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할머니 #2
어릴 때 우리 집은 증조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었는데, 그 때문에 할머니께서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 까다로우시던 증조할머니와 마냥 선비 같으셨다는 증조할아버지, 그 둘을 꼭 반반 빼닮으신 할아버지, 어린 나까지 전부 챙기시다 보니 할머니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셨을 거다.
죽는 내가 기억하는 한 제일 처음 좋아한 음식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증조할아버지가 음식을 제대로 넘기기 힘들어지시자 할머니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흰 죽을 쑤어 증조할아버지방에 한 상 차려 갖다 드리곤 했다. 어린 나는 그 옆에서 꼭 한 그릇 씩 같이 얻어먹곤 했는데 적당히 식혀져 내 앞에 놓인 흰 죽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아주 어릴 적이지만 할머니가 아무것도 안 들어간 그게 그렇게 맛있냐며 웃으셨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나서 학교를 며칠 못 가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할머니는 나를 앉혀놓고선 흰 죽을 먹이셨다. 짭짤하게 소금간이 쳐진 김을 젓가락으로 반 잘라 얹어주시기도 하고 마른 김을 간장, 참기름, 참깨에 조물조물 무쳐주시기도 했다. 잔 멸치볶음도 있었던 것 같다. 국물도 꼭 먹어야 한다며 자주 김칫 국물을 먹이기도 하셨다. 김칫 국물은 왜 준거냐며 아직도 그 얘기를 하면 할머니는 웃으면서 너 말고도 내 손에 자란 애들은 다 그렇게 컸다고 하신다.
간도 되지 않아 간장을 얹어먹어야 하는 그 밍밍한 맛이 난 아직도 좋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죽 가게에서 엄마가 죽을 사다 주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맛은 아니다.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은 고작 밥을 오래 끓이는 정도이지만,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죽은 오랜 시간 쌀을 불려 오랫동안 눌리며 한참을 저어야 완성된다.
참기름에 불린 쌀을 냄비에 넣고 한참을 볶으며 계속 물을 넣어준다. 자작하게 끓을 때마다 계속 젓고 물을 넣기를 반복한다. 물기가 사라져 되직해진 쌀알들은 물을 넣고 계속 괴롭혀주어야 한다. 냄비 아래에 쌀이 녹진하게 누룽지처럼 눌러진 것을 계속 걷어내고 다시 눌리고 저은 죽은 꽤 오랜 시간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이 딱딱한 쌀을 언제 부드럽게 만드나 싶지만 조금 인내를 가지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죽을 젓고 있다보면 어느새 뭉근한 죽이 완성된다.
오랫동안 냄비 앞에서 지키고 서 있는 시간과 눈빛이 가득 담긴 맛이 난다. 더 구수하고, 질리지 않는다. 잣을 넣어도, 잘게 다진 채소를 넣어도, 참치를 넣어도 전혀 부담이 안 간다. 그에 비해 시중에 파는 죽은 무언가 많이 넣은 맛이 난다. 묘한 MSG 맛에 먹다 보면 혀가 쓰다. 그래서 자주 사 먹지 않는다. 차라리 밥을 자작하게 끓여먹지.
몸이 아파도, 마음이 아파도 그냥 그게 좋다. 가끔 마음이 어지럽고 공허한 느낌이 들면 죽이 먹고 싶어 진다. 혼자 부엌에서 밥을 끓이고 있으면 아직도 그게 맛있냐고 할머니가 핀잔을 주며 웃으신다. 그것마저 좋다.
엊그제 엄마 아버지가 나란히 탈이 나서 할머니는 어김없이 죽을 쑤셨다. 아이고-소리를 내시면서 무릎을 짚고 일어나시고는 부엌에 서서 쌀을 불리고, 참기름에 달달 볶아 마치 걱정과 사랑을 한 컵씩 넣는 것처럼 조용하게 죽을 한 냄비 가득 만들어두셨다.
나는 또 그걸 한 그릇 얻어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어린아이가 된다.
어김없이 그렇게 맛있냐고 물어보는 할머니의 말투 속에 사랑이 담겨있다. 너 먹을 것도 더 해놨다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핑 돌아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이걸 먹을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에겐 보잘것없고 아플 때 겨우 먹는, 먹기 싫다며 징징대면서 먹는 그 죽 한 그릇이 내게는 추억여행을 하게 하는 소중한 한 그릇이 된다. 밥도 한 숟가락 제대로 먹지 못해 뭐든 다 해주길 바라는 어린아이였을 때의 마음으로,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아마, 시간이 아주 오래 흘러도 할머니가 끓이신 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