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의 나날들_08
단말기는 중요하다. 주문이 들어오면 크루는 각자의 단말기로 주문을 할당받아 바구니에 담으러 간다.
단말기가 지정하는 대로 찾아가 포장대로 가지고 오는 것.
이를 위해서는 로그인이 필요한데 로그인을 위해서는 내 QR코드가 필요하다.
물론 새벽 6시까지 출근해서 해야 하는 첫 일이 물건을 바구니에 담는 건 아니다.
일단 입고와 진열부터 해야 한다. 물건 담기, 포장하기를 지나 재고 확인, 유통기한 변경, 재고 이동 등 모든 일에 단말기가 사용된다.
심지어 물건을 담는 봉지를 새로 뜯어 쓸 때도 단말기에 입력하고 그 일을 실행해야 한다.
QR 혹은 바코드를 읽어 활용하는데 대개 QR은 장소이고 바코드는 상품이다.
주문 이행 시 단말기의 역할은 주문 할당 받기, 주문 들어온 물건 확인하기, 정확한 물건을 주문 개수에 맞게 바구니에 담기 정도인 것 같다.
이후에는 포장대에 있는 바코드 스캐너가 역할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걸로 주문을 이행 중인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나의 QR을 스캔하고 내가 가지고 온 바구니가 맞는지 토트의 QR을 확인한 뒤에 포장 과정이 시작된다.
바코드 스캐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을 쏘면 정보를 읽었다는 신호로 소리나 진동을 보낸다.
화면에서 깜빡이던 커서는 방금 읽은 정보를 숫자와 문자의 조합으로 입력하고 매칭 여부를 판단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보가 다를 경우 가차없이 에러 메시지를 띄운다.
아무리 입력하려고 애써도 인공지능은 자신이 정답으로 가지고 있는 값과 매칭되지 않으면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네.
결.코.타.협.하.지.않.는.다.
아마 그것이 인간과 인공지능이 다른 지점일 것이다.
상품 포장 상태에 따라 바코드가 인식되지 않거나 하면 바코드를 직업 입력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정답을 넣어줘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확인에 또 확인 계속되는 확인의 연속이다.
고객이 주문한 그대로 정확하게 물건을 전달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쨌든 기계들이나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 없는 틈새는 사람이 막아줘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든 인공지능을 속일 수 있다. 단말기를 바꿔서 가지고 다니거나 인식한 뒤에 다른 사람이 나머지 일을 이행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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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내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가치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 티타임, 스누피, 호기심, 어떤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당신들에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부디 언제까지나 그것들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