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했지만 조금 떨리고 설레었다. 집안 정리와 청소상태를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차와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 두었다. 연필도 인원수에 맞게 깎아서 지우개, 메모지와 함께 테이블 가운데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집중할 수 있도록 조명도 세팅하고 향초도 켜놓았다. 현관문에서 테이블까지의 동선에 거슬리는 게 없는지 미리 방문객처럼 걸어 들어와 식탁에 앉아본다.
첫 모임은 각자 책을 한 권씩 선택해서 읽고 그 감상을 나눈 후에 앞으로의 모임 운영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내가 읽은 책을 다시 한번 훑으며 메모를 추가한다.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머릿속에 수차례 그려본 순서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 H가 직장의 갑작스러운 이슈로 참석이 어렵다며 양해를 구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간에 맞춰 J와 E가 차례로 도착하고 첫째 딸은 퇴근이 늦어 우리가 인사를 나누는 중에 들어온다. 다과를 나누며 먼저 자기소개를 차례로 하는 걸로 시작했다. 화사한 표정과 대비되는 나직한 저음으로 또박또박 참여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말하는 E, 앳되고 장난스러운 표정과 다르게 허스키한 목소리와 특유의 손짓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J, 그리고 딸과 내가 이어서 조금은 들뜬 자기소개를 마쳤던 그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각자 김애란, 은희경, 김현경, 정세랑 작가의 책을 들고 왔다. 마음에 새겨진 문장들을 낭독하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왜 소개하고 싶은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전하고 서로에게 질문하고 또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모임에 대한 몇 가지를 의논했다. 모이는 날짜는 격주 목요일 저녁에, 책은 소설과 비소설을 번갈아서 읽고, 가급적 돌아가며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기로 했다.
1시간 30분 정도면 적당할까, 너무 늘어지거나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아니면 조급하지 않게 충분히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우려와는 달리 우리의 대화는 밤늦도록 지칠 줄 모른다. 광활한 우주와도 같은 대도시 한복판, 어린 왕자가 불시착한 코딱지만 한 행성 같은 작은 공간에서 작은 중력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는 서로를 블랙홀로 빠지지 않게 손잡고 서있는 재미난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우주를 유영한다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