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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Aug 04. 2021

내밀한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

'집'을 플랫폼으로 #1

독서모임을 시작한 후, 주변 지인들의 반응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 ‘집에서 모임을 연다고?’라는 질문이다.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독서모임의 멤버들조차 놀라운 점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들의 질문, 혹은 반응에 대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이 나로선 좀 의외였다.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물음에 대한 답변, 그것에 대해 이제 생각해본다.


독서모임은 순전히 개인적인 편의에 의해 ‘집에서 하게되었다. 나는 ‘독서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데. 신간에 대한 정보에  귀를 열어놓고 집안 곳곳 손이 닿는 위치에 책을 두곤 하지만  가지에 깊이 빠지는 타입이라기보다 여기저기 산만하게 기웃거리는 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책을  깊이 읽고 싶다는 욕망은 있지만, 혼자서는 그다지  해낼 자신이 없었다. 한편으론 책을 매개로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독서모임 대한 구상은 막연하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집에서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밖으로 내게 되었는데 가족의 호응이 괜찮았고 이런저런 조건들이 모두 장점으로 작용했다. 모임 멤버를 구하기 위한 홍보는 첫째 딸이 함께 고민하면서 도와주었공간의 적절성(우리 집이 비교적 어떤 곳에서나 접근이 용이하다는 , 이제는 거실에서 가족이 모일 기회가 거의 없다는 )   맞아서 예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수월하다라는 점에서 우리 가족의 특성이 장점으로 작용한  또한 사실이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이러저러한 일을 하려고 라고 거의 통보하듯 말하면 대개는 ‘그래, 맘대로 .  도와줄  있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갈등은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일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이고 사교적이라는 공통으로 갖고 있는 성격 탓이 크지 않나 싶다.


각자 친구를 데려오고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밥을 먹거나 사정이 생기면 집에서 재우는 일에 거리낌이 없는 편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서로 동선을 피하며 각자 방에 틀어박혀 있지만, 누구의 지인이라도 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은근히 즐긴다. 방문객이 돌아가면  언제 우리가 친했냐는  쌩하게 각자 방으로 직행하지만. (자칭 쇼윈도 가족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지만 이것도 아주  맞는 표현은 아니다)


두 딸이 성인이 되어 교대로 장기간 배낭여행을 한 이후로 다국적 여행자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거나 며칠씩 묵는 일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코로나 19로 모든 상황이 달라지기 전까지) 배낭여행에서 이국의 누군가로부터 받는 작은 호의가 얼마나 귀중하고 절실한 지 잘 알게 된 우리는 방을 내어주고 함께 좁은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


공간에 대한 생각도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물론 이건 싫증이 날 때마다 방의 용도와 가구 배치 등을 쉽게 바꿔버리는 내 성격과 청소를 취미로 삼는 남편의 영향 탓이 크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가족 구성원 모두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재배치하는 일에 큰 저항감이 없다. 이런 이유로 거실을 독서모임 전용 공간으로 만들려는 나의 음모를(처음부터 드러내지 않았기에)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었다.


거실을 전용공간으로 만듦과 동시에 각자 방의 개별성과 안락함에 좀 더 중점을 두고자 공간을  가능한 비우고 최소한의 것들만 두었다. (최소한이 꼭 기능적인 역할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기능은 빼더라도 사치를 더하는 게 얼마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지) 거실은 모임, 이벤트, 파티 전용의 역할에 적합하도록 꾸미려고 했다. (집이 넓어야만 가능한 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시스템은 또한 가족임에도 서로의 사생활 침해를 극도로 꺼리는 동시에 모임을 즐기는 우리 가족의 성향과 비교적 잘 맞는다(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어쨌든 이런 변화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와 이벤트는 우리 각자의 개인 생활에도 나름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남편은 우연히 배우게 된 커피와 차 내리기를 더 열심히 더 다양하게 실험하며 서빙하고 있고, 가끔은 슬쩍 무슨 책을 읽는지 들여다보기도 한다. (독서와 거리가 먼 이에게는 거의 혁명에 가깝다) 간식으로 내놓기 위한 둘째 딸의 베이킹은 커피 향에 밀가루, 버터향까지 더해져서 유사 카페 분위기가 난다. 흩어져 있던 책들은 그림과 식물, 선반, 스탠드와 어우러져 나름의 역할로 공간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고.


무엇보다 ‘책’은 우리가 내어준 공간보다 몇 배로 우리를 더 열린 세상으로 안내해준다는 점에서 ‘내밀한 공간의 공유’는 기꺼이 할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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