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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Jan 05. 2021

할머니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간 할머니 #3


페미니즘, 이 얼마나 어렵고도 복잡한 단어인가.

나는 엄두도 못 내는 이 세계를 나보다 우리 할머니가 먼저 입문했다. 


우리 집 옆에는 실버복지문화센터가 있다. 바로 옆에 있어서 할머니가 자주 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의외로 그곳에 발 담그지 않았다. 구식일 것 같다나 뭐라나. 여하튼 초반에는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할머니가 독서 모임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할머니가 책을 자주 읽으시겠군!! 하고만 생각했다. 독서를 하시면서 글을 쓰는 모임도 함께 하시는 듯했다. 글을 적어 오셔서 나에게 읽어주시며 이 말이 말이 되는지, 들었을 때 어떤지를 물어보는 할머니를 보니 내가 어릴 적에 동시를 외우면 할머니가 나를 이렇게 바라봤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당신에 대한 글을 쓰시는 건데 그 모습이 울컥하기도 하면서, 뭔가가 벅차올랐다. 이걸 써내야 작가일 텐데. 나는 아직 글을 제대로 쓰려면 멀었나 보다. 


할머니의 글 쓰기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다. 당신에 대한 글을 쓰시며 인생을 돌아보시는 듯했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식으로 사람을 대했는지. 어떻게 당신을 대했는지. 등등 생각도 많아지는 것 같았다. 거절을 못하시는 할머니가 점점 거절을 잘하시기 시작했다. 싫은 것은 싫다고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말하시기 시작했다. 그 변화에 적잖이 놀랐지만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좋았다. 


알고 보니 그 모임은 노년층을 대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요즘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사는지 이야기해주고 그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그 모임이 페미니즘 토론 모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와서,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들었는데, 남녀평등에 대해서 들었는데, 여자의 인권에 대해서 들었는데, 라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는 그걸로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르지만 내가 겪었던 차별에 대해서는 잘 안다. 할머니는 더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오셨고 그것이 차별이라는 생각도 못하셨을 터. 이제 와서 그걸 알게 되니 안타깝다고 하셨다. 싫은 것은 싫다고 할 것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을. 싫으면, 마음에 안 들면 입을 꾹 다물고 식음을 전폐하는 스타일(?)인 우리 할머니는 그게 참 아쉽다고 했다. 


동시에 불평했다. 이것을 지금 알려주는 의도가 무엇인가. 궁금해했다. 당신은 이미 70년이 넘게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이제 어찌 살라고 그런 것을 알려주냐며 속상해했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책을 더 사다 드렸다. 그때 사다 드린 책이 아마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였다. 제주에 갔을 때 작은 책방에서 산 책인데, 사실 나도 아직 읽어보진 않았다. 뒤표지의 글과 제목이, 어쩌면 지금 할머니에게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서 드렸다. 


할머니는 답을 찾았을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는 것이 아직 어렵다는 할머니의 세계에서 나는 너무 작은 손녀일 뿐이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타인이 쓴 글을 건네는 일 밖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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