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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Dec 01. 2020

마구잡이로 싼 김밥

주간 할머니 #1

김밥, 그 얼마나 친숙한 이름인가.

삼각김밥, 하와이안 무스비, 야채김밥, 묵은지 김밥, 참치김밥 모양과 들어간 재료에 따라 이름도 맛도 다 다르다. 아마 먹는 기분도 다르겠지.

나는 김밥을 좋아한다. 뷔페에 가도 김밥을 먹어 어른들에게 타박을 당했던 어린아이는 커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김과 밥을 쌓아놓고 김밥을 싸기 시작했으니. 그 시초는 우리의 할머니리라.


아직도 기억나는 맛 중 하나는, 단무지가 없어 열무김치를 씻어 넣고 햄이 없어 멸치를 다져 넣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다 때려 넣었던 김밥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소풍 때 먹었던 도시락인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으음 우리 집 맛. 전혀 예상을 벗어나지 않지만 항상 맛있는 그 맛. 김밥은 항상 내게 그런 존재다.



할머니는 나의 원 앤 온리 룸메이트이자 친구이자 엄마이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런 할머니와 나는 김밥을 사랑한다. 뚝딱뚝딱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는 김밥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날도 김밥을 먹었다.

취직을 하고 습관이 생겼다면,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장을 봐와서 아무 말 없이 요리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한참을 요리에 집중하다 보면 조금은 개운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날도 역시, 나는 스트레스를 가득으로 받았고, 퇴근은 다가오고 할머니 생각에 전화를 걸었더랬다.


“할머니 뭐혀~? 어디요?”

“집이지, 어디여~”


우린 둘 다 서울 사람이다.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것일 뿐.


“우리 오래간만에 김밥이나 해 먹을까~?”

“좋지~ 가만있자. 그러면 시금치랑 햄을 사 와야 되는디”

“뭐하러 사와~ 집에 있는 거 그냥 넣으면 되지. 귀찮게 시장 보지 말고 그냥 집에 있으셔요.”


시금치랑 햄이 들어가야 김밥인가. 아무거나 말면 그게 김밥이지. 싶어서 나는 얼른 집에 가겠노라 약속했다. 그렇게 후다닥 집에 가니 우리 청개구리 할머니, 장을 봐왔다. 시금치를 다듬고 계셨다.



“아니 살게 있어서.. 그냥 다녀왔어 (삐질)”



으이그, 작게 핀잔을 주며 팔을 걷어 붙였다. 밥도 새로 하지 않고 원래 있던 밥으로. 단무지도 있던 거. 당근도 채칼로 슥슥 썰어서 볶아놓고 지단도 굵게 만들어놓고 뚝딱뚝딱. 김밥은 만들면서 먹는 맛이지! 서로의 입에 하나씩 넣어주며 만든다. 으음 그 맛이 지금도 입에 맴돈다. 우리 집에서만 낼 수 있는 감칠맛. 집밥의 맛. 어라, 근데 하다 보니 밥이 부족하다. 밥이 부족하면 더 양념하면 되지! 밥그릇에 밥을 턱, 소금을 툭툭, 참기름을 휙휙 둘러서 슥슥 섞는다. 자, 다시 시작이다. 그러다 보면 또 재료가 부족하다. 그럼 이제는 정말로 냉장고를 털 시간. 열무김치를 씻어 길게 썰고(이게 정말 맛있다!) 냉장고 깊숙이 있었던 고춧잎장아찌까지 넣어주면 정말로 우리 집 김밥 완성.


내 회사 도시락 통에 예쁜 것을 골라 먼저 담아주시는 그 모습에 뭉클하는데,



“아이고 많어. 그거 C랑 노나 먹어도 많어.”

“C랑 먹어? 그럼 하나 더 넣자. C한테 할머니가 사랑한다고 전해줘.”


C가 우리 집에 좀 많이 놀러 오긴 했지만...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웃긴 우리 할머니는 오늘도 사랑이 가득하다.

마구잡이로 싼 김밥에는 우리의 추억이 가득하다. 어릴 적부터 내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사랑이 가득한 김밥을 먹으면, 절로 울컥한다. 언제까지 이 김밥을 먹을 수 있으려나. 그런 복잡한 생각에 빠지고 만다. 아니 아니지 그런 생각은 하덜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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