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은 후 내 삶에 생긴 변화는 너무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의미한 변화가 하나 있다. 나의 세상을 보는 눈과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의 주체는 모두 '나'였다. 무언가를 배우고, 돈을 벌고, 번 돈을 쓰고, 여러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전부가 나를 주체로, 나를 위해 움직였다. 나의 세상. 나를 둘러싼 세상. 내가 겪는 세상.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나에게 집중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아기를 낳고 세상을 바라보자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위한 세상이 조금씩 변해갔다. 나의 온 신경이 온통 아기에게로 집중되며 '나'보다는 '아기를 위한' 일들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자연스레 나를 위해 했던 행동들과 시간들 대신 나의 아기를 위한 시간이 채워졌다. '나'를 주체로 한 세상에서 '너'를 위한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온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일구어 온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기분도 들었다. 아기를 낳은 여자의 인생은 180도로 뒤바뀐다더니,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고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절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제 내가 살아내야 할 '너를 위한 세상'이 문제였다. 내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네가 배워야 하고, 내가 행동하는 게 아니라 네가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쌓아 갈 너의 시간이 충분히 기쁘고, 온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마음 한편에 자리한다. 자라며 겪을 여러 가지 일들 중 나쁜 것들은 모두 도려내고 그저 너의 앞길에 꽃을 깔아 여린 발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낯설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고 타인의 안위를 먼저 위하게 된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런데 그게 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낳은 가장 어리고 여린 생명체, 내 아기를 위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나의 아기뿐만 아니라 다른 아기들에 대해서도 종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기를 낳기 전 나는 아기들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주 좋아하고 귀여워하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아기'는 너무 여리게 느껴져 대하기 어려웠고, '어린이'들은 골치가 아팠으며, '청소년'들은 너무 예민했다. 어린아이들과 나의 세계는 완벽히 분리되어있었다.
그런 내가 바뀌었다. 요즘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를 바라보면 행복감이 든다. 뭐가 저렇게 재미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언젠간 내 아기도 쑥쑥 커서 저런 함박웃음을 지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면 정작 나 자신도 그러지 않았으면서 내 아이의 모습을 다른 어른들도 마냥 좋게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나의 눈에는 그동안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와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안타까운 아이들의 모습도 들어와 맺힌다.
평소 sns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종종 들어가 다른 사람들 구경을 하곤 한다. 그러던 와중 자꾸 눈에 밟히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굿네이버스에서 만든 광고였는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나오는 광고였다. 사실 내가 이런 광고를 본 게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런 광고는 많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아, 불쌍하다.' 하는 마음 정도만 남긴 채 나의 일상을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감상이 달랐다. 그 광고를 보는 순간 나의 인스타 피드에 가득 찬 행복한 다른 아기들의 모습이 생각나고, 내 옆에서 빽빽 울기도 하고 헤헤 웃기도 하는 내 아기의 모습도 동시에 떠올랐다. 비슷 한 개월 수를 가진 아기들인데, 누군가는 너무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고, 또 누군가는 한없이 든든한 부모의 품에서 티 없이 웃으며 자랄 수 있다는 게 갑자기 너무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내 품에 안긴 내 아기가 행복한 세상에서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기가 살아가게 될 그 세상은 나 혼자서 만들어 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세상은 나와 너, 그리고 온갖 상황의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나는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한 곳이기를 바라기에 불우한 환경의 어린이들을 위한 정기후원을 신청했다. 내놓고 알릴 만큼 큰 금액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적은 금액이라 미안할 지경이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이런 소액의 작은 기부 조차 단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기적인 나는 이제야 내 아기를 위해 적은 금액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 낸다. 그리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내 아기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따뜻하기를, 다른 아기들이 살아갈 세상 또한 그와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