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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Nov 30. 2020

결심에 대하여

생일에 2021년 몰스킨 위클리를 선물로 받았다. 작년 연말에도 같은 걸 선물 받았는데, 맨 뒷장 표지 안쪽에 2020년의 결심을 써놓았었다. 독서모임, 수영, 글쓰기.


10대 20대 30대 40대를 지나는 동안 새해 목표는 거창함에서 소박함으로 점점 바뀌어갔지만 내 기억에 단 한 번도 끝까지 실천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부끄럽다.


어느 때부턴가 더 이상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했다. 쉬운 포기에 대한 자괴감의 늪에 빠지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무해한 쪽으로 가자는 나름의 옹졸한 전략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지인들과의 연말 모임에서 재미 삼아 우리끼리 워크숍을 하게 되었다. 먼저 각자 간단한 표가 그려진 두 장의 커다란 워크시트를 나눠 가졌다. 그중 한 장에 가장 슬펐던 일, 기뻤던 일 등 자신에게 일어난 굵직한 이슈를 기록하며 한해를 되돌아보았다.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만, 서로를 배려하느라 모임에서 분위기를 다운시킬만한 이야기는 각자 피해온 편이었다. 평소보다 어두운 얼굴이면 힘든 일이 있나 보다 라고 짐작하며 따뜻한 말을 건넬 뿐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질문을 삼가는 사이였다. 그날은 20년 만에 자신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서로에게 드러내는 날이었다. 게임하듯 장난스럽게 시작했는데 한해를 되돌아보며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그때의 감정을 담담하게 말하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눈물범벅이 되고 있었다. 가족이라서 더 내비치지 못한 채 묻어둔 감정들을 그렇게 뜨거운 눈물과 함께 다 쏟아내었다. 


감정을 다시 추스르고 나서 또 다른 한 장에는 칸이 나뉘어 그려진 원 안에 2020년 새해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고 중장기, 단기별로 구체적인 실천 목록을 작성했다. 겨우 두어 시간일 뿐이지만 똑바로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발화를 통해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낸 직후라서 인지 그 어느 때보다 ‘내’가 되어 ‘내’ 욕망에 충실하게 새해 결심을 세워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다이어리 뒷장에 세 가지 결심을 적게 된 거다.


그리고 한해의 끝인 지금, 난생처음으로 성취감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세 개의 목표를 다 이뤄낸 건 아니다. 수영은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고, 글쓰기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쓰고 싶은 확실한 주제가 있고 독립출판의 꿈도 갖게 되었다. 그중에서 바라던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을 이뤄낸 건 독서모임이다. 격주로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맞춰 꾸준히 해왔고 모임의 외연도 조금씩 넓혀졌다.  


지금, 결심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 지속을 가능케 한 동력에 대해서.


어느 날 하산 중 눈길에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지고 수술과 재활로 등산을 그만두기 전, 4,5년 정도 주말마다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운동을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자연 속에서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우연히 함께 하게 된 학교 선후배들과 꾸준히 등반을 했다. 산의 초입에 들어설 때마다 매번 느꼈던, 겹겹의 봉우리들과 그 끝에 높이 서있는 정상을 올려다볼 때마다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그 아득한 감정이 떠오른다. 


취미를 함께하는 모임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내가 빠지지 않고 나갈 수 있었던 건 우리 멤버들의 성향 때문이었는데, 다들 가볍게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이었지만 절대 경쟁적이지도 목표 지향적이지도 않았다. 그 당시 한창 유행이었던 백두대간 종주 산악모임들은 상당히 전투적이어서 손에 비상식량을 들고 먹으면서 거의 쉬지 않고 산을 내달렸고, 지름길로 질러가느라 등산로가 아닌 곳을 헤치고 나아가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가 있었다. 


어쩌면 답답할 수도 있는. 실제로 남편이 한번 참여하더니 거북이 등산모임이라 자기랑 맞지 않는다고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뜨거운 드립 커피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산을 오르는 동안 자주 멈춰 서고는 했다. 누군가가 뭔가를 촬영하느라 뷰파인더에 집중하고 있으면 함께 기다려주고, 멋진 전망과 좋은 바위가 있으면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고단해지면 너른 바위를 찾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내가 가파른 암벽을 만나 머뭇거릴 때마다 앞에서 발 디딜 곳을 먼저 시범을 보이고 올라서서 이끌어주는 선배와 뒤에서 내가 발을 잘 내딛는지 확인하며 따라오는 후배가 있었다. 스스로 잘 오를 수 있도록 지켜보며 기다려주다가 도움을 청할 때는 언제든 손을 내밀어 나를 들어 올려 주곤 했다. 혼자라면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암벽을 오르고 나면 나는 늘 그 두터운 신뢰의 안전망에 대해 감동했다. 남편이 거북이 모임이라고 놀렸지만 우리가 정상을 오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와 가뿐 호흡, 발바닥의 통증과 종아리 근육의 뻐근함을 느끼며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하다 보면 산 입구에서 아득해 보였던 봉우리들이 어느새 내 뒤에 있었다. 어떻게 저 봉우리들을 넘었지, 스스로도 신기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는 말에 공감하지만 일 년만 내다보자 했다. 일 년의 계획은 쉬운 비관을 경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일 년 안에서 한걸음만 생각했다. 잠깐은 멈출 수도 있지만 작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딛자고 했다. 자주 즐거움을 떠올렸다. 고된 산길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경탄할 만한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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