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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Mar 10. 2022

S님께


'윤경 님,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며칠 전에 올라온 S님의 블로그 글에 제가 짤막한 공감의 댓글을 달았었죠. 그 후에 알람이 울려 블로그를 여니 제 댓글에 이렇게 답변을 달아주셨네요. 그 말이 계속 마음에서 맴돌아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게 되었어요.


요즘 난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밤에 다시 눈을 감고 잠들기 전까지 일상의 패턴은 거의 변화가 없는데,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절망과 희망, 비관과 낙관을 넘나들면서요. 작정하고 5분만 명상을 해보려고 유튜브의 명상 채널을 켜 봐도 머릿속을 비워내기란 쉽지 않아요. 반대로 머릿속은 그렇게 복잡하지만 하루 동안 내 감정의 그래프를 그려본다면 큰 진폭 없이 잔잔한 물결처럼 그려질 것 같아요. 내가 성장한 걸까요, 아니면 단련된 걸까요.


내 삶을 위태롭게 만들지 모를 여러 가지 중에, 나를 가장 울고 웃게 만드는 건 ‘관계’에 관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중심에 놓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방사선처럼 이어져있는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줄을 상상해 보고 있어요. 어떤 건 놓칠까 봐 안간힘으로 붙들고 있고, 어떤 건 어느 방향으로 기우냐에 따라 힘을 주었다 풀었다 하고, 몇 개는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묶여있고, 일부는 부여잡을 이유가 없어져서, 혹은 힘에 부쳐서 내가 끈을 놓아버렸고 어떤 건 끈이 묶여있는지 조차 모르게 방치되어 있네요.


그 가운데에 서서 중심을 잡고 쓰러지지 않기 위한 요즘 나만의 방편은 (매번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통 끝에 나오는) ‘judge하지 말자’라고 주문처럼 되뇌는 문장이에요. 그건 내게도 타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죠. 이 말도 언젠가 유효기간이 지나 폐기 처분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어요.

시도 때도 없이, 나도 모르게, 내 기준으로 주변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는 나를 보게 돼요. 한마디로 오만하죠. 그러다 어느새 그 잣대를 나에게 들이대어 나 자신을 비하하고 있기도 하고요. 일종의 회피이자 기만이죠. 그럴 때 ‘no judge'를 주문처럼 속으로 외치며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나도 타인도,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해요. 안타깝지만 어쩌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관계에 대해서도 굳이 애쓰려 하지 않죠. 비겁하다고 무심하다고 혹은 무능하다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변명을 하자면 사람과 관계에 대한 섣부른 회의나 비관에서가 아니라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싶은 마음을 품고 싶어서 에요.


최근에 본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의 마지막 장면이 문득 생각나네요.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을 상상하는 아내 역할의 아네트 베닝에게 이십 대 아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장면인데요.(그 아들도 연애에 실패하고 방황하는 와중에 부모의 이별 과정에 함께하고 있어요) 부모가 어떤 선택을 하던 자신은 그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부모는 자신보다 이미 한참을 앞서 걸어간 사람들이므로 그 길이 험난하고 위태로워 보여도 끝까지 걸어간다면 그 길을 나도 걸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가겠지만, 부모가 그 길에서 멈춰버린다면 그 길이 가봤자 소용없는 것 일거라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말해요.(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아네트 베닝 역할의 어머니와 내 나이가 비슷하고 그 아들의 나이와 비슷한 딸을 두어서일까요. 내게 하는 말인 것처럼 심장에 꽂혀 새겨졌어요. 겁나고 두려워도 발걸음을 떼게 해주는 동력이 되어줄 문장을 하나 더 얻은 셈이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왠지 기이하게 여긴다’고 하셨죠. 저도 그런 생각을 문득문득 해요. 살아있음을 당연하게 여길 수가 없죠. 많은 우연과 개연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고 누군가는 또 그런 이유로 죽기에, 섣부른 자만이나 무력감은 어서 털어내자고, 중단 없이 여기까지 와서 오늘을 맞이한 것처럼 절망은 항상 지나간 절망이었을 뿐임을 기억하자고, 그렇게 다짐한답니다.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S님의 글을 늘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짧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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