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정에 관하여 #2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 501 북클럽의 책 선정 방식은 작년과 다르다. 매년 조금씩 다르게 진행해왔는데 올해는 모임 회원들이 돌아가며 호스트가 되기로 했다. 책 선정, 모임의 진행, 독서 후기까지 모두 맡아서.
지금까지 여섯 회, 여섯 호스트가 주관한 올해의 독서모임은 꽤 만족스럽다. 3개월 동안 미술, 시, 소설,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아무리 다양한 책을 선정하려고 했어도 ‘나’라는 필터를 거친 책들은 ‘나’의 취향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 내야 하니까. 어쩌면 그냥 지나쳤거나 포기했을 책들을 끝까지 읽고 함께 얘기 나누는 과정의 경험이 정말 값지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최혜진의 <우리 각자의 미술관>은 그림을 직관적으로 감상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고, 앤 카슨의 산문시들은 이미지화된 언어들을 역시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을 완독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에피소드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작품 속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을 느리게 유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란 것도.
SF를 사랑하는 우리에게 켄 리우는 반가웠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어진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는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상황과 겹쳐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재난에 닥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뇌과학계의 프런티어인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끼고 아는 존재>는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책이었지만 우리의 느낌, 의식 등의 과학적 접근을 통해 늘 알고 있고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각자만의 진행방식은 모임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낭독, 질의응답, 연상 등의 방법을 이용해서 책과 나, 책과 우리, 책과 세상의 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순수한 즐거움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모두 호스트가 되어 책을 선정하고, 모임을 진행하고, 후기를 쓰면서 책 한 권을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든 과정은 아마 말하지 않아도 각자에게 가장 큰 성취감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방식의 도입으로 독서모임이 더 풍부해지고 역동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독서’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행위가 주는 내적 즐거움은 정말이지 크다. 하지만 ‘독서 모임’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확장되는 즐거움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걸 지금 확인하는 중이다.