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의 나날들_13
물건의 진열이 끝나면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방금 입고를 마친 그리고 매대에 진열 중인 채소와 과일의 신선도를 살피는 일이다.
사실 육류도 보긴 해야 하는데 볼 줄 알아야 보는 것 아닌가.
육류는 많은 경우 진공포장으로 입고되니까 그 진공이 풀어졌는지 아닌지 정도가 중점을 두고 봐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선도를 보는 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고객 컴플레인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건을 받았는데 시든 것이 있으면 고객은 당연히 기분이 나쁠 것이다.
더군다나 가격이 저렴하지 않은데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분기탱천하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건 소비자의 입장이고 직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사실 황당한 과정이 선도를 보는 일이다.
물건을 봐도 이게 신선한지 아닌지는 저마다의 기준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도를 보는 전문 직원이 존재한다. 그들이 와서 물건을 보는 것과는 별개로 또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니....
하지만 뭐, 전에도 말했지만 회사가 시키면 직원은 해야겠지.
나는 그래서 꽤 깊은 고민 끝에 내가 고객이 되어서 이 물건을 받았을 때의 기분을 생각하며 선도를 봤다.
물론 이따금 거대한 곰팡이가 피었다거나 상해서 문드러진 과일과 채소를 발견해서 빼낼 때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도 한다.
하지만....
겨울에 귤이 수십 박스 입고되어서 그걸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과정을 거칠 때는....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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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선도를 보고 가려진, 폐기해야 하는 물건을 1차로는 위치를 옮기고 2차로 전산에 입력하라고 하며 3차로 모든 물건의 어떤 부분을 하자로 인식하고 폐기하려 하는지 증거로 사진을 남겨 제출하라고 한다.
전산에 입력할 때는 세부적으로 이게 당일에 입고된 물건인지 이미 전에 입고됐던 물건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이는 당연히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과정이리라.
나중에는 기계가 카메라로 물건들을 인식해서 보며 하자가 있거나 생긴 것들을 골라내 폐기처로 보내는 일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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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멀쩡한데도 상품적 가치로서는 불합격인 식품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폐기되는지 그들의 여정을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냉장고에 있었다면 유용하게 섭취되었을 텐데.
내 알 바는 아니지만.....그래도 딸기 가려서 버려야 할 때는 진심으로 너무 아깝다. 여름날의 수박도 그리고 단지 몇 개 때문에 버려져야 하는 귤박스도......
하지만 블루베리나 체리를 꺼내서 상한 것을 제외하고 신선한 것들로 재구성해서 그램수까지 맞춰서 멀쩡한 상품으로 재조합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할 때는 진짜 짜증난다.
비싼 상품인데 몇 개 때문에 버려야 하는 것이 아까운 건 이해가 가긴 하지만.....
난 그냥 시급을 받는 일개 직원나부랭이일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