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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Oct 22. 2021

바보야, 그게 중고 신입이라는 거야.

경력직으로 이직했습니다만

이직했다.


계약직으로 이 영화제 저 영화제 쏘다니다가 영화제는 아무래도 정규직을 잘 뽑지 않고, 뽑아도 팀장급은 되어야 하며 대체로 경영지원부를 뽑는 것 같길래 이 참에 새로운 회사를 물색했다.



오랜 친구인 C와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하는 바람에(그도 원하는 직군으로 가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다시 한번 축하하며) 우리의 요즘 화두는 새로운 회사에서의 적응과 회사 동료들인데 역시 한 회사를 같이 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떨어져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 중이다. 과거 C와 나는 팀장과 팀원의 사이였던 적이 있었다. 허구한 날 회사 욕과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업무 과중에 대한 스트레스를 함께 수다를 떨며 풀었었는데 그것도 적당한 거리가 있고 모르는 사람을 대화 선상에 올려놔야 가능한 거지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조심할 것도 많고 너무 힘들더라고. 게다가 팀원이었던 C가 할 수 있는 말보다 팀장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더 적었다. 팀원에게 찡찡대는 팀장이 어디 있겠는가. 한 공간에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지만, 우정 갈라지기 딱 좋았다. 실제로 우린 대학 동기였을 때부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는데 함께 일하면서 한번 의가 상했을 때가 있었다. 물론 여행 가서 술 마시면서 풀었다. 정말, 내가 위에 있다고 뭐 잘못했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



여하튼 시간이 흐르고 나와 C는 지금 다른 회사에 있다. 각자 다른 경력을 가진 채. C는 전공을 살려 연구 쪽으로 갔고 나는 경력을 살려 기획 쪽으로 왔다. 기획 직무에 발 살짝 담가본 C는 내가 출근하자마자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한 것이 많다며 눈을 반짝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뭐 아직 회사에서 내게 공용 폴더도 보여주지 않아 내가 정확히 무슨 업무를 하게 될지 잘 모른다는 게 큰 단점이지만... 오늘 내로는 알려주지 않을까.  



어제가 첫 출근이었고 오늘이 둘째 날인 관계로 나는 아직 회사 분위기 파악 중이다. 어제 점심을 먹다가 상사가 내 나이를 물어봤는데(대놓고 나이 물어보는 회사 정말 오랜만이다.) 아뿔싸, 우리 팀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거다. 그 자리에 있던 나 말고 다른 두 명에게도 물어봤는데 다들 나보다 한두 살씩 어리다. 어딜 가나 제일 막내 거나...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찬바람처럼 불었다.


싫다기보다 씁쓸한 마음이다.


전전 직장에서는 여자들만 있던 팀이었는데도 수직구조가 너무 센 탓에 막내라는 것이 너무 싫었고 막내니까 어쩔 수 없다, 막내로서 어쩌고를 참 많이 들어서 속으로 "그놈의 막내..."라며 얼른 벗어나고 싶었는데 정작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있다고 하니 뭔가 허한 것이다. 나보다 이 회사를 더 잘 알고 있는 나보다 어린 동료... 인 것이니. 아예 "전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하기도 애매한 위치이고 그런 스탠스를 취하고 싶어도 이젠 경력직인 것이 티가 나나보다. 어제 점심을 먹고 난 후 어떤 분이 내게 경력직이냐 물어봤는데 사실 상대방이 경력직인 것 같지 않으면 잘 묻지 않는 질문이 아닌가. C에게 이 대화에 대해 씁쓸하다며 이야기하니 중고 신입보다 낫지 않냐고 하는 것이다. 무려 경력직 아니냐고



바보야 그게 중고 신입이야...



어디서 구르다 오긴 해서 이제 미어캣처럼 이리저리 정찰하고 둘러보진 않지만 그렇다고 뭔가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근데 또 느긋하게 눈앞에 오는 것만 상대하는 뭐 그런 거지..



여하튼 이직했다. 언제까지 이 회사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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