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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Feb 08. 2024

그럼 CL은 혹시 Close?

육체노동의 나날들_20

맞다.

Close의 약자다.

혹은 Centre Leader라는 직책의 약자이기도 하다.

캡틴 위의 센터 리더는 회사의 정직원이다. 그러니까 매장, 센터에 존재하는 유일한 정규직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관리직이지만 관리직이라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그런 직책은 아니다.

매장이 미친 듯이 돌아가면 누구라도 주문 받는 데 뛰어들어야 한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첫 CL을 보며 받은 신선한 놀라움을 기억한다.

그녀는 진짜 작고 마른 체구를 가졌는데 그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상품을 바구니에 담아 포장대로 가져와 정확하게 봉투에 담아 준비해냈다.

입고해야 하는 물건이 많은 날은 예외 없이 출근해서 물건들을 척척 매대에 진열했다.

너무 멋있었다.

크루에서 시작해서 캡틴을 거쳐 센터 리더가 된 그야말로 전설적인 존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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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의 뜻이 닫다라는 뜻인 만큼 이쪽 파트는 매장의 마무리를 맡는다.

냉장 냉동에 들어가서 입고 진열을 할 필요는 없지만 주문량이 압도적으로 높다.

아무래도 직장인이라면 퇴근 전에 퇴근해서 장을 보는 경우가 훨씬 많을 테고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이나 점심 장을 보는 것도 아무래도 오후 늦은 시간부터 시작될 테고

늦은 밤에 야식을 먹는 사람들의 비율도 많으리라.

나중에 내 포지션이 CL로 바뀌었을 때 처음엔 이런 것들이 낯설었다.

다들 물건을 담아 포장하는 일을 더 많이 하니 그 일에 특화되어 있어서 얼마나 속도가 빠른지 놀라운 수준.

주문이 많으니 다른 잡무들은 한 크루가 담당해서 빠르게 처리해낸다.

뭐랄까 효율에 집중하고 일하는 분위기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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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CL크루에게 잡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OP에서 신선하지 않은 것을 골라내듯 하루의 최종점에서 선도가 떨어진 제품들을 골라내서 폐기하기 위해 모아두는 일,

하루 동안 쓰고 남은 포장재의 무게를 달아 기록해두는 일 등 잡무의 목록은 계속 늘어나지.

특히 물과 음료수나 과자 같은 물건들은 회전률이 빠르기 때문에 추가적인 진열이 불가피한데 아다시피 액체는 무겁다.

신기했던 건 내가 의외로 그곳에서 재능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속도가 느려 주문을 쳐내는 것에서 다른 크루들에 비해 뒤쳐지는 대신 음료를 완벽에 가깝게 진열하는 데에는 꽤 소질이 있었다.

음료들은 많이 들어오지만 OP에서 너무 많은 물량을 소화하기 어려워 상자째 쌓아두기 일쑤인데 내가 그것들을 다 열어서 진열대에 꽉꽉 채워두는 것을 참 잘하더라는 것.

무거워서 힘들기도 했지만 쌓였던 상자들이 싹 사라지고 그 속에 있던 물건들이 매대 위에 꽉 찬 모습을 보며 흐뭇함을 느끼곤 했다.

주문 쳐내느라 바쁜 가운데 틈이 날 때마다 음료와 세제와 휴지를 진열했다.

그렇게 나의 보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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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에서 일할 때는 첫 차 타는 새벽형 인간으로 사는 게 좋았다면

CL에서 일할 때는 막차 타기 위해 뛰는 올빼미가 되어 집에 가자마자 기절해서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내 것으로 가지는 게 좋았다.

그게 어떤 삶이든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그래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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