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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홉_가족

by 길땡땡

2025년 2월 5일 오후 4시 16분.

기다리던 딸아이가 세상에 첫 울음을 울렸다.

20시간 가까이 진통이 이어지다가 결국 긴급 수술을 해서 태어난, 난산이었다.


기분? 글쎄.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아니, 내 말주변으로 감히 그 순간의 감정들을 다 주워담을 수 있을까. 아내가 극도로 고통스러워하던 순간, 수술이 끝난 아이가 작디작은 투명한 상자에 담겨 악을쓰며 나를 마주하던 순간, 수술이 끝난 아내가 여직 마취에 취한채 수술대에 실려 병실로 들어오던 순간, 신생아실에서 기본적인 처치가 끝나고 내 오른손에 안기던 순간, 그 기분들을 과연 뭐라고 설명해야만 할까. 탄생의 기쁨? 순산의 안도? 아내를 향한 미안함? 몇가지 단어의 나열로 설명가능한 감정은 결코 아니었음은, 지금에 와서 다시 뒤돌아 되짚어 보아도 그러했음이 분명하다.


예정일을 지나 퇴근 후 집에서 개인정비를 마치고 병원에 들어간 전날 저녁 8시 경부터, 자연스레 시작된 출산의 전 과정에서 정말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유도분만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입원 직후 저녁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진통엔 다행이다 싶었고, 분만실에서 아내 옆에 앉아 밤을 지새우며 새벽 2시가 넘어 자궁경부가 8cm이상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오전 중에는 분만이 끝나겠구나 라는 기대를 했었다. 꼬박 스무 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 앞에서 아내는 힘겨워 했고, 그 옆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하고 무기력했다. 결국 심해진 진통을 참지 못하고 아내가 수술을 요청 했을 때, 보호자에게 요구되는 각종 수술 동의서에 싸인을 하는게 결국 유의미한 나의 역할다운 역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나쳐간 수 많은 생각들과 감정들 속에서, 그 중에서도 딱 두가지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하나는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실려온 아내를 보던 내 모습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렇게 태어난 자그마한 딸을 처음으로 내 품에 안았을 때이다. 병실에 무사히(?) 실려온 아내를 보면서 그 어떤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강하게 든 생각은 아내의 깊은 노고에 대한 감사이다. 비로소 겪어보고나서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출산은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혼자 하는 것이다. 속이 울렁거림을 참아가며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있었던 것도, 잠자리가 불편하여 늘 뒤척인 것도,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참으며 버티고 버티다 수술을 하게 되는 것도, 수술이 끝나고 자연분만을 하지 못한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재활을 위해 또 고통을 참아내야하는 것도 모두 아내다. 그 과정들에서 내가 옆에서 아내를 도왔다 하더라도, 그 노고에 나를 섞어 희석시키고 싶지 않다. 바다가 비에 젖을 수는 없지 않는가.


또 딸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아마도 나에겐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 싶다. 그 작디작은 몸을 내 오른팔에 조심스레 뉘였을 때 그 작고 작은 생명체의 소중함을, 그 와중에 나를 닮은 모습을 찾아가며 눈코입 모두에 사랑함을, 앞으로 우리가 가족으로서 함께할 날들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강한 기대감을, 이루 말할 수 있을까. 이어서 문득 든 생각은 "장인어른도 내 아내를 처음 안았을때 이런 감정이었을까? 내게는 우주가, 아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것만 같은데. 아내를 그만큼 더 소중히 대해야겠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저 어릴적부터 이기적이고 냉정해 아직도 데면데면한 나의 아버지가 연이어 생각 났다.


"아버지도 처음 날 안았을 때는 이런 기분이었을텐데."


이제 50일이 넘어간 우리 딸 도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서 한껏 칭얼대다 잠을 자고 있다. 끊임없이 칭얼대는 모습이 정말 가끔은 밉상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도하야. 엄마가 제일 고생했다지만, 너도 정말 고생 많았어. 이렇게 아빠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아빠는 고생 안한만큼 앞으로 우리가족을 많이 사랑하고 사랑할게. 당연히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완벽할 수도 없고 이리저리 헤매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이런 기대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아빠라도 계속 좋아해줬음 좋겠다.


소중한 우리가족. 나의 딸. 나의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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