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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봅 Mar 15. 2020

육아_log : 잠들기 전 A, B, C...

 나는 영어를 못 한다. 그리고 그런 만큼 영어를 갈망한다. 언제나 새해의 첫 다짐은 '올해엔 꼭 영어를 공부해야지'였고, 결과는 항상 '내가 그러면 그렇지'였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나의 숙원사업인 '영어 잘하기'를 나보다도 아기가 이루었으면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바람이 얼마나 이기적인 바람인지는 나 또한 알고 있다. 뭐랄까,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기를 통해 실현시키려는 느낌이 나기도 하고, 아직 어린 아기한테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품는 나의 모습이 극성스러워 보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는 이루지 못했으면서 그걸 아기에게 바란다는 게 얼마나 못난 모습인지... 


 그러나 나는 영어가 얼마나 개인의 삶에 필요한지 알고 있다. 영어를 잘하면 그만큼 사귈 수 있는 친구의 수가 많아지고, 또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아지며, 영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아진다. 그리고 영어는 어쨌거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다 보면 언젠가는 배워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난는지 알면서도 벌써부터 아기의 영어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리저리 기웃기웃 거리며 방법을 찾는다.


 나의 가까운 친구 중에는 영어를 업으로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캐나다인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 자리를 잡았는데 내 아기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남자아기를 키우고 있으며, 아기에게 영어와 한국말을 모두 가르치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살다 보니 영어보다는 한국말을 더 유창하게 할 환경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두 언어를 모두 제대로 익힐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히 나와는 상황이 다르다. 나는 캐나다인 남편도 없고, 유창한 영어 실력도 없으니 내 아기에게 어떻게 영어를 노출시켜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러자 나의 말을 들은 친구는 한 마디를 했다.


"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영어 그림 책부터 읽어줘!"


 이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말에 아주 비관적이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했듯 나의 영어실력 때문이었다. 영어 그림책을 보고 겨우겨우 읽어 줄 수는 있겠지만, 영어로 그 그림책에 대한 설명을 해 줄 자신은 없었다. 친구는 나의 걱정에 별스럽지 않은 투로 답 해줬다.


"영어로 따로 설명? 안 그래도 돼, 그냥 책만 읽어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노출시키는 게 좋아.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너무 '교육'하듯이 접근하는 거... 난 별로라고 생각해."


"진짜? 그럼 어떻게 해? 애가 이해 못하면?"


"응. 그냥 그것만이라도 읽어줘. 애가 지금 이해 못 하는 건 당연하지. 지금 나이에는 한글로 된 책을 읽어줘도 이해 못해. 그리고 애초에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이런 게 있다, 슬쩍 보여만 주란 말이야. 나중에 너무 낯설지 않도록."


"응, 그리고?"


"뭘 그리고야. 아기는 공부하지 않고도 그냥 받아들일 거야. 스펀지처럼. 그러니까 아주 쉽고 직관적인 그림책 많이 읽어주고, 나중에 영상 볼 나이쯤 되면 어차피 볼 만화, 영어로 보여줘도 되고... 나중에 시간 내서 애들끼리 놀게 하고 같이 캐나다도 놀러 가고 하면 되지."


 아! 내가 잊고 있던 게 있었다. 내가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기는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인다'. 이것은 한글이니까 쏙쏙 받아들이고, 저것은 영어니까 스트레스받으며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놀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기는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할 것이다. 물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의 수는 아기가 아니라, 엄마가 노출을 포기했을 때 생기는 결과물일 것이다. 


 이렇게 초보 엄마에게는 또 하나의 숙원사업이 생겼다. 내 아기에게 영어로 된 책을 읽어 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거창하면 아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지칠까 봐 일단은 단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밤에 잠들기 전, 수면 의식을 하며 bedtime story를 읽어준다. 아기는 마냥 꺄, 꺄, 하며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조금씩 아기에게 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아주 적은 양의 진도를 빼며 영어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서서히 아기에게 해 줄 말이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생각만큼 아기가 영어를 못 하거나,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번 노력이나 해 보려 한다. 나중 일은 나중에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기에게 이 나이에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노출을 해 주고 싶다. 


 단 하나. 혹시나 아기가 내 마음과 다르게 성장하더라도 절대로 아기의 탓이 아님을, 또한 나의 탓 또한 아님을 되뇌면서 초보 엄마는 욕심을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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