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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여덟_잣대

by 길땡땡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에요?”



생면부지의 사람을 새로이 만날 기회가 있을 때, 그 사람이 나랑 같은 부류의(대충이라도 사고방식은 비슷한)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만의 리트머스 종이로 상대를 살짝 찍어보며 시험(?)해본다고 생각한다. 남여가 만나게 되는 소개팅 자리 뿐만 아니라, 성별과 관계없이 그냥 업무 중에도 짬이나서 소소한 스몰토크를 하며 사담을 나누게 되는 자리도 그렇다. 그래서 상대가 나랑 같은 색으로 변하는지, 적어도 그 색이 발하는 결이라도 비슷은 한지 살펴본다. 그때 내가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주로 “영화”다. 책은 10여년 전부터 이어져온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도록 독서를 그나마 꾸준히 하는 사람을 꽤나 찾아보기 어려워져서 보편성이 부족하고, 노래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해서(나도 그렇다.) 보편성이 과다해 써먹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가 아주 적절한데,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아도 극도로 싫어해 전혀 보지않는 사람은 드물며, 2~3시간 남짓의 상영시간으로 드라마처럼 여러편을 나눠 긴시간 동안 보지 않아도 되니, 살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이따금씩 추천되기도 쉬운 탓이 있다. 래퍼 스윙스의 ‘돈까스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는 말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느낌이랄까. 쨋든 영화는 지금까지의 나에게 꽤나 유용한 도구였다.


상대의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나도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 예를들면 “헤어질 결심“(난 이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아내 몰래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것도 아니고, 상대의 불륜파워게이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겠는 내 인생영화다. 오해하지는 마시라.)이라던가, “다크 나이트”라던가, “파이란“, ”아는여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터널 선샤인” 등등 중 하나라면, 자동으로 ‘아 이사람 뭘 좀 아네. 영화 이야기하면 재밌겠다. 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공통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를 하나 가지고 있다는게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 얼마나 심적으로 든든해지는지, 그 이후로는 질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되는데,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좋아요? 조커의 조커가 좋아요?”, “파이란에서 최민식 마지막에 끌려나갈때 느낌이 이상하죠.”, “분명 세상엔 이터널 선샤인같은 사랑이 있을거라고, 저도 그런 사랑을 꼭 하고싶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등이 그렇다. 반대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킬링타임을 목적으로 액션 혹은 로코물 등의 특정한 한 장르만 좋아한다고 하면 순식간에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미로 모락모락 나던 호기심의 뜨거운 김이 팍 식는다. 눈 앞의 상대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거기서 이미 나와는 리트머스 종이의 발하는 색깔의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버린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만날 수록, 경험이 쌓여갈 수록, 서서히 이런 도구들을 점점 그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1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회사에서 새로운 조직에 배정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됐고, 또 업무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새로운 조직에는 기존에 업무상 알던 사람들도 속해 있었으며, 초면인 사람들은 더욱 많았다. 심지어 기존에 알던 사람들은 과거 나에게 별로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는데, 다른 자리에서 과거에 만났을때 업무적으로 비협조적이라고 느꼈던 사람, 항상 무언가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매사에 부정적이라고 느꼈던 사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 달갑지 않던 사람(X가지가 없는)이 모두 같은 조직에 속해 있었다. 새로운 조직으로 거처를 옮기면 그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사실도 미리 알고 있어, 마음 속 한구석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해당 조직에서 담당하게 될 업무가 조금은 기대되서 선뜻 자리를 옮겼다. 당연히 새 조직의 인원중에 나와 영화 취향이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과 살을 맞붙이고 비교적 오랜시간에 거쳐 "사람을 알아간다"는 일이, 결코 어떤 잣대 하나만으로는 판단될 수 없음을, 어떤 잣대가 있을수록 나의 삶의 경험치와 안목과 경험도 줄어드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새로운 조직에서 새로이 혹은 다시 만나게 된 사람들을, 이제는 당연스레 모두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음악”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책“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겐 첫만남 자리에서의 ”젓가락질“일수도 (DOC를 아시나요?) 있겠다. 그렇게 나는 타인에 대한 판단기준을 스스로 세워놓고 사람들을 채에 거르듯 걸러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얼마나 스스로를 한정 짓는 일인지도 모른채. 영화취향은 그냥 영화취향일뿐이고, 젓가락질은 그냥 젓가락질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더 넓은세계를 외면한 채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싶은 것만 믿겠다는 말 밖에는 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을 단순히 도덕적 잣대로 ”불륜 영화“라고 규정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잣대는 그저 선입견으로서 작동할 뿐이다.



무엇보다 나야 말로 젓가락질이 엉망이지 않은가? 밥은 잘만 쳐 먹으면서.(DOC 형들 말이 맞았다.) 그리고 이제 함께할 우리 딸의 시선에서, 언젠가는 “사랑의 하츄핑”도 인생영화로서 받아들여야만 하지않겠나. 아빠로서 그리고 사람대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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