 생각하면 명절 일주일 전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이런 명절을 해마다 두 번씩이나 치러야 하다니. 구정이나 추석, 둘 중에 하나는 없어지면 좋겠어! 하다보면 어느새 어버이날이다.






독일은 크리스마스가 친척이 모두 모이는 가장 큰 명절이다. 독일 전역에서는 10월 말부터 크리스마스를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덕분에 11월 말에 독일로 이사 온 우리는 흥겨운 연말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11월 말이 되면 그 화려함은 최고조에 달한다. 도시는 매일 반짝이고 각종 가게에는 캐럴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 가족은 모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고, 지인 집에서 독일 정통 크리스마스 식사를 대접받기도 했다.  


그런데 독일 며느리들도 내가 느낀 것처럼 연말과 크리스마스를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할까?


대답은 ‘Nein(그렇지 않다)’이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한 달 내내 집안을 단장하고, 연휴 동안 먼 곳에서 온 가족들과 몇 날 며칠 함께 지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가장 중요한 명절 준비가 있는데 바로 ‘모든 가족들’의 선물을 준비하는 일이다.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그냥 하루가 아니다. 먼저 12월 6일 성 니콜라우스 데이(독일식 산타 할아버지)에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산다. 자녀는 물론이고 이웃 아이들, 대부 대모일 경우(독일은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분 대부 대모를 지정한다) 그 아이들의 선물까지 준비한다. 25일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 양가 부모님, 형제, 친척의 선물을 준비한다.


선물은 단순히 유명한 브랜드, 값비싼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한 선물을 고른다. 대충 사지 않는다. 독일인 시아버지를 둔 지인은 평소에 그림을 그리고 싶단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시아버지가 그걸 기억했다가 크리스마스에 이젤을 선물했다고 한다. 쏘 스윗!


어쨌든, 한두 사람도 아니고 몇 달에 걸쳐 가족과 이웃의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니. 그것도 정성스럽게! 어릴적 크리스마스 때마다 시청한 영화 ‘나 홀로 집에’에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 주위에 선물이 엄청 쌓여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게 그저 영화 속 연출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 지인의 집에 설치된 2019년 크리스마스 트리와 가족들에게 줄 레알 선물들.



한국 명절 요리처럼 손이 많이 가진 않지만, 독일 크리스마스 연휴의 식사 준비 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한국에선 여성들의 ‘명절 요리 파업’으로 명절 당일을 제외하곤 외식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여전히 독일은 오로지 home-made이다. 이유는 24-26일까지 거의 모든 식당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집에서 해 먹어야 한다. 최소 아홉 끼의 식사를 미리 준비하는 작업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크리스마스에 꼭 해 먹어야 하는 다양한 전통 과자들까지...



연휴가 끝났다. 자, 쇼핑하러 가자!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12월 27일. 독일 최대 세일이 시작된다. 모든 가게가 30-70% 세일에 들어간다. 집 근처에 있는 Breuninger라는 고급 의류 백화점은 세일이 잘 없고 보통 손님이 적다. 주말에도 너무 한산해서 둘러보기 민망할 정도다. 그런데 12월 27일에 가보니 난리가 났다. 세일 폭이 크기도 했지만 모두들 작정하고 쇼핑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H&M이나 Mango, COS 등 SPA 브랜드에는 아이 옷을 사기 위한 엄마들로 가득했다. 하마터면 나는 1년 치 옷을 다 살뻔했다. 이외에도 주방, 가전, 가구, 문구, 화장품, 의약품 등 모든 분야에서 온오프라인 세일을 진행한다. 블랙 프라이데이나 크리스마스보다 이 시즌에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마치 크리스마스 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를 이 세일 기간에 모두 풀어 버리는 듯했다. (독일에서 쇼핑하려면 꼭 이 시즌에 오시길!)    




그래도 독일 사람들이 이 까다로운 명절을 기피하지 않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전통을 지키는 건 연휴 후 펼쳐지는 폭탄 세일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명절 문화가 있다.


먼저, 공식적으로 가족과 만나는 명절은 1년에 크리스마스 한 번이다. 부활절도 중요한 절기이지만 이때는 대부분 여행을 떠난다. 또 독일은 크리스마스에 무조건 시댁이나 친정으로 찾아가야 하는 문화가 아니다. 매년 모임 장소를 돌아가며 정한다. 작년에는 시부모님, 올해는 시누이네, 내년엔 우리 집.


시어머니 주도로 집안 여자들이 명절일을 담당하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집주인만 일한다. 만약 시부모님 집에서 모임을 한다고 하면, 며느리가 아니라 내 집에 온 손님이라 여기기 때문에 며느리가 일을 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강제가 아니다. 상황과 사정에 맞게 편하게 움직인다.






독일에서 첫 크리스마스 명절을 보내며 되레 가장 부러웠던 문화는 독일인들이 힘들어 한다는 ‘식구들의 선물 준비하기’다. 특히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시아버지의 선물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결혼 후 8년 동안 한 번도 시아버지에게서 선물을 받아본적 없는 나로선 감동과 동시에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선물이 ‘이젤’이라니. 이외에도 tea를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해 시할머니가 직접 수 놓아 선물 한 찻잔 받침, 약간 손발이 오그라들 순 있지만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담긴 크리스마스 편지들.


서로의 관심사와 필요를 알고 그에 맞는 선물을 한다. 그리고 마음을 담아 전한다. 이런 선물을 받는 순간 명절 스트레스가 싹 달아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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